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가운 시선 불구 대부분 자리보존 중


 

▲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해 "청맥회 논란"과 관련 언론사 간부들과의 간담회에서 "이거 만큼은 봐달라"고 말한 바 있다.

‘노무현 정권의 낙하산 부대’라는 별칭 때문에 달갑지 않은 시선을 받았던 ‘청맥회(淸脈會)’ 회원들은 현재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본지 조사 결과, 이들 대부분은 여론의 따가운 시선에도 불구하고 100여개 공기업과 정부 산하기관에서 자리를 잘 ‘보존’하고 있었다.

청맥회는 노무현 정권 탄생에 직·간접적으로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공기업이나 유관기관에 진출한 인사들로 구성된 친목모임.

2004년 10월 한 주간지를 통해 청맥회의 실체가 밝혀졌고, 한나라당은 17대 국회 첫 국정감사에서 이를 문제삼으며 여권을 추궁했다.

2005년 9월엔 MBC PD수첩이 ‘참여정부에도 낙하산은 내려온다’란 제목으로 참여정부의 인사시스템의 실태를 보도하면서 청맥회는 또 한번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당시 청와대는 보도 내용은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하면서도 일부 인사에 대해서는 문제점을 시인하기도 했다.

‘청맥회’가 처음 알려졌을 때, 이 모임의 존재는 충격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노무현 정권의 참여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낙하산 인사 근절과 시스템 인사를 그 어느 정권보다 강조했다.

지난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를 지지하지 않았던 이들조차도 참여정부에서만큼은 ‘낙하산’이 없을 것으로 여길 정도였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청맥회’ 회원들은 버젓이 ‘목패’까지 만들어 자신의 책상 위에 올려놓을 정도의 상당한 자긍심(?)으로 공직에 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낙하산 의혹’의 실상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한바탕 난리가 났다. 노 대통령이 운영한 생수회사 직원들이 공기업 간부로 일하고 있다는 사실에 여론은 격분했다.

‘노무현 정권에서 낙하산이 웬 말이냐’ ‘공신 클럽이 판을 치도록 그대로 놔둘 것이냐’는 등의 비난이 거세게 터져 나왔다.

청맥회 회원들은 모임의 취지에 대해 ‘혁신하는 사람들이 되기 위한 모임’이라고 해명했지만, 곧이곧대로 들릴 분위기가 아니었다. 이들은 정권창출에 나름의 일익을 한 ‘공신들’이며 그에 대한 보상으로 공기업과 정부 산하단체 간부직을 하사 받은 것으로 인식될 뿐이었다.

각 언론은 참여정부에서도 공기업의 간부 자리는 정치권의 논공행상 수단으로 전락한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났다며 쓴 소리를 퍼부었다.

PD수첩이 지난해 9월 참여정부 인사시스템의 실태를 보도한 데 따르면, 105개 공기업과 정부 산하기관의 490여명 임원 인사들 가운데 80여명에 이르는 인사들이 노 대통령 혹은 참여정부와 정치적인 인연을 맺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청와대는 이에 발끈했다. 인사비서관실에선 “이들(낙하산으로 거론된 청맥회 회원들)이 현 직책을 수행할 능력과 자격을 갖추고 법령이 정한 요건과 절차에 따라 임명됐음에도 이를 비판한다면 대통령에게 정치를 하지 말라는 것과 다를 바 없다”며 비난 여론에 맞섰다.

하지만 김완기 청와대 인사수석은 다소 숨을 죽이며 여론을 달래는 모습을 보였다. “인력 풀의 재활용일 뿐 낙하산 인사는 아니다”는 입장을 강조하면서도 “전문성 등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기관장 두 명과 감사 두 명을 교체할 예정”이라고 말해 부적절한 인사에 대한 시정의 뜻을 밝혔다.

낙하산 실태에 대해서는 노 대통령도 인정해달라는 뜻을 비추기도 했다. 노 대통령은 지난해 7월 7일 중앙일간지 편집국장들과의 간담회 자리에서 “국정에 큰 지장 없이 할 테니 (낙하산 인사) 그거 하나는 봐달라”고 말한 바 있다. 참여정부에서도 여전히 낙하산 인사가 기승을 부리고 있음을 인정하는 얘기였다.

그렇다면 지금은 과연 어떨까? 본지는 최근 93명의 이름이 포함된 청맥회 명단을 입수, 1년 전과 1년 후 회원들의 현주소를 살펴봤다.

‘낙하산 인사’라는 여론의 따가운 시선을 버티지 못하고 자리를 물러난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는 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입수한 명단은 2005년 1월 현재의 것으로, 여기엔 91명의 정회원과 2명의 명예회원(공기업에서 이미 퇴직) 등 모두 93명의 이름이 명시돼 있다.

1년 전 현직에 있었던 정회원 91명 가운데 자리 변동이 없었던 이들은 모두 84명에 달했다. 변동 사항이 있었던 7명은 퇴직하거나 내부 승진한 것으로 조사됐다.

▲박재호 국민체육진흥공단 이사장은 지난해 8월 감사에서 이사장으로 내부 승진했고, ▲차정인 교통안전공단 안전관리이사는 지난해 9월 사업운영이사로 자리 이동했다.

지난해 PD수첩 방영 이후 자리를 떠난 인물은 ▲박종권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 전이사장 ▲이태헌 한국지역난방공사 전감사 ▲정병옥 대덕연구단지관리본부 전이사장 등 3명이었다.

▲안병원 대한석유협회 전협회장과 ▲안준노 한국산업안전공단 전감사는 각각 지난해 4월과 8월에 자리를 떠났다.

따라서 1년 전 청맥회 명단에 명시된 공기업 및 정부산하단체 간부 91명 가운데 소속 단체에서 그대로 활동 중인 회원은 모두 87명에 이른다.

비판적인 언론보도 등 여론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청맥회 회원 대다수는 꿋꿋하게 자리를 지켰던 셈이다.

현재 87명의 정회원 가운데 가장 많은 직함은 ‘감사’였다. 모두 45명(52%)으로 절반 이상이었다.

이와 관련 정치권의 한 중진 인사는 “몇몇은 (감사로서의) 전문성을 갖추고 있겠지만, 실제로 감사라는 직함이 참 모호한 것이라서 특별한 전문성이 없는 사람에겐 결국 감사 자리에 앉히게 되고 그렇다”면서 “그쪽(공기업이나 정부 산하단체)에 가서 일을 배우기 시작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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