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신문=김현철 기자]

10일 오전 서울시청 시장실 앞에 고 박원순 시장의 사진이 보이고 있다. ⓒ 뉴시스

박원순 서울시장이 10일 새벽 0시 2분 서울 북악산 숙정문 인근 산속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이날 경찰은 박 시장 딸의 신고를 받고 수색을 펼친 지 약 7시간이 지난 시점에 수색견이 박 시장의 시신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박 시장 딸은 지난 9일 오후 5시17분쯤 박 시장이 극단적인 선택을 암시하는 통화를 한 뒤 연락이 두절됐다고 실종 신고를 해와 수색에 나섰다고 밝혔다. 

앞서 박 시장은 지난 8일 전직 비서라고 밝힌 ㄱ씨로부터 성추행 혐의로 고소를 당했다. 

경찰 관계자는 “박 시장으로부터 성추행 피해를 당했다고 8일 고소장이 접수돼 9일 새벽까지 조사를 받았다”고 말했다. 
 
박 시장 비서로 일하던 직원 ㄱ씨는 조사에서 비서로 일하기 시작한 2016년 이후 박 시장의 성추행이 이어져 왔고, 텔레그램 메신저를 통해 박 시장이 성적 수치심을 느낄 수 있는 개인적 사진을 여러 차례 보내왔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ㄱ씨는 “완곡한 거부 의사를 표현했으나 박 시장의 성적 수치심을 주는 대화는 계속됐고 다른 직원들에게 피해 사실을 알렸으나 도움을 받지 못했다”고도 말했다. 
 
ㄱ씨는 박 시장과 나눈 텔레그램 메신저 대화 내용을 비롯한 사진 등 피해를 입증할 증거도 상당량 경찰에 제출하고, 자신 말고도 더 많은 성폭력 피해자가 있다고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ㄱ씨는 이후 사직한 뒤 정신과 상담 등을 받던 중 엄중한 법의 심판이 필요하다 판단돼 고소를 결심하게 됐다”고 말했다.   
 
경찰은 고소인 조사를 마친 뒤 박 시장 소환 일정을 검토 중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사안이 중대하다 생각해 민갑룡 경찰청장에게도 보고가 된 것으로 전해진다. 박 시장은 이를 의식해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 

최익수 서울지방경찰청 형사과장이 10일 새벽 서울 종로구 와룡공원 앞에서 박원순 서울시장 사망사건과 관련해 브리핑을 하고 있다. ⓒ 뉴시스

박 시장은 1980년 제22회 사법시험에 합격된 뒤 대구지검 검사로 임용됐지만 사람을 잡아들여야 한다는 죄책감에 6개월 만에 사표를 냈다. 

이후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다 참여연대를 설립하고, 아름다운재단과 아름다운가게를 운영하면서 우리나라 시민사회운동을 대표하는 인물 중 한 명으로 떠올랐다.

박 시장이 정계에 진출한 것은 2011년 10·26 시장 보궐선거였다. 무소속으로 출마한 그는 지지율은 5%가량에 불과했지만, 당시 안철수 교수가 출마 포기와 함께 지지 선언을 하자 지지율이 급등해 당시 한나라당 나경원 후보를 약 30만 표 차이로 따돌리며 승리했다.

이어 2014년 6·4 지방선거에서 새누리당 정몽준 후보를 63만여 표 차로 이기고 재선에 성공하면서 자연스럽게 유력한 차기 주자로 부상했다. 이후 내리 세 번 연속 서울시장 자리를 사수했다.  

박 시장은 최근까지만 해도 서울시청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포스트 코로나’ 시대 서울시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그린 뉴딜’ 비전을 발표하는 등 대권을 향한 걸음을 차곡차곡 쌓아갔다. 최근에는 부동산 정책과 관련, 강남 그린벨트 완화 문제를 둘러싸고 민주당 지도부와 각을 세우며 본인의 입지를 키워나갔다. 

그러나 비서 성추행이라는 충격적인 사건으로 그의 정치 여정은 허망하게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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