잇따른 영장 기각에 열받았던 검찰, 법원 애태우기 분석도

법원과 검찰의 감정대립이 심상찮다. 법조 브로커 김홍수 씨로부터 사건청탁과 함께 금품을 받은 혐의로 검찰의 수사 대상에 오른 법조계에서 검찰의 수사 방식에 대해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올 초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법조 브로커 윤상림 사건에 이어 김홍수 사건까지 터진 바람에 법조계의 위신이 땅에 떨어질 판이라 법원은 노심초사 분위기다.

법원 측은 검찰이 판사들을 상대로 무리한 수사를 하고 있다고 불만을 털어놓고 있다. 구체적인 물증도 없으면서 김홍수 씨의 진술만으로 해당 판사들을 쥐잡듯이 잡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검찰은 ‘어의없다’며 원칙에 입각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같은 법조인이라고 봐주기식 수사를 하면 법원과 검찰은 공멸한다는 게 칼자루를 쥔 검찰의 입장이다.

이런 가운데 김홍수 사건 수사를 둘러싼 법원과 검찰의 갈등 이면에는 때만 되면 영장기각 등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법원과 검찰간의 케케묵은 갈등이 도사리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브로커 김홍수 사건으로 수사를 받고 있는 고등법원 A 부장판사는 최소 6차례나 검찰의 소환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법원 측에 따르면, 검찰은 A 판사의 최근 5년 간 계좌를 압수해갔고, 자택 부근에 설치된 폐쇄회로 녹화테이프까지 확보했다. 뿐만 아니라 A 판사 부인과 측근 5명에 대한 전화통화내역까지 조회하는 등 A 판사 주변을 쥐잡듯 뒤지고 있다.

법원 측은 ‘해도 해도 너무 한다’며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김홍수 씨의 오락가락하는 진술에 의해 검찰이 무리하게 수사를 벌이는 바람에 해당 판사의 명예는 물론, 법원의 위상까지 크게 실추되고 있다는 주장이다.

게다가 사상 처음으로 현직 대법원 재판연구관까지 검찰에 소환되는 일까지 겪은 터라 법원은 침울하다. B 연구관은 휴일이던 지난 17일 제헌절에 검찰로 불려가 판사로 근무할 당시 김홍수 씨로부터 사건 청탁과 금품을 받았는지에 대해 조사 받았다.

B 연구관에 대한 검찰 조사와 관련, 법원 쪽에서는 검찰이 B 연구관에 대한 물증을 이미 상당 부분 확보한 상태에서 시간을 끌며 조사하고 있어 법원의 이미지를 깎아 내리는 듯 한 인상을 받고 있다고 주장한다. 의도적인 ‘흠집내기 수사 방식’이란 얘기다.

김홍수 씨가 A 부장판사에 대한 당초 진술을 번복하는 바람에 법원 측의 감정이 더 상했다. 확실치도 않은 진술을 바탕으로 차관급에 해당하는 부장판사를 흉악범 다루듯 취급했다는 불만이 크다.

법원 주변에서는 검찰에 대한 집단 반발 움짐임까지 느껴질 정도라는 주장까지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검찰은 이 같은 법원 측의 불만에 대해 ‘어이없다’고 일축한다.

검찰 관계자는 “브로커가 진술한 사안에 대해 당사자를 불러 면밀히 조사하는 것이 정상적인 것 아니냐”며 “이를 두고 흠집내기 어쩌고 하는 법원의 태도를 국민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답답하다”고 말했다.

다른 검찰 관계자는 “법조비리 정황을 세밀히 수사하는 것을 보고 이러쿵저러쿵 하는 것은 어이없는 일”이라며 법원 쪽의 불만을 무시했다.

검찰은 있는 그대로 원칙대로 수사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법원과 검찰은 서로 못 잡아먹어 안달인 것같이 보인다. 양측은 올해 들어 두 차례 큰 자존심 싸움을 벌였다. 영장 발부 기각을 놓고 벌어진 갈등이었다. 법원과 검찰은 이 문제 때문에 늘 사이가 안 좋았다.

양측은 지난 5월 평택 폭력 시위 사건과 관련해 첨예하게 대립했다. 당시 검찰은 ‘평택 폭력 시위’ 관련자 60명에 대해 구속 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은 이 가운데 16명에게만 영장을 발부했다. 검찰이 무리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는 비난 여론이 일었다.

검찰은 당초 평택 폭력시위 관련자들을 엄단하겠다고 공포해왔지만 무더기 영장 기각 때문에 무안해졌다. 특히 당시 이 사건은 전국민의 관심을 받고 있던 터였기 때문에 검찰 체면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일선 검찰들은 강한 불만을 드러냈고, 영장 발부를 둘러싸고 법원과 검찰은 고질적인 자존심 싸움을 또 벌였다.

평택 사건과 관련, 2차 영장 청구대상은 단순 시위 가담자가 아닌 군 철조망을 잘라내는 등 주도적으로 공권력을 훼손한 사람이 대부분이어서 검찰은 영장 발부를 낙관했지만 예상은 크게 빗나갔다.

검찰 측은 검찰이 직접 수사해 영장을 청구하는 건수는 갈수록 줄고 있는데도 법원의 영장 기각은 반대로 늘고 있는 점을 강조하면서 법원의 처사를 못마땅하게 여겼다.

이런 검찰 측의 불만에 대해 법원 측은 “말도 안 되는 논리”라고 맞섰다. 개별 사건 하나 하나가 중요한 것이지 영장 청구율과 기각률 같은 척도를 가지고 법원의 결정을 판단해선 안 된다는 논리다.

이에 앞선 지난 4월, 현대차 비자금 사건 수사 때도 검찰은 법원 때문에 자존심이 잔뜩 상했다. 현대차 사건을 수사 중이던 대검중수부는 박상배 전 산업은행 부총재, 이성근 산은캐피탈 사장에 대해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은 검찰의 증거부족과 억울한 구속자를 만들 수 없다는 이유로 두 명에 대한 영장을 기각했다.

당시 수사를 지휘한 채동욱 대검수사기획관은 “법원이 이런 식으로 나오면 수사가 안 된다”며 “전국 검찰의 뇌물사건 수사와 직결된 만큼 그냥 넘어갈 수 없다”고 강한 불만을 제기했다.

뇌물사건의 경우 증거가 피의자 진술뿐인 경우가 대부분임에도 법원이 피의자 진술만으론 부족하다는 입장을 보였고, 검찰은 수사의 막막함을 하소연했다.

법조계에서는 ‘대검중수부의 영장은 기각되지 않는다’는 정설이 있었지만 모두 옛이야기 돼 버린 셈이다. 현대차 사건에 앞서 ▲불법 대선자금 사건 ▲나라종금 사건 등 대검중수부가 수사를 맡은 대형사건에서도 법원은 보란듯이 영장을 기각했다.

특히 나라종금 사건 때엔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 안희정 씨를 상대로 중수부가 두 번이나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모두 기각되는 바람에 검찰은 감정이 상할 대로 상했다.

검찰은 당장 법원의 영장심사 기준을 문제삼으며 불만을 제기했지만 어쩔 수 없이 분루를 삼켜야 했다.

이런 정황 때문에 법원 주변에서는 “검찰이 그동안 법원 때문에 쌓였던 불만을 되 갚으려고 작정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법원의 영장 기각 때문에 그 동안 자존심 깎였던 검찰이 법원 측의 꼬투리를 잡은 이상 쉽게 넘어가진 않을 것이란 관측이다.


<양형기준법 또다시 도마 위로>
뇌물죄, 법원·판사에 따라 들쭉날쭉 최대 38개월 차이

법조 브로커 김홍수 사건으로 법원과 검찰의 갈등 요소였던 양형기준법 실행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양형기준법은 형사사건 재판에서 피고인의 구체적인 범죄 내용과 형량을 규정한 양형기준에 따라 형을 선고하도록 하는 일종의 ‘가이드라인’이다.

지난해부터 양형기준법을 둘러싸고 법원과 검찰 측은 갈등을 빚어왔다.

법원은 이 기준법의 실행에 기본적으로 반대 입장을 보여왔다. 자판기에서 음료를 뽑는 것처럼 사건기록을 넣고 형량을 정한다면 판사가 무슨 필요가 있겠느냐는 것이다. 서민범죄에 대해 선처할 수 있는 여지가 사라지기 때문에 서민 피해가 커질 것이란 주장도 내세운다.

양형기준법이 실행되면 판사의 역할은 줄어들 수밖에 없으며 재량에 따른 판결을 내리기도 어렵게 된다. 판사들로서는 전혀 반갑지 않은 일이다.

반면 법무부와 검찰은 양형기준법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양형기준법이 시행되면 비슷한 범죄에 대해 들쭉날쭉한 ‘고무줄 형량’이 사라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특히 비리사건과 관련 거물에 대한 온정주의 판결 등의 시비도 크게 줄어들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법관에 대한 전관예우와 로비 등도 사라지기 때문에 결국은 서민들을 위하는 것이라는 입장이다.

판사를 상대로 한 뇌물 제공이 문제가 된 마당이어서 법무부와 검찰로서는 양형기준법 실행을 밀어붙이기 좋은 기회를 잡은 셈이다.

뇌물죄에 대한 선고 형량이 법원과 판사에 따라 천차만별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 점도 법원을 부담스럽게 하고 있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 탁희성 박사 연구팀이 최근 전국 법원별 뇌물죄 피고인에 대한 양형 편차 등을 조사·연구한 ‘뇌물죄의 양형시스템 구축방안’에 따르면 법원별로 실형 형기가 38개월 이상 벌어지는 등 편차가 심각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2001년 1월부터 2003년 12월까지 전국 1·2심 법원에서 선고된 뇌물죄 사건 중 대검에서 자료를 관리하고 있는 847명을 대상으로 뇌물 액수와 청탁·뇌물 반환 여부 등 양형인자와 선고 결과 등을 심층 분석한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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