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거래은행인 하나·신한·우리보다 낮은 금리 제시가 1900억 원 차입 불러
더 비싼 금리로 빌렸으면 셀프 ‘직무 유기’… 국감서 전범기업 딱지 ‘억울’

[민주신문=허홍국 기자]

한국도로공사 김천 본사(왼쪽)와 인천국제공항공사가 운영하는 인천국제공항 전경 ⓒ 뉴시스

한국도로공사와 인천국제공항공사가 국정감사라는 정치 이벤트에 때 아닌 전범기업 낙인이 찍혀 그 내막에 관심이 모인다.

일본계 은행에서 유동성 확보 등 이유로 운영 자금을 차입, 이자를 지급한 게 일본 우익성향 정당에 지원되지 않았겠느냐는 의혹이 불거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기업이 외국계 은행에서 가장 낮은 금리로 운영 자금을 차입하는 것은 문제되지 않는다.

더 비싼 이자를 주고, 국내외 시중은행에서 운용 자금을 끌어들이는 것 자체가 공기업 스스로 직무 유기하는 것과 다름없는 까닭이다.

15일 공공기관 업계에 따르면 도로공사와 인천국제공항공사의 일본계 은행 국내 지점 단기 차입금이 올해 국정감사에서 ‘십자포화’를 맞았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한 국회의원이 미쓰비시도쿄UFJ은행 국내 지점 차입금 대가로 지급했던 100억 원의 이자가 일본 우익 정당 지원에 흘러갈 가능성을 제기, 때 아닌 비난을 받았다.

미쓰비시도쿄UFJ은행은 2차 세계 대전 당시 전범기업인 미쓰비시의 금융 계열사다. 

미쓰비시는 전쟁 당시 강제 징용을 하고도 국내 대법원 배상판결을 이행하지 않는 일본 기업이다. 이 기업은 일본 내에서 우익이라 불리는 자민당에 정치 후원금을 기부해 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앞서 도로공사는 미쓰비시도쿄UFJ은행으로부터 지난 2016년부터 3년 간 고속도로 건설 마련 목적으로 1000억 원, 인천국제공항공사도 같은 기간 차입금 및 만기상환 이유로 900억 원을 빌려온 바 있다. 

현재 차입금은 상환이 완료된 상태다.

한국도로공사 단기차입금 현황(상단)과 인천국제공항공사 단기차입금(아래) 현황 ⓒ 알리오

◇ 외국계 자금 차입 피할 수 없었나

도로공사와 인천국제공항공사가 당시 일본 미쓰비시 계열 은행에서 총 1900억 원 규모의 차입을 피할 수 없었을까. 

내막은 이렇다.

두 공기업은 2016년 당시 운영자금 등 목적으로 국내 원화 시장에서 돈을 빌릴 때 국내 지점을 둔 외국계 은행들과 시중은행 등이 낸 제안서 중 가장 낮은 금리를 선택했다.

도로공사는 주거래 은행이 하나은행임에도 외국계 은행에서 1000억 원이라는 거액의 돈을 단기 차입금으로 빌렸다.

이 당시 차입은 공개 입찰로 진행됐고, 여러 금융사들이 제안서를 낸 것으로 전해졌다. 이 차입금 콜옵션 조건은 정확히 확인이 안되고 있다.

다만, 콜옵션은 최종 차입금 금리가 낮아지면 특약되는 경우 이뤄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금 사정이 좋아졌을 때 일시 상환 조건이 대표적이다. 차입하는 쪽이나 대여하는 쪽에서 유리하면 이 같은 특약이 내걸린다.

인천국제공항공사도 같은 시기 900억 원을 차입했다. 차입 조건은 채권 만기 시 일시 상환이다.

차입금은 주거래은행인 신한은행과 하나은행, 우리은행 등 국내 시중은행을 포함해 금리를 제안 받았다. 이 가운데 가장 낮은 금리를 제시한 국내 지점을 둔 외국계 은행이 선택됐다는 게 공사 측 재무 담당 관계자 설명이다.

이는 사실상 국내 원화 조달인 셈이다.

해외 차입은 글로벌 본드인 달러를 비롯해 중국 위안화, 홍콩 및 호주 달러 등 이종통화를 발행하고 있다. 현재 해외 차입금 비중은 전체 차입금의 10% 미만이다.

미쓰비시도쿄UFJ은행 홈페이지 ⓒ 미쓰비시도쿄UFJ은행

◇ 다른 공기업도 외국계 은행서 차입할까

다른 일부 공기업도 일본계 등 외국계 은행에서 운영자금 등을 차입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코레일과 캠코 등도 원화를 차입할 경우 국내든 국외든 최저 이자가 적용되는 은행에서 자금을 차입하고 있다.

이를 뒤집어 보면 도로공사와 인천국제공항공사가 미쓰비시도쿄UFJ은행 국내 지점에서 차입하는 것이 하등의 문제가 없다는 얘기다.

오히려 최저 금리를 제안한 외국계 은행을 선택하지 않으면 공기업 스스로 직무 유기가 될 가능성이 높다. 돈을 빌려오면서 더 많은 이자를 줘야 하기 때문이다.

이 차이는 국내 시중은행과 글로벌 은행의 국내 지점에 적용되는 기준 금리가 다른 데서 발생한다. 핵심은 낮은 기준 금리로 인한 이율 차이다.

은행 체격도 차이가 커 금리 인하 여력이 더 있는 것도 최저 금리를 제안할 수 있는 요인이다.

미쓰비시도쿄UFJ은행은 일본 최대 은행이자 지난해 총자산 기준으로 세계 5위 글로벌 뱅크다.

국내 시중은행 자산 1위인 KB국민은행보다 자산 규모가 5배 이상 큰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 도로공사·인천국제공항공사, 전범기업 딱지 ‘억울’

두 공사는 이번 국감에서 전범기업 딱지가 붙였다. 

그러나 이 딱지가 과연 정당한 것인지 의문이 남는다.

국내 내로라는 현대차, 기아차, 르노삼성, 한국지엠 등 자동차기업도 전범기업이라는 미쓰비시 그룹 계열사인 미쓰비시 전기와 거래를 한 바 있다.

이들 기업도 이번 국감에서 제기된 논리라면 전범기업과 거래를 통해 이익을 남기는 만큼, 전범기업 딱지를 붙여야 하는지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한국은 지난해 OECD 기준 세계 12위 경제 규모다. 

자유무역질서 하에 공기업이든 민간 기업이든 유리한 금융자본을 활용하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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