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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씨돌·용현으로 살아온 숨겨진 의인 '김용현'씨민주화운동 합류, 삼풍백화점 사고에 구조활동 나서기도...방송에 소개된 괴짜 자연인의 삶, 알고보니 고문후유증
  • 서종열 기자
  • 승인 2019.06.20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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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씨돌, 용현이란 3개의 이름으로 평생을 헌신한 숨겨진 의인 김용현씨. 사진=SBS스페셜 캡쳐

[민주신문=서종열기자] "인간으로써 당연한 일."

요한, 씨돌, 용현이란 3개의 이름으로 살아온 한 사람이 사람들의 가슴을 뜨겁게 만들었다.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는 그를 민주화운동 유공자로 지정해달라는 청원이 올라오면 사람들의 서명이 이어지고 있으며,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그를 후원하는 계좌까지 개설됐다. 

그는 바로 세례명 '요한', 자연인 '김씨돌'을 이름으로 사용했던 김용현씨다. SBS는 지난 9일과 16일에 걸쳐 '어디에나 있었고 어디에도 없었던 요한, 씨돌, 용현' 편에서 그의 뜨거웠던 삶을 조명했다. 

그는 80년대 민주화운동의 현장에서 함께 투쟁했으며, 대표적인 군의문사 사망사고였던 故정연관 상병의 죽음의 진실을 알리기도 했다. 또한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당시 구조활동에 나섰으며, 자연보호를 위해 20여년의 세월을 산불지기로 지내기도 했다.

그래서 그는 '한국판 포레스토검프'로 불리고 있다. 민주화운동의 불길이 가장 뜨거웠던 80년대부터 사건사고가 이어졌던 90년대를 지나, 지금까지 이어지는 한국사의 굴곡진 모습을 그에게서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화운동 현장마다 그가 

김용현씨는 과거 SBS의 예능프로그램이었던 '세상에이런일이'에 원조자연인으로 등장했었다. 2012년 당시 그는 '용현'이란 이름 대신 '씨돌'이란 이름으로 방송에 소개됐다. 강원도 봉화치 마을에 기거했던 그는 밭에 씨앗을 뿌리고 수확만 하는 '저절로농법'을 보여주면서 주변의 동식물과 대화를 나누는 괴짜스러움을 보여줬다. 

이어 그는 1987년 '요한'이란 이름으로 다시 등장했다. 바로 1987년 故정연관 상병의 군의문사 의혹사건이었다. 정 상병의 어머니인 임분이 여사는 용현씨를 '요한'으로 기억하고 계셨다. 그는 당시 임 여사와 정 상병의 가족들에게 "정연관은 군 부재자 투표 때문에 죽었다"고 전했다. 최초의 부재자 투표에서 여당의 후보를 선택하란 상관의 지시를 어기고, 야당 대표에게 투표를 했다가 구타를 당한 결과 결국 숨졌다는 게 김용현씨의 얘기였다. 

김씨는 당시 헌병들과 보안사 직원들의 눈을 피해 정 상병의 죽음과 관련된 관계자들의 진술을 녹음해 유족들에게 전달했다. 그 결과 1989년 양대선거 부정조사 특별위원회가 꾸려졌지만만 3당합병이 진행되면서 결론이 나지 못했다. 결국 2004년이 돼서야 군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에서 정 상병이 야권 후보에 투표했다가 선임들에게 당한 폭행으로 숨졌다고 사실이 인정됐다. 무려 17년의 시간이 걸린 셈이다. 

민주화운동일 들불처럼 일었던 80년대에도 그는 언제나 투쟁의 자리에 있었다.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숨진 유가족들이 모인 공동체 '한울삶'에 함께 이었기 때문이다. 실제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는 방송에서 "아무것도 몰랐을 때 투쟁 현장에서 제일 앞에 섰던 사람"이라며 "얼굴도 기억나고 모두 기억한다"고 말했다. 

약자들의 있는 곳에 언제나

민주화운동 현장에서 모습을 볼 수 있던 김용현씨는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현장에도 나타났다. 이번에는 투쟁가가 아닌 구조활동가였다. 

당시 민간 구조단장이었던 고진광씨는 "구조현장에는 강원도에서 온 씨돌이란 분이 계셨다"며 그를 기억했다. 고 단장은 "당시 씨돌씨는 사람을 구조했지만, 그분도 결국 사망했다"면서 "이후 김씨돌씨는 언론사에 사고희생자의 죽음을 추모하고 책임자를 처벌해야 한다는 내용의 편지를 쓴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19일 현재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 올라온 김용현씨 관련 청원글. 사진=청와대 청원게시판 캡쳐

민주화운동의 투쟁현장과 군의문사 의혹사건, 그리고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현장 등 굴곡진 역사의 현장에는 언제나 김용현씨가 있었다. 하지만 이후 김용현씨는 모습을 감췄다. 바로 강원도 봉화치 마을로 들어간 것이다. 

그곳에서 산불지킴이를 역임하며 자연인으로 살았던 그는 맨발에 솔잎을 깔고 잠드는 괴짜로 통했다. 하지만 그가 괴짜로 지낼 수밖에 없었던 것은 고문후유증으로 인해 온몸이 아팠기 때문이었기 때문이다. 

현재 그는 한 병원에서 환자로 입원 중이다. 뇌출혈로 인해 오른팔과 다리를 사용할 수 없는 상태다. 의사소통도 어려울 정도로 몸이 불편하다. 담당의사는 "용현씨의 뇌는 회복 불가능하다"며 "우측 반신 마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재활치료가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SBS스페셜 제작진은 방송말미 그에게 "왜 평생 남을 위한 삶을 살았냐"고 물었다. 이에 용현씨는 웃음과 함께 메모지에 "인간으로서 당연한 일"이라고 답했다. 

서종열 기자  snikers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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