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기아·대우차 3강부터 삼성·쌍용까지
生死의 갈림길에 섰던 격변의 시대 대변

[민주신문=육동윤 기자]

1997년 쌍용 체어맨 탄생 ⓒ 사이버자동차산업관·쌍용자동차
1997년 쌍용 체어맨 탄생 ⓒ 사이버자동차산업관·쌍용자동차

<민주신문>이 올해로 창간 24주년을 맞았다.

1997년 그 해는 외환위기 즉, 경제적 재난인 만큼 당시 산업계에서는 굵직한 일들이 많았다.

특히 산업계, 그중에서도 자동차 시장에는 변화의 조짐이 그 어느 때보다 뚜렷했다.

지금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현대차그룹이 현재 모습을 갖추기 위해 초석을 놓은 해였고, 대우(한국지엠 전신)와 기아차(기아), 쌍용자동차와 삼성자동차(르노삼성자동차 전신)의 생사가 결정지어진 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나라 기간산업이 된 자동차 부문이 본지 창간 해인 1997년에 어떤 일들을 겪었는지, 지금 모습과는 얼마나 달라져 있으며, 뭐가 잘됐고 아쉬운 점은 무엇이었는지 살펴봤다.

현대 엑센트 ⓒ 사이버자동차산업관·현대자동차
현대 엑센트 ⓒ 사이버자동차산업관·현대자동차

◇ 현대차 전성시대 개막

현대정공(구 현대자동차)이 전성시대를 예고했다.

1996년까지 집계된 자료에 따르면 내수 시장 점유율은 현대차가 49.6%, 기아차가 25.8%, 대우(한국지엠 전신)가 24.6%의 승용차 점유율을 갖췄다.

차종별로도 쏘나타가 3년 연속 베스트셀링카 자리를 지켰고 소형차 부문에서 엑센트·아반떼가, 대형에서는 그랜저가 경쟁자들 판매량을 압도하는 분위기였다.

1996년 세대 전환점이기도 했던 쏘나타 판매량은 시리즈 II·III를 포함해 한해 거의 20만 대를 기록했다. 기아자동차의 크레도스가 10만 대 가량을 판매했으니 약 두 배의 실적을 기록한 셈이다.

준중형차 부문에서 엑센트·아반떼가 압도적 실적을 기록했는데 기아차 프라이드와 아벨라가 그 뒤를 이어가며 견제를 했다.

차타공인 현대차가 국내 1위였다.

다만, SUV 부문에서 무쏘를 앞세운 쌍용자동차를 앞지를 수는 없었다.

하지만 SUV 영역에서조차도 같은 해 하반기 판도가 뒤집혔다. 하반기 현대차 갤로퍼II가 무쏘 왕좌를 빼앗았기 때문이다.

이때만 해도 지금의 완성차 5사의 경쟁 구도는 완전히 달랐다. 제조사 3강 구도다.

르노삼성차는 전신인 삼성자동차로 출발해 당시 단 한 대의 모델도 출시하지 못한 상태였고, 쌍용과 기아는 위기설이 나돌았다.

하지만 판도는 언제든 뒤집힐 수 있다는 관측도 나왔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해 있었던 기아차 부도가 현대차에게는 국내에서 부동의 1위 기업이 될 수 있도록, 글로벌 톱티어의 자동차 회사가 될 수 있도록 해주는 기회가 됐을 것이다.

 

◇ 차 업계 生死… 삼성 ‘탄생’, 기아 ‘부도’

1990년대 자동차 생산 라인 ⓒ 사이버자동차산업관
1990년대 자동차 생산 라인 ⓒ 사이버자동차산업관

현재 르노삼성자동차 전신인 삼성자동차가 이듬해인 1998년 3월 출시를 앞둔 중형 승용차 차명을 공모하는 캠페인을 벌였다.

1997년 3월 6일 보도된 내용이다.

공모 카피는 “三星은 여러분의 차를 만듭니다. 여러분의 차 이름을 찾아주세요”였다. 이렇게 탄생한 삼성자동차 첫차 이름은 SM5가 됐다.

삼성자동차가 설립된 지 3년 만에 나오는 첫차였는데, 마니아들 사이에서 인기가 있어 아직도 중고차 시장에서 회자되는 모델이다. 물론 삼성 기술력이 아니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삼성자동차는 우리나라 토종기업으로 처음에는 현대, 기아, 대우, 쌍용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삼성’이 될 것만 같았다.

삼성그룹 후광을 바탕으로 뻗어나갈 수 있는 글로벌 시장 규모도, 그 성장 가능성도 무궁무진했다.

비록 닛산 설비와 기술력, 부품을 가져와 만드는 자동차였지만 차후 자체 개발을 목표로 스타트를 끊었다.

기술력을 가져와야 하는 것은 다른 제조사들도 마찬가지였으니 비난받을 일은 아니었지만, 후발주자로 레이스에 껴야 한다는 게 다소 부담이 됐던 건 사실이었다.

경험 부족 탓인지 IMF 사태 여파로 삼성자동차는 결국 만 3년도 못 채우고 부도를 맞아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르노삼성자동차 설립은 2000년이다.

1997년은 삼성자동차에게 있어 역사의 시작을 예고하기도 했지만, 쓰일 역사가 그리 밝지 않은 미래가 될 것이라는 복선이 됐다.

기아차 부도는 1997년 자동차 업계의 가장 큰 이슈로 꼽힌다.

정확하게 말하면 부도는 아니다. 부도유예 협약 적용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사실상 부도와 같으며 실제 법정관리가 10월에 시작됐다.

현대와 대우, 쌍용차가 신차를 발표하는 동안 기아차는 신차를 내놓을 여력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1997년은 기아에게 쓰라린 기념일일 것이다.

원망과 응원 속에서 기아는 2년이라는 시간을 정리하다가 2001년 현대차로 편입됐다.

만약 당시 기아차에 눈독들이고 있던 삼성자동차가 인수를 밀어붙였더라면 국내 자동차 시장에는 현대-삼성의 새로운 양강 구도가 마련됐을지도 모른다. 

1997년 출시한 대우 레간자 ⓒ 사이버자동차산업관·한국지엠
1997년 출시한 대우 레간자 ⓒ 사이버자동차산업관·한국지엠

◇ 수입차 점유율 확대

연초에는 수입차가 늘고 있다는 기사도 났었다.

점유율을 지금과 비교하면 아직 갈 길이 멀었을 때였지만, 소비자들 인식이 점차 바뀌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만한 사안이 됐다.

값비싼 사치품으로만 여겨졌던 수입차라 유럽 자동차 제조사들이 가격 경쟁력에 나섰다는 소식도 분위기 전환에 한몫했다.

자료에 따르면 당시 1996년 수입차 점유율은 1.54%였다. 참고로 한국수입차협회에 기재돼 있는 자료와는 약간 차이가 있는데, 이는 당시 협회에 등록되지 않은 회원사가 여럿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안다.

지금 수입차 점유율은 역대 최고 기록인 2018년 16.73%를 넘어 최고치를 경신했다.

과거 수치는 물론 지금의 1/10밖에 되지 안됐지만, 전년인 1995년 수입차 점유율이 1.17%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한 해 만에 63.24%가 성장한 놀라운 변화가 시작된 셈이다.

차종별·생산국가별 판매량도 지금과는 달랐다.

독일 프리미엄 3사가 거의 독식하다시피 하는 지금과는 반대로 미국산 브랜드가 전체 수입량의 33%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세력이 거셌다.

특히 크라이슬러·지프의 강세가 눈에 띄었다. 1996년도 수치다.

6월 보도된 기사에 따르면 1월부터 5월까지 미국차 신규 등록대수는 2027대로 전년 동기 대비 40.76%가 성장하며 급물살을 탔다. 수입차 내 점유율도 다시 48.9%로 올랐다.

같은 기간 1396대를 신규 등록한 독일차(전년 동기 대비 24.3% 감소)와는 비교되는 점이다.

다만, 하반기 본격적인 외환위기가 불어닥치면서 수입차 시장에는 한파가 찾아왔다.

전반적으로 빛을 보지 못하고 다시 침체기로 돌아선 것.

상반기 급격하게 올라간 실적이 하반기 다시 절벽으로 떨어지며 한 해 실적은 겨우 평균치에 그치게 됐다.

이듬해부터는 조금씩 판매량이 줄어들다가 이후 외환위기가 끝나갈 무렵 2000년부터는 폭발하듯 판매량이 급증해 나갔다.

 

◇ 그늘진 경제, 불 밝히는 자동차 산업

현대에서 출시한 경차 아토스 ⓒ 사이버자동차산업관·현대자동차
현대에서 출시한 경차 아토스 ⓒ 사이버자동차산업관·현대자동차

1997년 자동차 판매 실적은 내수 151만3073대에 수출 131만9685대를 기록했다.

전년도보다 수출이 10만 대 늘어났지만, 내수는 약 13만 대 이상 감소했다.

그런데도 자동차 제조사들의 신차 출시는 계속 이어졌다. 위기를 기회로 삼기 위해서다.

글로벌 무역 가속화를 선언한 때라 수출 물량이 늘어나고는 있었지만, 내수 부진은 경쟁 과열에까지 이어졌다. 이 때만 하더라도 내수 물량이 수출보다 많았을 시절이다.

시장 파이를 근소한 차이로 나눴기 때문에, 업체 간 찻값 파괴 등 출혈 경쟁이나 상호 간 비방전이 치러지는 진풍경이 펼쳐지기도 했다.

소비자들은 낮아지는 찻값과 쏟아지는 신차에 기뻐했지만, 경제적 위기는 소비 침체를 야기했고 제조사들 실적 또한 심각하게 저하되는 현상이 나타났었다. 8월께까지 신차 등록대수가 전년 같은 기간보다 5.5%가 감소했다.

이 해에 출시돼 관심을 모았던 차종은 대표적으로 현대 아토스와 뉴 엑센트, 대우 레간자, 쌍용 체어맨 등이 있었다.

현대차 효자 모델인 엑센트는 이미 베스트셀링 모델이었다. 동급에서 대우 르망 이래 가장 많은 판매량을 기록한 모델로도 알려져 있다.

뉴 엑센트는 1.5 DOHC 엔진을 탑재하고 최고출력 110마력을 발휘하는 모델이었다.

보닛에 U자형 캐릭터 라인을 적용해 디자인에 기교를 더했으며 강인한 인상의 범퍼와 에어댐, 슬림형 헤드램프, 안개등을 새롭게 적용했다.

듀얼 에어백과 4채널 ABS(Anti-Break System)이 선택사양으로 제공됐는데, 지금으로는 이해하기가 힘들 수 있다.

당시만 하더라도 자동차가 안전에 대한 심각성이 대두되지 않았을 때였다.

안전보다는 이동과 편의성에 초점을 뒀는데, 안전 옵션 사양인 에어백을 포기하고 인기가 높았던 차량용 냉·온장고, 車-車 무전기, 오토테이블 등 액세서리를 선택하는 일도 많았을 정도다.

대우자동차는 4월에 중형 승용차 레간자를 출시했다.

‘신토불이(身土不二)’ 바람을 타고 정통 한옥의 용마루선과 처마선, 한복 소매선을 차량 디자인 곳곳에 적용했다던 모델이다.

대우와 이탈디자인이 공동 개발한 레간자는 ‘프린스’ 후속 차종으로 출시해 2002년 단종될 때까지 총 17만 대 판매고를 기록했다.

경제적 위기 상황 속 4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이뤄낸 실적치고는 굉장히 선전한 셈이다.

특히, 출시 직후 4개월 동안은 ‘부동의 1위’ 쏘나타 III 판매량을 앞질러 간 적도 있다.

10월에는 쌍용 체어맨이 세상에 처음 나왔다.

체어맨은 쌍용차에서 처음 선보인 대형 승용차로 디자인이나 엔진 등 많은 부분을 벤츠와 공유했다는 것만으로도 고급 승용차의 대표 격이 됐다.

동급에서 현대 다이너스티가 있었지만, 디자인으로나 성능으로나 독일 기술력을 품은 체어맨을 이길 수는 없었다.

체어맨은 국내 승용차로는 처음으로 5단 자동변속기에 자동항법장치(오늘날의 내비게이션, 쌍용정보통신과 공동 개발), 사이드 에어백, 외날 와이퍼, 전자식 구동조정장치(ASR) 등 플래그십 모델다운 면모를 갖췄었다.

이때 나온 5단 자동변속기는 컴퓨터가 가속페달 위치와 차량 속도 등을 자동으로 인식하고 주행 특성을 기억·분석해 운전자 개성에 맞는 주행이 가능하도록 하는 ‘인공지능 최첨단 자동변속기’였다고 한다.

체어맨은 큰 인기를 끌었고 6년 뒤인 2003년에 뉴 체어맨을, 2008년에는 체어맨 H, 체어맨 W 등을 내놓고 판매하다가 2017년에 결국 단종됐다.

현재까지 가정불화가 심각했던 쌍용차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무시할 수 없는 강대기업이었다.

지금 생각해본다면 쌍용차가 SUV만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외산 차들의 기술력을 좀 더 참고해 고급 세단 시장 부문에서도 경쟁력을 갖췄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경차 시장에서도 변화가 있었다.

현대자동차는 연초부터 자체 개발하는 경차에 대한 떡밥을 뿌리더니 그해 9월 드디어 아토스(개발명 MX)를 출시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경차의 대명사로 여겨졌던 대우 티코를 견제하기 위함이었지만 성공적인 실적을 거두지는 못했다.

800cc, 1000cc급 4기통 12밸브 SOHC 타입 입실론 엔진이 탑재돼있었으며 최고 59마력 출력을 냈다.

퍼포먼스의 좋고 나쁨을 떠나 아토스가 큰 인기를 끌지 못한 데에는 키가 높은 미니밴 스타일 디자인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세단 타입을 선호하던 당시였기에 트렌드를 역행하는 것이었다. 디자인도 가격도 참패했다.

티코는 이후 마티즈로 거듭났고, 기아는 강력한 경쟁자 모닝을 출시하며 국내 경차 시장은 양강구도가 됐다.

‘기동성과 경제성은 물론, 레저생활 등 실용성을 겸비한 RV형 경승용차’라며 현대에서 내세운 아토스의 캐치프레이즈는 별다른 빛을 보지 못하고 물러나야 했다.

이후 현대차가 기아에 아토스를 떠넘기며 ‘비스토’라는 이름으로 후속 모델을 내놨지만, 이 역시 대우 마티즈 상대가 되지 못했다.

그나마 상대가 됐던 모닝은 2004년이 돼서야 나왔다.

1997년은 서울모터쇼가 개최된 해이기도 하다.

모터쇼에서 등장한 콘셉트카는 이미 전기차에서부터 미러리스 리어뷰 카메라, 내비게이션, 운전자 졸음방지 시스템, 장애물 감지 시스템, 코너링 램프 등에서부터 PC, 전화, 팩시밀리 등 사무기기까지 소개했었다.

20년이라는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이 중 대부분은 현실화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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