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전격 불출마 선언... 제도권 떠나 통일운동 매진
인적쇄신 향한 ‘386용퇴론’부터 ‘靑 출신 출마자 경고’

임종석 당시 비서실장이 지난 1월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2019년 첫 국무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문재인 대통령과 이낙연 국무총리와 함께 걷고 있다. 사진=뉴시스
[민주신문=김현철 기자] “어제 내내 ‘왜 그랬을까’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1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그의 정계 은퇴 선언은 정말 예상치 못했던 일이다”며 쓴 글이다.   
 
17일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의 불출마 선언을 두고 민주당 의원과 당직자들 사이에서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보다 ‘왜 그랬을까’에 집중됐다. 그만큼 정치권 특히 여권에 던져진 파장은 컸다.
 
임 전 실장이 남긴 “통일 운동에 매진하겠다”는 말은 문재인 정부의 초대 비서실장과 남북 정상회담 준비위원장을 맡으며 차기 대권 잠룡으로 급부상했던 인물의 정치적 고별사치고는 너무 의연했다. 임 전 비서실장은 출마할 지역구가 어디냐가 문제였지 총선 도전은 대권가도로 진입하기 위한 몸풀기쯤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임 전 실장은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제도권 정치를 떠나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려 한다. 다시 통일 운동에 매진하고 싶다"고 썼다.  
 
임 전 실장은 “2000년에 만 34세의 나이로 16대 국회의원이 되었다. 어느새 20년의 세월이 흘렀다. 환희와 좌절, 그리고 도전으로 버무려진 시간이었다”고 지난달을 돌아봤다. “그 중에서도 대선 캠페인부터 비서실장까지 문재인 대통령님과 함께 한 2년 남짓한 시간은 제 인생 최고의 기쁨이고 보람이었다”고 밝혔다.    
 
이어 “예나 지금이나 저의 가슴에는 항상 같은 꿈이 자리 잡고 있다. 한반도 평화와 남북의 공동 번영, 제겐 꿈이자 소명인 그 일을 이제는 민간 영역에서 펼쳐보려 한다"고 말했다. 
 
임 전 실장은 "이제 처음 정치를 시작할 때 마음먹은 대로 제도권 정치를 떠나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려 한다. 앞으로의 시간은 다시 통일 운동에 매진하고 싶다"며 "서울과 평양을 잇는 많은 신뢰의 다리를 놓고 싶다"고 덧붙였다. 
 
또한 “제 인생에 가장 소중한 사람들과 더 많은 시간을 나누고 싶다. 50 중반의 나이에 새로운 도전을 한다는 게 두렵기도 하다. 잘한 결정인지 걱정도 된다”며 “하지만 두려움을 설레임으로 바꾸며 가장 하고 싶은 일을 향해 뛰어 가겠다. 감사한 마음만 가득하다”고 마무리했다. 
정세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31일 부산 수영구 남천성당에서 열린 문재인 대통령 모친 故 강한옥 여사의 발인 미사에 참석해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뉴시스
◇ 청와대 나온 뒤 종로 이사... 정치1번지 출마설
임종석은 지난 1월8일 문재인 정부 초대 비서실장 자리에서 내려왔다. 이후 그의 행보는 확실히 ‘출마’였다. 임 전 실장은 정세균 전 국회의장의 지역구인 종로구로 거처를 옮기면서 “정 선배에게 솔직히 말씀드렸다. 출마 지역구는 내년 초께 당에서 결정을 내 줄 테지만 그 전까지 일단 종로에 살림집만 좀 옮겨놓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종로 이사를 두고 말이 많자 임 전 실장은 “종로 출마 결정을 내린 적 없다. 총선에 출마할 기회가 생기면 종로에서 했으면 좋겠다고 희망했을 뿐 꼭 출마하겠다고 한 적도 없다. 한국당의 대표급과 맞붙어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오는 상황에서 생활상의 불편함 때문에 종로에 잠시 거처를 마련했을 뿐이다”고 했었다.   
 
종로 현역은 국회의장을 지낸 정세균 의원이다. 정 의원은 재출마 의지가 강한 것으로 전해졌다. 
 
민주당의 한 의원은 “정 전 의장이 비켜줄 의사가 없다는 게 명백해졌고 경선을 통해선 정 전 의장을 이길 방법이 없어 임 전 실장이 외통수에 빠진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임 전 실장도 실망했을 거다. 최근에는 이낙연 총리의 출마설까지 나돌았다. 임 전 실장에겐 둘 다 버거운 상대였다. 그런 점도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보인다. 
 
한때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의 지역구인 서울 동작을이나 16ㆍ17대 의원시절 지역구였던 성동을, 중구 출마설도 돌았지만 비서실장을 지냈는데 종로 출마가 어려워졌다고 다른 지역구를 기웃거리는 것도 격에 맞지 않는 모양새라고 생각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국회와 청와대 주변선 4월 총선을 통해 국회 복귀를 노려온 임 전 실장이 불출마를 선언한 데는 지역구 문제와 여권 상황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불출마를 선언한 표창원(왼쪽부터)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이철희 의원이 지난 10월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이해찬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나눈 뒤 기자들과 대화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 용퇴해야나... 신경쓰이는 민주당 386(80년대 학번, 60년대생)
임종석은 이인영 원내대표, 우상호 전 원내대표와 함께 386 그룹의 선두주자 격이다. “통일운동에 매진하겠다”는 임 전 실장의 불출마 선언은 그만큼 전격적이었다. 같은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의장 출신인 이인영 원내대표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전혀 알지 못했다. 학생 운동할 때도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더니…”라고 말했다. 역시 전대협 출신에 고교(서울 용문고) 선배라는 우상호 의원까지 “나도 깜짝 놀랐다. 평소 그런 암시를 준 적이 없어서…”라는 반응을 보였다.
 
여권 관계자들은 임 전 실장의 결단 배경을 두고 다양한 해석을 내놓으면서도 불출마 선언이 자신과 여권 전반에 미칠 파장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임 전 실장 본인은 총선과 관련해선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민주당 내부에선 그의 불출마로 386출신 3~4선 의원들에게 부담이 갈 수밖에 없다는 판단이다. 
 
실제 당 안팎에서는 386의 퇴진도 심심찮게 거론되던 상황이었다. 여기에 임종석이 불을 붙인 셈인 거다. 이른바 ‘조국 사태’ 이후 초선들의 불출마 선언으로 물밑에서 제기된 ‘386 용퇴론’이 임 전 실장의 갑작스러운 불출마로 전면 부상한 모양새다. 
 
또한 문재인 정부 시작과 함께 청와대 경험을 했다는 상징성 때문에 각지에 출사표를 던진 40여 명의 청와대 비서관ㆍ행정관 출신들의 움직임에도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분석이다. 
 
문 대통령의 최측근인 양정철 민주연구원장이 최근 “청와대 출신 출마자가 너무 많아 당내 불만과 갈등 요소가 될 수 있다. 청와대 참모 출신부터 희생해야 한다”고 말해 청와대 출신 출마 희망자들 앞에는 경고등이 들어와 있던 차였다. 
 
한 재선 의원은 “세대교체론에 직면한 86그룹에선 뭔가 상징적 희생양이 나온 셈”이라며 “이제는 중진들이 결단을 내려야 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반면 확대 해석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수도권의 한 3선 의원은 “앞서 불출마를 선언한 김세연 한국당 의원이 선명하게 정치 쇄신을 주문한 데 비해 임 전 실장의 메시지에는 그런 내용이 없다”며 “정치적 메시지를 담지 않겠다는 게 임 전 실장의 메시지라고 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386 용퇴론이나 청와대 출신 출마자 희생론의 물꼬를 트겠다는 게 아니라 오히려 본인이 '안고 가겠다'는 의미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당장 이인영부터 파장이 확산되는 것을 차단했다. 이인영은 17일 페이스북에 임종석의 불출마와 관련해 "지금 이 시점에서 진퇴의 문제와 관련해 결부 짓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면서 "여러 고민도 있고 후배들한테 어떻게 도움이 될 것인가 구상도 있지만, 지금 제 앞에 있는 일이 워낙 중대해서 이 문제가 어느 정도 정리될 때까지는 다른 이야기는 하지 않으려 한다"고 말했다.
 
우상호 의원의 말도 비슷했다. 우 의원은 “저도 우리(86그룹)가 무슨 자리를 놓고 정치 기득권화가 되어 있다고 말하는 것에 대해서 약간 모욕감 같은 걸 느낀다”며 “‘내가 왜 굳이 욕먹으면서 국회의원의 탐욕을 가지고 움직이는 것처럼 보여야 하나. 그렇게 보이느니 내가 진짜 하고 싶었던 통일 운동으로 돌아가지’라는 식으로 마음을 정리해 온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76학번으로 학생운동 선배격인 우원식 의원은 86그룹에 대해 “그들이 보인 집단적 헌신성은 이제껏 어떤 정치세력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라며 “근거 없이 86들을 기득권 집단으로 매도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민주개혁 세력을 분열시키게 될 것”이라고 감쌌다.
 
실제 386 용퇴론과 관련해 제기된 여당 의원들의 의견은 제각각이다. 세대 교체를 논의할 시기라는 점엔 공감하지만, 이를 위해 특정 세대의 정치경력을 ‘희생’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금태섭 의원은 한 언론과의 통화에서 “젊은 분들이 많이 들어와야 한다는 점에는 다들 공감하고 있지만, 86세대가 물러나야 한다는 데에 다수가 공감하거나 논의가 진전되거나 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월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2019년 첫 국무회의에 참석하기위해 이동하고 있다. 왼쪽은 임종석 전 비서실장. 사진=뉴시스
◇ 임종석의 정체성은 통일운동... 임수경 방북 주도로 유명세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3기 의장을 맡아 '임수경 방북 사건'을 주도했던 임 전 실장은 2000년 16대 총선 때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세대교체론'을 앞세워 영입한 인사 중 한 명이다. 당시 만 34세 최연소로 국회에 들어왔다. 이후 재선(16·17대) 국회의원, 서울시 정무부시장을 지냈으며 지난 1월까지 1년9개월간 문재인 정부 초대 비서실장을 지냈다. 
 
임종석 퇴진 관련한 또 하나의 배경으로 남북관계와 통일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꼽는다. 그는 주변에서 대선 도전 의사를 물으면 ‘남북문제가 풀리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는 얘기를 자주 했다고 한다. 남북관계의 획기적 진전이 자신의 정치적 미래와 직결된다고 판단했다는 얘기다. 
 
이 점은 20대 학생운동 시절부터 통일 문제에 깊은 관심을 쏟아온 개인적 이력과도 관련이 있어 보인다. 실제 그는 전대협 의장 시절이던 1989년 임수경 전 의원의 방북을 성사시키면서 주목받았고, 정치권에 들어온 뒤에도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 등을 운영하며 교류사업에 앞장서왔다.
 
임 전 실장의 가까운 지인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가시적으로는 임 전 실장이 설립한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2004년 설립)으로 돌아가는 형식이 될 거다. 그러나 그 활동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고 남과 북이 공동으로 이익을 볼 수 있는 다양한 일을 민간 영역에서 찾아나갈 계획이다”고 밝혔다. 
 
통일을 위한 기여는 의정활동으로도 할 수 있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임 전 실장은 남북관계가 국민들에게 잘못 이해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정부와 민간 역할이 다 중요한데 정부 차원에서 일이 잘 안 되고 있고 민간 부분도 막혀 있다. 민간에서 역할을 해보려는 거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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