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당축소 vs 이익공유… 은행·금융사 경영 개입하는 정치권
배당축소 하면 주주가치 훼손, 이익공유 하면 배임죄 우려

[민주신문=서종열 기자]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시중은행들이 '배당축소'를 권고한 금융감독 당국과 '이익공유제'를 주장하는 더불어민주당 요청으로 정초부터 경영전략에 혼선을 빚고 있다. ⓒ 뉴시스

"배당을 줄여서 코로나19에 대비하라." - 윤석헌 금융감독원장

"은행들, 이자 안받아야." -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

 

금융권을 대표하는 은행들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가고 있다. 

금융당국과 정치권이 은행을 놓고 정반대 경영전략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당국이 이미 지난해 하반기부터 코로나19 사태에 대한 불확실성을 대비하기 위해 '배당 축소'을 요구한 바 있다. 

그러나 집권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최근 '이익공유제'를 정책으로 내놓으면서 은행 경영전략에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 배당 대부분을 차지하는 이자를 받지 말라고 요구하고 있어서다. 

특히 정치권에서는 요구하고 있는 '이익공유제'의 경우 주주가치 훼손은 물론, 경영진의 배임죄 우려까지 있어 은행들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 배당축소 권고에 이익공유제까지 등장

금융당국의 한 축을 맡고 있는 금융감독원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은행들에게 "배당을 축소하라"는 시그널을 보내왔다. 

코로나19 팬데믹에 따른 불확실성이 높아짐에 따라 배당을 축소하고 이익유보금을 늘려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라는 게 금감원 취지였다. 

실제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은 지난해 말 배당축소와 관련해 "배당성향은 15~25% 선에서 조율이 이뤄질 것"이라며 "현재 금융사들과 조율과정이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은행을 비롯한 금융사들은 금감원 권고에도 내부 논란이 많았다. 금융당국 권고에 따르자니 주주가치를 훼손시킬 수 있다는 논란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특히, 금융사들의 주가가 하락하면서 배당축소 권고에 대한 반발이 있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새해가 되자 또 다른 악재가 다시 터졌다. 이번에는 정치권에서 '이익공유제'를 들고나왔기 때문이다. 

집권당인 더불어민주당이 구상한 이익공유제는 코로나19 사태로 수혜를 입은 기업들이 사회적 책임 차원에서 이익을 공유하자는 게 핵심 내용이다. 

금융권과 관련해선 △금리 인하 △이자 납부 유예 △임시적인 개인신용등급 유지 △가압류·근저당 등의 채권회수 활동 전면 보류 등이 거론됐다. 

이자 납부 유예 등의 구체적 방법들이 거론되자 곧바로 논란이 제기됐다. 금융사들의 기업활동을 제한하겠다는 의도로 해석됐기 때문이다. 

이에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곧바로 나서 "여러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지만, 정치권이 기업활동에 관여하는 것은 몹시 신중해야 한다"며 진화에 나섰다. 

그럼에도 금융사들, 특히 은행들은 정치권의 이익공유제를 '이자를 받지 말라'는 내용으로 이해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은행과 금융권이 큰 수혜를 입은 만큼 일정기간동안 이자를 유예해 달라는 의미로 이익공유제를 해석하고 있는 상황이다. 

 

◇ 금융당국 vs 집권당 사이에서 눈치싸움

앞서 밝힌 것처럼 금융사들은 지난해 코로나19 사태에도 대부분 높은 실적을 일궈냈다. 

4대금융지주의 지난해 3분기 누적 순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15% 늘어났다. 

그러나 금융그룹들의 속내를 살펴보면 호실적을 반기는 분위기는 아니다. 금융그룹 내 계열사 중에서 가장 덩치가 큰 은행들의 실적이 오히려 줄었기 때문이다. 

실제 금감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국내 은행들의 지난해 3분기 누적 순이익은 10조3000억 원으로 2019년 12조1000억 원 대비 15% 가까이 줄었다.

여기에 코로나19 팬데믹에 따른 소상공인·중소기업에 대한 대출원금·이자유예 조치가 올해까지 연장되면서 향후 부실에 대한 우려가 오히려 높아진 상황이다.

금융당국이 코로나19 팬데믹에 따른 불확실성을 언급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러나 규제산업인 은행 입장에서 정치권 요구를 무작정 묵살할 수도 없는 게 사실이다. 이 때문에 상당수 은행들은 내부적으로 이익공유제와 관련한 법률 검토에 착수했다. 

그 결과 오히려 은행들의 불안감이 더 커졌다. 집권당이 밀고 있는 이익공유제를 받아들일 경우 현 경영진에 대한 배임죄 논란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형법상 배임죄는 주주 이익을 저해하고 재산권을 침해할 수 있을 때 성립된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은행은 영리를 목적으로 한 상법상 회사로 이익공유제를 도입했을 때 은행이 얻을 이익이 줄어든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면 주주들이 경영진을 배임죄로 고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 자꾸 손 벌리는 정치권에 은행들 불만

이익공유제에 대한 논란은 은행 경영진 뿐 아니라 은행 노조에서조차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양극화 해소를 위해 필요한 정책이란 점을 인정하지만, 소속 기업의 실적 하락과 소속 노조원들의 금전적 손실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시중은행의 한 노조 관계자는 "이익공유제가 좋은 정책이란 생각은 있지만, 은행 입장에서는 실적 하락이 우려된다"면서 "실적 하락이 현실화되면 명예퇴직을 비롯해 우리사주의 가치 하락 등 후폭풍도 염려된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정치권이 금융사들을 '황금알을 낳는 거위'처럼 여기는 분위기에 대한 비토도 나오고 있다. 

정부가 추진 중인 뉴딜펀드부터 사회공헌활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금융권 지원을 당연히 요구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금융사의 한 관계자는 "정부든 정치권이든, 무슨 일만 하면 금융사와 은행들의 지원을 당연시하게 요구하는 분위기가 굳어지고 있다"면서 "과거 관치금융 시대처럼 민간은행들을 국책은행처럼 생각하는 선입견이 정치권에서는아직도 단단하게 자리잡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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