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해외잠적, "지난해 에콰도르서 사망" 진술...은마아파트로 유명한 한보그룹, 외환위기 단초 되기도 

도피 생활 중 해외에서 붙잡힌 한보그룹 정태수 회장의 넷째 아들 정한근 씨가 지난 6월22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송환되고 있다. 정 씨는 한보그룹 자회사인 동아시아가스 자금 322억원을 횡령하고 국외로 자금을 빼돌린 혐의를 받는다. 사진=뉴시스

[민주신문=서종열기자]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의 4남 정한근씨가 해외도피 21년만에 결국 국내에 송환됐다. 

검찰에 따르면 정씨는 1997년1월 부도를 낸 한보그룹 파산사태 당시 회사자금을 해외로 유출시킨 장본인 중 하나다. 당시 검찰 수사에 따르면 한보그룹 자회사인 동아시아가스가 보유한 '루시아석유' 주식 매각자금 322억원을 횡령해 스위스 비밀계좌로 빼돌린 혐의를 받았다. 이 과정에서 1998년 6월 검찰조사를 받은 이후 그는 곧바로 해외로 도피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건을 이해하려면 먼저 한보사태를 곱씹어야 한다. 1997년 초 불거진 한보사태는 그해 말 우리나라를 위기로 몰아넣던 외환위기의 신호탄과 같았다. 당시 재계 14위권이었던 한보그룹이 부도를 내기 시작한 후, 기아(당시 재계 8위), 진로(당시 재계 19위), 해태(당시 재계 24위), 삼미(당시 재계 26위) 등 굴지의 대기업들이 줄줄이 공중분해됐기 때문이다. 

한보그룹은 세무공무원 출신인 정태수 전 회장이 1974년 한보상사를 창업하면서 시작됐다. 그는 1976년 한보주택을 설립한 후 현재의 대치동 은마아파트를 건설하면서 주목 받았다. 이어 1980년에는 한보철강을 창업하며 한보그룹을 재계 30위권의 대기업으로 격상시켰다. 

문제는 그룹의 성장방식이었다. 정 전 회장은 한보그룹을 키우는 과정에서 문어발 확정, 정경유착, 황제경영 등으로 각종 논란을 일으켰다. 1991년 터진 수서비리가 대표적이다. 노태우 정권 당시 청와대 관계자 및 유력 국회의원들에게 뇌물을 제공한 사건으로 정 전 회장은 구속되기도 해다. 하지만 한보그룹은 이후 건설업을 벗어나 자원개발업을 추가하며 사세를 더욱 키워갔다. 

그러나 한보철강이 1997년 초 유동성 부족사태로 부도를 내면서 결국 한보사태가 터졌다. 당시 한보그룹이 금융권에서 받은 부실대출 규모는 무려 5조원에 달했다. 검찰은 수사를 통해 정 전 회장 등 한보그룹이 정관계와 금융권에 뇌물을 제공하고, 부실대출을 얻어낸 사실을 밝혀냈다. 이로 인해 김우석 당시 내무장관과 권노갑·홍인길·정재철 의원, 전직 은행장 3명 등이 구속됐고, 김영삼 당시 대통령의 차남인 현철씨도 검찰에 구속됐다. 

이 사건으로 15년형을 받은 정 전 회장은 2002년 10월 협심증에 따른 병보석으로 풀러났다. 하지만 강릉영동대학 교비 72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다시 2006년 2월 징역 3년형을 다시 받았다. 고령의 나이를 고려해 당시 재판부는 법정구속은 하지 않았는데, 정 전 회장은 이듬해인 5월 치료차 일본으로 출국한 후 잠적했다.

검찰이 수사를 벌인 결과 정 전 회장은 일본이 아닌 말레이시아 코타키나발루로 출국한 사실이 드러났으며, 이후 카자흐스탄으로 이동한 사실을 밝혔다. 하지만 현재 행방은 물론 생사조차 불분명한 상태다. 

이와 관련 검찰에 의해 에콰도르에서 체포된 정한근씨는 "아버지는 지난해 에콰도르에서 사망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검찰은 정 전 회장이 체납한 국세만 2225억원에 달해 신병확보를 멈추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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