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많은 이 세상 야속한 님아. 정을 두고 몸만 가니 눈물이 난다. 아무렴 그렇지 그렇고 말고. 한 오백년 살자는데 웬 성화요. 청춘에 짓밟힌 애끓는 사랑, 눈물을 흘리며 어디로 가리. 아무렴 그렇지 그렇고 말고(--- ---).”

강원도의 민요인 한오백년의 일부 가사다. 이 노래에는 한(恨)의 표현과 한을 순화시키는 정서가 동시에 숨 쉰다. 슬프면서도 생생한 흥겨움이 있다. 옛 사람은 한을 어느 정도는 체념하고, 어느 정도는 풀어버리는 기술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슴에 맺힌 한은 아픔으로 응어리진 경우가 많다. 억울하고 분한 감정을 발산하지 못하고 삭이기만 하면 분노증후군의 일종인 화병이 생긴다. 울화가 치밀어 오르는 울화병으로도 불리는 데 명치의 답답함, 우울감, 식욕저하, 불안, 호흡곤란, 발열, 두통 증세를 보인다. 또 목 이물감, 입마름, 입냄새 등으로 대인관계를 더욱 어렵게 할 수 있다.

과거에는 화병이 고부갈등과 시집살이로 버거운 며느리에게 많았다. 그런데 요즘에는 취업 고민하는 청년, 변변한 수입이 없는 장성한 자녀를 양육하는 중노년, 퇴직 걱정에 시달리는 중년 등이 위험군에 속한다.

젊은 세대나 부모세대의 화병 주원인은 바늘구멍처럼 작은 취업문이다. 노력해도 결과를 얻기가 쉽지 않은 불만이 누적되면 분노가 생긴다. 이것이 열로 전화돼 가슴과 두뇌까지 퍼진 게 화병이다. 현대 용어로는 누적된 만성 스트레스라고 할 수 있다.

정신과 육체는 서로 영향을 준다. 정신적으로 짜증이 나면 소화가 되지 않는 등 장부의 기능이 저하된다. 이는 면역력을 약화시키고 정신적 충격을 가중시킨다. 스트레스는 호르몬, 신경계, 내분비 불균형을 야기한다. 입안의 정상세균총의 불균형을 가져온다. 만성 스트레스인 화병은 입안의 온도 변화를 불러서 박테리아 서식 환경도 바꾼다.

분노를 한의학에서는 열(火)로 설명한다. 스트레스로 인해 위나 폐에 열이 발생하면 침의 분비가 적어져 입마름이 일어난다. 구강이 건조하면 세균증식 여건이 좋아지고, 침의 항균 작용과 윤할 작용도 떨어져 구취를 야기한다.

입냄새 연관질환인 화병, 목이물감, 매핵기 등 상당수는 위와 폐의 열과 관련이 있다. 위와 폐의 열은 섭생, 분노 조절력 등의 환경과 밀접하다. 감정의 응어리가 분노(火)이고, 분노가 입마름과 불안, 식욕저하, 우울감 등을 일으킨다. 감정통제를 가능할 때 위 증상들은 쉽게 해소된다. 동의보감에서는 신위일신지주(神爲一身之主)라고 했다. 몸의 주인은 마음이라는 의미다.

한의학에서는 이를 간열(肝熱)로 보고 열을 내리고 간 기능을 회복하는 것을 입냄새 치료법으로 삼는다. 한의학에서는 상한 감정을 기쁨, 슬픔, 놀람, 화냄, 생각 등의 칠정(七情)으로 파악한다. 스트레스나 충격을 받으면 칠정 동요 속에 간의 기능이 약화되는 간기울결(肝氣鬱結)이 발생한다. 이로 인해 매핵기, 위산역류 등 구취를 일으키는 질환으로 악화될 수 있다.

화병 치료는 약물, 침, 뜸 치료 등이 있다. 또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명상요법이 있다. 탕약은 입맛저하, 분노상승, 불안, 안구충혈 등의 증상에 따라 소요산, 귀비탕, 분심기음, 시호가용골모려탕, 온담탕, 계지가용골모려탕 등이 처방된다. 이 처방들은 입냄새 제거와도 관련이 있다. 화병 증상 중 구취의 정도에 따라 약재를 가감한다. 침 치료는 입안이 화끈한 구강 작열감, 우울증 등에 효과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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