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의 파기 요구에 외교·국방 장관 '신중'...美·日 "GSOMIA 연장" 희망, 여론은 파기 우세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를 의결한 2일 오후 '화이트리스트 한국배제 아베정권 규탄 기자회견'이 열린 일본대사관이 입주한 서울 종로구의 빌딩 앞에서 아베규탄 시민행동 회원들이 군사비밀정보 보호에 관한 협정 폐기를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민주신문=서종열기자] "안보문제와 연계됐기 때문에 여러가지를 고려해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다."

우리나라와 일본이 체결한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이하 GSOMIA)'이 정치권의 화두로 떠올랐다. 일본이 화이트리스트에서 우리나라를 배제하는 등 경제공격에 본격 나서면서 GSOMIA 협정의 파기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어서다. 

GSOMIA는 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인 2016년 11월23일 체결된 우리나라와 일본의 군사협정이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처음으로 일본과 맺은 군사협정으로, 대북관련 정보를 일본과 공유하는 제도다. 이 협정은 체결 당시부터 논란이 많았다. 미사일 발사 등 대북정보가 필요한 일본에게 유리하고, 우리 군 입장에서는 별다른 정보를 받아올 수 없다는 지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실제 GSOMIA 파기 가능성이 정치권 일부에서 제기된 후 일본 정부는 곧바로 "GSOMIA는 유지돼야 한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미국 역시 우리 정부에 GSOMIA 협정 유지를 바란다는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일본 정부가 지난 7월 수출규제에 나서고, 이후 2일에는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 수출 우대심사국)에서 우리나라를 제외하는 등 경제공격의 수위를 높여가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GSOMIA 파기 가능성을 제기했다. 경제공격을 나선 일본에 굳이 군사정보를 공유해줄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연장에서 검토로 기류 변화 

GSOMIA 파기 요구는 사실 정치권에서 먼저 나왔다.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을 필두로 일본의 경제공격에 대한 역습으로 GSOMIA 파기를 정부에 요구했기 때문이다.

실제 설훈 민주당 최고 의원은 5일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정부는 당장 GSOMIA를 파기하길 주문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이해찬 당대표와 이인영 원내대표 역시 "GSOMIA가 과연 의미가 있는 의문이 든다"며 정부의 단호한 대처를 주문했다. 

반면 자유한국당 등 야당은 GSOMIA 문제에 상반된 반응을 보였다. 황영철 한국당 의원은 국방위에서 "GSOMIA 파기가 현상황에서 일본을 압박하는 수단이 된다고 판단하냐"며 "안보문제가 친일·반일 프레임의 도구나 수단이 되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윤상현 의원 역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GSOMIA를 파기하면되면 오히려 미국에 한국이 신뢰할만한 동맹이 아니라는 신호를 보내게 되고, 일본에게 외교적인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정부 역시 국가간의 협정인 만큼 GSOMIA 연장에 무게중심을 뒀다. 하지만 최근 이 같은 기류에 큰 변화가 온 것으로 보인다. 외교부와 국방부를 중심으로 GSOMIA 파기 가능성이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시작은 외교부였다. 강경화 외교부장관은 지난달 30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정부는 여러 상황에 대해 지켜보고 있지만, 지금으로서는 협정 유지 입장"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상황 전개에 따라 검토를 할 수도 있다"면서 "전략적인 사고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GSOMIA 파기 가능성에 대해 최초로 언급한 셈이다. 

이어 지난 5일 국회 국방위원회에 출석한 정경두 국방부장관은 "정부 내부적으로 연장을 검톡하고 있었지만, 최근 일본이 수출규제 등 신뢰가 결여된 조치를 안보문제와 연계했기 때문에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무부처인 국방부장관이 파기 가능성을 검토할 수 있다고 밝힌 셈이다. 

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원회 제1차 전체회의에서 정경두 국방부 장관이 보고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다만 정 장관은 "아직 결정된 것은 아무 것도 없다"면서 "GSOMIA는 효용성보다 안보와 관련해 동맹국간 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군과 외교가는 정 장관의 이날 발언을 주목하고 있다. 이전까지만 해도 우리 정부는 일본의 거센 경제공격에도 GSOMIA는 유지할 것으로 예측됐다. 하지만 정 장관이 이날 '신중 검토 중'이라고 밝히면서 정부 내 급격한 기류변화가 있었음을 짐작케 하고 있다. 일본의 경제공격에 대한 보복 수단으로 GSOMIA 파기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美·日은 협정 연장 원해, 정부의 선택은?

반면 일본 정부는 GSOMIA 협정의 연장을 원하고 있다. 북한의 잇따른 미사일 발사로 불안감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GSOMIA까지 파기될 경우 대북정보가 빈약해질 수 있다는 판단 때문으로 군 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실제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은 지난달 29일 정례브리핑에서 GSOMIA 연장의희망한다며 "한일 관계가 매우 어려운 상황이지만, 협력한 일은 확실히 협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미국 역시 GSOMIA 협정의 연장을 원하고 있다. 마크 에스퍼 미 신임 국무장관은 7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만나 GSOMIA는 유지돼야 한다는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에스퍼 국무장관은 "GSOMIA는 한-미-일 공동방위의 열쇠"라며 "협정이 유지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우리 정부는 어떨까. 앞서 밝힌 것처럼 현재로서는 '연장'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하지만 일본의 추가적인 경제공격에 따라 상황이 변할 수 있다. 정 장관의 발언처럼 신중한 검토 후에는 지금과 같은 결정을 내릴 수도, 아니면 다른 판단을 할 수도 있는 상황인 셈이다. 

여론은 일단 GSOMIA 파기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다. 리얼미터가 오마이뉴스 의뢰로 지난 6일 전국 19세 이상 성인 502명에게 조사(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4.4%p)를 진행한 결과, GSOMIA 폐기에 찬성하는 응답은 47.7%(매우 찬성 23.8%, 찬성하는 편 23.9%)로 나타났다. 반대의견은 39.3%(매우 반대 19.8%, 반대하는 편 19.5%)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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