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색선전, 고소·고발로 ‘진흙탕 싸움’ 변질
후보난립·야합 ‘잡음’ 속 이기흥 회장 연임
이종걸 후보 ‘갈지자’ 행보에 체육계 경악
끝까지 원칙·정도 지킨 유준상 후보 부각

[민주신문=육동윤 기자]

제41대 대한체육회장 선거 후보로 나섰던 이기흥 현 대한체육회장, 강신욱 단국대학교 교수, 이종걸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대표 상임의장, 유준상 대한요트협회장(왼쪽부터) ⓒ 뉴시스

“우당탕탕 와르르르, 한바탕 쓰나미가 휩쓸고 간 느낌이다.”

지난 18일 제41대 대한체육회장 선거를 치른 체육계 인사들의 심정은 한결같았다. 

선거라는 축제 대신 씁쓸하고 우울한 결과만 남았기 때문이다.

금번 선거전은 후보들 사이에 난무한 유례없는 비방과 흑색선전, 고소·고발로 ‘진흙탕 싸움’이란 지적을 받았다.

이른바 ‘체육계 대통령’을 뽑는 과정에서 지킬 수 없는 공약이 쏟아졌고, 후보 간 야합과 배신은 그야말로 막장드라마 수준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이번 선거는 결국 현 대한체육회장인 이기흥 후보가 유효투표 1974표 중 915표(46.35%)를 얻어 연임에 성공했다. 총 선거인단은 2170명으로, 총 투표율은 90.97%를 기록했다.

경쟁자로 나섰던 강신욱(단국대학교 국제스포츠학부 교수) 후보가 507표, 이종걸(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대표 상임의장) 후보가 423표, 유준상(대한요트협회장) 후보는 129표를 받았다.

결과만 놓고 보면 이기흥 후보가 과반에 가까운 몰표를 받으면서 별다른 반전 없이 마무리된 셈이다.

그러나 선거 이전까지만 해도 이번 대한체육회장 선거는 그야말로 한치 앞을 볼 수 없는 구도였다. 

일찌감치 ‘이기흥 대 반(反)이기흥’ 전선이 체육인들 사이에서 암암리에 형성되면서 새로운 시대에 대한 갈망이 어느 때보다 높았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해 극단적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고(故) 최숙현 선수 경우를 비롯, 조재범 코치의 폭행 및 성폭행 사건 등 국민 공분을 산 사건·사고들에 현 대한체육회 집행부가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고 무책임과 무능, 방임으로 일관한 데 대한 ‘변화와 개혁’의 목소리가 높았다.

이는 많은 후보들이 새 체육회 구성의 기치 하에 우후죽순 출마 의사를 밝힌 명분이었다.

최종 입후보자 외에도 장영달 우석대 명예총장, 문대성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 집행위원, 윤강로 국제스포츠연구원 원장, 이에리사 전 태릉선수촌장 등이 반이기흥을 외치며 출마를 저울질했다.

이들은 중도에 타 후보를 지지하거나 ‘야권 단일화’를 위해 변심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웃지 못할 해프닝도 있었다.

지난달 28일 자격 미달로 출마할 수 없게 된 장영달 명예총장의 ‘대타’로 갑자기 등장한 5선 국회의원 출신 이종걸 후보는 당일 출마 선언 기자회견 이후 바로 강신욱 후보 지지 의사를 표명하고 후보 등록을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는 한때 후보 단일화를 위한 결단으로 비춰졌다.

하지만 이종걸 후보는 하루 뒤인 29일, 후보 등록 마감 4분을 남기고 불출마 의사를 번복하며 출사표를 던졌다.

지지자들의 요구를 외면할 수 없다는 핑계였지만, 체육계 그 어느 곳에서도 설득력을 얻지 못했다.

각계각층에서 비난여론과 빈축이 쏟아졌다. 그의 ‘갈지자’ 행보에 “체육인이 ‘졸(卒)’로 보이느냐”는 질타도 있었다.

여러 체육계 인사들은 “이번 선거가 이렇게까지 주목받을 것으로 생각지 못했다”며 갑작스레 ‘등판’해 선거판을 온통 휘저은 후보를 비판했다.

이들은 “처음엔 현 집행부의 무능을 지적하며 한번 바꿔보자는 주장인 줄 알았는데 결과적으로 자신의 잇속만 챙기려 하는 것이었다. 마치 기존 정치판 선거같았는데, 그 때문에 더 표가 갈렸다”고 비난했다.

“정치인들이 체육을 완전 만만하게 본 것”이라며 “정치 철새같다”는 일갈(一喝)도 있었다.

언론계 일각에선 ‘정치권 실세 개입설’까지 제기했다. 

결과적으로 강신욱 후보와 이종걸 후보가 받은 표를 합치면 이기흥 후보의 득표수보다 많았다. 단일화를 이뤘다면 결과는 달리 나왔을 가능성이 높았다는 뜻이다.

여기에 이종걸 후보는 급기야 이기흥 후보를 직권남용 및 공금횡령 혐의로 고발하기까지 했다.

이기흥 후보가 과거 대한수영연맹 회장직을 수행하는 동안 딸을 연맹에 위장 취업시켰다는 주장이었다. 이에 이기흥 후보는 무고 혐의로 맞고발했다.

강신욱 후보도 빠지지 않았다. 강 후보는 지난 15일 경기도선관위에 이기흥 후보를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제소했다.

강 후보 측 관계자는 “이기흥 후보가 대법원에서 모든 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을 받았다고 주장한 것은 허위”라며 “무죄 취지의 파기환송은 변호사법 위반 혐의와 관련한 것이다.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징역 1년 6개월의 실형이 선고됐다”고 주장했다.

결국 선거라는 축제는 끝났지만, 승자와 패자 모두 경찰 조사를 받아야 하는 상황에 부닥쳤다.

어지러웠던 선거는 누가 당선되든, 더 나은 방향으로의 변화보다는 체육인들에게 훨씬 어려운 상황만 만들어낸 셈이다. 우여곡절 끝에 진흙탕 싸움은 끝났지만 앞으로 의구심만 가득한 4년을 지켜볼 공산이 크다.

그래도 “한줄기 희망을 보았다”고 말하는 체육인들도 있다. “끝까지 원칙을 지키고 정도를 걸은 후보도 있었다”는 것이다.

유준상 후보를 가리키는 듯하다.

강렬하고 자극적인 공약과 포퓰리즘, 흑색선전 등에 가려져 투표권을 가진 선거인들이 그를 제대로 살펴보지 못했다는 평가가 체육계 내부에서 조용하게 나오고 있다.

일각에선 마라톤 매니아인 그를 빗대 “단일화 조성에 힘쓰면서 홀로 양심을 지켜가며 깨끗한 선거를 치른 유준상 후보의 체육계를 위한 마라톤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얘기도 들려온다. 

과정이 어찌됐든, 결과가 나온 이상 체육계 ‘맏형’인 유 후보는 그의 신념과 성격상, 무엇보다도 체육계의 통합에 힘을 보탤 것이다. 아픈 곳은 치료하고 부러진 곳은 고쳐나갈 것이다. 

지난했던 진흙탕 싸움은 이제 끝났다. 

상대 후보와의 싸움에 ‘무의미’하게 쓰던 힘을 이제는 체육계 현안을 해결하는 데에 써야할 때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민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