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소서 발인하고, 영결식은 생략…25년간 수장 맡아 화학ㆍ전자 글로벌 도약 기틀 마련

사진=LG그룹

[민주신문=허홍국 기자] 지난 14일 숙환으로 별세한 구자경 전 명예회장이 영면에 들었다. 고인은 평소 생활신조대로 마지막 가는 길도 소탈했다.

17일 오전 서울 한 대형병원에서 진행된 발인식은 여타 대기업 오너들과는 달리 빈소 안에서 간소하게 엄수됐다. 별도의 영결식은 생략했다.

구 명예회장 장례식은 고인의 근검절약 신념대로 가족장 형태의 비공개 4일장으로 치러졌다.

비공개로 진행된 발인식에는 상주인 차남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 장녀 구훤미씨, 삼남 구본준 LG고문, 차녀 구미정씨, 사남 구본식 LT그룹 회장, 손자 구광모 LG 대표 등 직계 가족과 범LG가 친인척까지 100여명이 참석했다.

발인식에는 LS 구자열 회장과 LS산전 구자균 회장 등 LS 경영진과 GS그룹 명예회장인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과 허동수 GS칼텍스 명예회장, 허태수 GS그룹 회장, 허세홍 GS칼텍스 사장, 허윤홍 GS건설 사장 등 GS 경영진 등 범 LG가 주요 기업인들과 권영수 LG 부회장 등 일부 LG그룹 관계자들도 함께 했다.

이문호 LG공익재단 이사장은 이날 추도사를 통해 “‘고객을 위한 가치창조’와 ‘인간존중의 경영’이 바로 회장님의 경영사상”이라며 “우리 모두가 존경하고 사랑했던 큰 별”이라고 밝히며 고인을 기렸다.

고인은 LG그룹 창업주 연암 구인회 초대 회장의 6남4녀 중 장남으로, 부친의 갑작스런 작고로 1970년 45세로 LG그룹 2대 회장에 올랐다.

서울 한 대형병원에 마련된 구자경 명예회장의 빈소는 지난 16일 밤 9시께도 한산했다. 사진=허홍국 기자

세계화 기틀 마련

2대 회장으로 1995년까지 25년간 LG그룹을 이끌며, 전자와 화학 분야 양대 축을 중심으로 세계화의 기틀을 다졌다.

구 전 명예회장은 1990년대 들어 ‘세계화 경영전략’의 기치를 내걸고 유럽, 중국, 아시아, 아프리카 등으로 진출해 영업 및 생산기지를 해외로 확장했다.

이 때문에 현재 그룹 주력 계열사인 LG전자, LG디스플레이, LG화학 등의 세계 1위 경쟁력과 재계 4위 위상의 토대를 마련한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구 명예회장은 회장으로 재임하는 동안 LG그룹 매출을 260억원에서 30조원대로 약 1150배 성장시켰고, 임직원 수도 2만명에서 10만명으로 늘었다.

그는 기술입국(技術立國) 일념으로 주력사업인 화학과 전자 분야의 연구개발에 열정을 쏟아 70여 개의 연구소를 설립, 국내 최초 기술과 제품을 개발해내며 산업 고도화를 이끌었다.

이렇게 획득한 기술력은 최근 LG전자가 내놓은 대형 곡면 울트라HD TV 등 현재 최신 기술을 선보이는데 원천이 됐다. LG화학이 지난해 초 세계 최초로 개발ㆍ양산한 48V 리튬이온 배터리 팩도 마찬가지다.

LG그룹 직원들이 지난 16일 밤 9시께 구자경 명예회장 빈소 앞에서 조문객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허홍국 기자

혁신 전도사ㆍ재계 귀감

구 명예회장은 재계에서 혁신 전도사로 평가가 나온다. 선진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 민간기업으로 최초로 기업을 공개해 기업을 자본 시장으로 이끌어 냈고, 국내 최초로 해외 생산공장을 설립해 세계화를 주도했다.

여기에 과감하고 파격적인 경영 혁신을 추진해 자율경영체제 확립하고 고객가치 경영도 도입했다.

또 재계에서는 처음으로 스스로 회장직을 후진에게 물려줘 대한민국 기업사에 성숙한 후계 승계의 모범 사례를 제시하기도 했다.

구 명예회장은 1995년 2월 LG와 고락을 함께 한 지 45년, 회장으로서 25년간 재직한 뒤 스스로 물러났다. 이는 국내 최초 대기업 ‘무고(無故) 승계’로 기록됐다. 은퇴할 나이가 안 되는 데도 자리를 장남인 고 구본무 회장에게 넘겨줘 재계의 귀감으로 남았다.

은퇴 후에도 자연인으로서 소탈한 삶을 보내며 인재 양성을 위한 공익활동에 헌신했다. 고인은 평소 ‘근검절약’을 생활신조로 삼으면서 이를 실천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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