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 문제 희석, 진보 보수 논쟁 무력화 등 색깔 유사


 

▲ 이명박 서울시장과 고건 전국무총리는 대권주자 지지율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지만, 둘은 여러가지 측면에서 공생관계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말 ‘고건 vs 이명박-2007 대격돌’이란 제목의 정치 서적이 출판돼 세간의 이목을 끈 바 있다. 차기 대선구도에서 지지율 1·2위를 달리고 있는 고건 전 국무총리와 이명박 서울시장의 인물상과 대결 구도 등을 분석한 내용이다.

정치권에는 이 둘 외에도 많은 대선후보감들이 줄지어 있다. 대선까지는 아직 1년 반이 넘게 남았기 때문에 이 두 인물만의 대결을 주제로 삼은 것은 적절치 못한 측면도 있다.

하지만 현재 둘은 대권 수위권에서 치열한 지지율 경쟁을 벌이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다소 상반된 이미지 및 대결 역학 구도의 복잡성 때문에 비상한 관심을 끈다.

이런 가운데 정치권에서는 이 둘이 묘한 ‘공생관계’를 이루고 있다는 흥미로운 분석이 나오고 있다. 서로 대척점에 서있는 것 같으면서도, 서로를 도와주는 독특한 역학구도 위에 놓여 있다는 게 분석의 요지다.

정치권의 한 중견 인사는 최근 기자들과의 사석에서 “고건과 이명박은 여러모로 공생관계에 있기 때문에 둘 중 한 사람의 지지율이 몰락할 경우 동반 몰락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고 전총리와 이 시장의 관계가 공생적이라는 분석은 정치권에서 종종 회자돼 왔다. 경쟁적인 두 인물이 서로 상대방의 지지율을 높은 상태로 유지시키고 있다는 내용이 다소 독특하지만, 따지고 보면 설득력 있는 측면도 많다. 이 같은 분석은 ▲나이 ▲이념 ▲결집 등 대략 세 가지 부문에서 설명된다.

1 나이

고 전총리는 1938년생으로 올해 나이 68세고, 1941년생인 이 시장은 고 전총리보다 세 살 적은 65세다. 현재 서울시장 선거에서 40대들이 격돌하고 있는 점과 비교하자면 둘은 꽤 고령이다.

둘은 공교롭게도 나이에서도 1·2위를 달리고 있다. 정동영 의장·김근태 최고위원·천정배 법무장관 등 여권의 대권 후보감들과 박근혜 대표·손학규 경기지사 등 야권 주자들이 모두 50대인 것과 비교하면, 나이에서 다소 격차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고건-이명박 양자 대결구도는 서로간의 약점인 나이문제를 희석시킨다. 60대 중·후반인 두 사람이 서로 수위권 각축을 벌이고 있기 때문에 ‘외롭지 않다’는 얘기다.

고 전총리가 박 대표나 손 지사와 대결을 펼칠 경우 나이 문제는 고 시장의 최대 약점이 될 수 있다. ‘50대 대통령이냐, 70대 대통령이냐’의 구도로 흘러갈 경우 고 전총리는 상당히 불리해진다.

이런 관측은 이 시장의 경우에도 똑같이 해당된다. 이 시장이 정 의장과 맞붙을 경우 ‘60대 산업화 세대와 50대 민주화 세대의 대결’ 구도가 그려지면, 이는 이 시장에게 부담이 될 소지가 크다.

따라서 둘은 약점이 될 수 있는 ‘상대적으로 많은’ 나이 문제를 서로 자연스럽게 해소시키고 있는 중이다.

2 색깔

두 사람의 경쟁구도에서는 ‘진보와 보수’ 논쟁도 묻혀버린다. 두 명 모두 보수성향이 짙기 때문이다. 둘은 개혁진영과 보수진영의 싸움보다는, 관료출신과 기업출신의 인물 대결을 펼칠 가능성이 크다. 다른 측면에선, 영남 출신과 호남 출신의 지역대결 구도가 기존의 진보와 보수 구도를 완전히 덮어버릴 수도 있다.

이 같은 관측은 고 전총리의 독특한 ‘존재’에 기인하는 바 크다. 고 전총리는 DJ정권 시절 서울시장 선거에서 승리했고, 노무현정권 들면서 초대 총리로 발탁됐지만 그를 개혁세력으로 분류하기엔 무리가 따른다.

‘처세의 달인’이라는 별명처럼 그는 박정희정권 산업화 시절부터 참여정부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정권에서 출세가도를 달렸다. 그의 ‘정치적 주소’는 늘 여당이었다. 고 전총리는 민노당을 제외한 모든 정당으로 당장 입당한다하더라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카멜레온’ 같은 정치색깔을 지닌 독특한 인물이다.

이명박 서울시장은 현재 야당의 대표적인 대권주자이긴 하지만 그를 개혁세력 분류시키기도 어렵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재벌기업인 현대건설의 최고경영자를 지낸 후, 92년 정계 입문 당시 그는 여당이었던 민자당을 선택했다.

97년과 2002년 대선 때엔 보수와 진보의 대결구도가 명확했다. 하지만 고 전총리와 이 시장이 대결을 벌일 경우 과거와 같은 진보와 보수의 명확한 ‘색깔 대결’은 더 이상 의미가 없어진다.

이런 점은 보수 진영인 한나라당의 이 시장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둘 간의 인물 대결이 펼쳐질 경우 젊은 개혁지지세력과 전통적인 진보세력이 고 전총리에게 등을 돌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3 결집

“강력한 경쟁자가 있으면 이에 맞대결 할만한 후보한테 지지가 몰리는 현상이 있다”는 분석은 선거판의 기본 법칙 중 한가지로 통한다. 이 같은 법칙은 고 전총리와 이 시장의 관계에도 적용될 수 있다. 이 법칙에 따르면, 2004년 말부터 고 전총리의 지지율이 1위를 달렸기 때문에 한나라당에선 이에 대적할만한 이 시장의 지지율이 ‘청계천 효과’를 기점으로 급상승하기 시작했다.

반대로 이 시장의 강세 때문에 고 전총리에 대한 지지율이 다시 상승하는 현상도 벌어지는 것이다. 한나라당 후보가 약체라면 굳이 고 전총리에게 몰리지 않고, 정동영 의장이나 김근태 최고위원에게 지지가 몰릴 수도 있다. 이 시장이 강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에 고 전총리에게 ‘반(反)한나라당 지지층’이 결집하고 있다는 얘기다.

따라서 고 전총리는 이 시장 때문에 높은 지지도를 유지하고 있으며, 이 시장 역시 고 전총리에 대한 견제 심리 때문에 강세를 지속시킬 것이라는 분석이다.


<고건과 이명박의 함수관계>
고건 지지율 꺾이면 한나라당 쪼개진다?

고건 전 국무총리와 이명박 서울시장이 서로의 지지도를 끌어올리는 역할을 하고 있는 반면, 다른 한편으론 둘 중 한 명이 나가 떨어지면 나머지 한 명도 무너질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한마디로 둘의 관계는 함께 살고 함께 죽는 ‘동생동사’ 운명이라는 것이다. 고 전총리가 먼저 무너질 경우 이 시장은 당장 조기대세론을 탈 수는 있다. 하지만 한나라당 안팎에선 “여권의 집중포화 때문에 과거 ‘이회창 꼴’ 날 수 있다”는 우려가 팽배하다. 뿐만 아니라 고 전총리의 지지율이 꺾이면서 여권의 후보군이 지지율 약세를 보인다면, 한나라당 대선후보간에는 분열이 발생될 수 있고, 심할 경우 당이 깨질 가능성도 배제하기 힘들다.

이 시장 측의 한 관계자는 “(고건과 이명박) 서로가 마라톤에서 상호 페이스를 지켜주는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하고 있다”면서 “그래서 고건 측의 인기가 살아야 하나, 일찍 죽는 것이 도움이 되나’ 고민한 적이 있지만, 두 사람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국민들에게 관심거리를 주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선의의 경쟁을 하는 것이 이 시장 쪽으로선 여러모로 안전하다는 얘기다.

한편, 보수 성향의 두 인물이 이 같은 페이스를 달리며 대선 본선에서 맞붙을 경우 진보를 표방하는 ‘제3의 인물’이 등장할 것으로 정치권은 내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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