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부터 생산·유통·교육·폐기까지-푸드 플랜 가이드북(7)

<먹거리 팩트체크를 시작하며>

21세기 들어서면서 지구촌에 먹거리 위기가 찾아왔다. 전 세계 어느 나라를 불구하고 먹거리 부족이든 과잉이든 그 나름대로 인간에게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

2007~2008년 기상이변에 따른 세계 곡창지대의 흉작으로 30여 개국에 식량부족 사태로 폭동이 일어나는 등 위험이 찾아왔다. 아이티 등 몇 나라는 이 때문에 정권이 교체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식량안보를 정책적으로 챙기지 못한 나라나 챙길 여유가 없는 나라들도 어려움을 겪지만, 식량 위기와 무관한 나라들도 곡물가의 인상 등으로 물가가 오르는 등 여러 어려움을 겪었다. 몇몇 국가의 폭동발생과 정치적 위기는 전 세계로 확산되고, 이로 인한 사회적 불안이 고조됐다.

선진국들도 위협을 느끼기는 마찬가지다. 식량자급률이 100%를 넘는 국가라 하더라도 지역별 편차로 인해 먹거리 소요비용이 늘어나는 것은 물론, 물가 상승과 경제 발전이 정체하는 시기를 맞게 된다. 더구나 다른 국가들의 경제위기가 없어야 수출 경기도 좋아지는데, 세계 경제가 제자리걸음을 하게 되면 식량위기에 대응해야 한다는 논리에서는 선진국도 예외는 아닌 듯하다.

먹거리 위기 가운데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자급률의 위기’다. 2007~2008년처럼 세계 곡창지대의 흉작은 분명히 몇 년 주기로 올 것이다. 그렇다면 그런 시기를 대비해 먹거리의 보관은 물론, 생산기반과 보급, 해외 조달까지 고려하는 다양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식량자급률이 30%대에 불과하다. 더구나 쌀을 제외하면 그 비중은 더 줄어들고, 동물사료 곡물까지 포함한다면 자급률은 아예 10%에도 못 미친다. 이는 OECD에서 가장 낮은 수치다. 더욱이 우리나라는 엽채류와 과수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농산물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제적으로 먹거리 위기가 찾아온다면 상황이 정말 어려워진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또 다른 먹거리 위기는 ‘안전의 위기’다. 세계시장이 단일화되면서 농산물도 국제경쟁의 시대를 맞았다. 이로 인해 먹거리의 생산체계가 공장 식으로 변모하게 되면서 먹거리에 대한 안전 문제는 그 상황이 매우 심각해졌다. 무한경쟁 탓에 값은 싸졌지만, 이에 뒤따르는 건강과 영양, 그리고 안전은 방치되고 있기 때문이다.

무분별하게 살포되는 농약은 물론, 남용되는 동물백신 등으로 먹거리의 안전은 점점 멀어져가고 있다. 더구나 미국 등 일부 국가들이 생산하는 GMO 농산물과 이를 재배하기 위해 살포되는 제초제 글리포세이트 등으로 인한 폐해가 점차 드러나고 있다.

우리나라는 전 세계 GMO 농산물 수입 1위국이다. 표면적으로는 일본이 세계 1위이지만, 일본은 수입 GMO 농산물의 대부분을 사료용으로 사용하고 있기에 실질적인 GMO 농산물 사용국 1위는 우리 한국인 것이다.

안전 문제와 연관해 발생하는 먹거리의 문제는 바로 ‘건강의 위기’다. 우리나라의 경우 먹거리표시제 문제가 심각하다. 그중에 GMO표시제를 살펴보면, 3% 이하는 표시하지 않아도 된다. 더구나 DNA가 분쇄돼 만들어진 전분, 전분당, 지방 등의 경우에는 100%를 사용해도 표시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 주변의 빵, 과자 등 가공식품과 콩기름, 옥수수기름, 카놀라유 등 식용유는 물론 이를 첨가물로 한 가공식품 등이 거의 모두 GMO 식품으로 도배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또 다른 측면에서 먹거리는 전통식품으로 대표되는 ‘슬로푸드의 위기’ 문제로 나타난다. 빠르고 간편한 패스트푸드의 발달과 소비증가는 고른 영양을 갖추고 건강에 좋은 슬로푸드를 사라지게 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로 인해 외식산업은 성장하지만, 가정에서의 조리식은 큰 폭으로 줄어들고 있다.

이런 상황은 먹거리 접근성이 낮은 ‘취약계층의 위기’로 나타나기도 한다. 기초생활자들은 영양이 불균형적이고 안전성이 떨어져도 값싼 먹거리를 찾아 끼니를 때워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대규모의 공장식 생산체계에도 불구하고 ‘생산의 위기’도 문제가 되고 있다. 병해충의 증가로 인한 농약 사용 증가와 첨가물의 확대 등으로 대표되는 공장 식 생산체계에 대해 불신하는 소비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유럽에서는 친환경 생산체계의 도입과 동물복지 등을 중시하는 먹거리 생산 환경으로 돌아가는 상황이다. 이에 따른 ‘환경의 위기’도 소비자들이 제기하며, 먹거리 생산체계의 회귀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국가건, 지방자치단체건 푸드플랜을 세워야 하는 시대이다. 농정 부서만으론 안 되고 복지, 교육, 환경, 예산 부서가 모두 함께 머리를 맞대고 삶의 질과 행복지수를 높이는 먹거리 계획을 제대로 세워야 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21세기 농정의 전환이며, 먹거리 복지를 실현하는 축이다.

2014년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열린 ‘쌀 전면개방 저지! WTO 통보중단! 식량주권과 먹거리 안전을 위한 2차 범국민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쌀 전면개방 저지’ 구호를 외치는 모습이 볏짚 너머로 보이고 있다. 사진=뉴시스

대량유통과 기형적 구조

우리나라는 197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도시에서도 근교 농촌지역 등 가까운 지역에서 생산되는 것을 먹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1970년대의 경제성장 이후 농산물도 광역의 대량유통 체계로 변모했다.

농산물 대량유통 체계는 기술의 발달 및 여러 조건의 어울림을 기반으로 성립됐다. 전국 교통망이 발달하고 통신수단이 정비됐으며, 냉장·예냉(豫冷) 기술 발달로 농산물의 품질유지 기간이 길어졌다. 또 농산물의 대량유통이 가능하도록 농산물 거래의 표준화, 브랜드화 등 규격이 정비됐다. 계절에 따라 농산물이 생산되는 산지를 바꾸며 연중 같은 품목을 공급하는 체계가 정비됐다.

농산물의 대량유통 체계는 다양한 식재료를 연중 안정적으로 공급하고, 일정한 품질을 값싸게 공급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식생활 향상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농산물의 생산과 소비 장소 사이의 거리를 확대하며, 여러 가지가 과거와 달라졌다.

우선 해당 농산물이 어디서, 어떻게 생산된 것인지 알 수 없게 됐다. 해당 농산물의 연중 공급은 식생활을 풍부하게 한 반면, 전국적으로 획일적인 식문화를 형성하며 농산물의 제철 감각이나 지역 특유의 식문화를 상실하게 했다. 이에 따라 농업 생산현장은 연중 소비자가 원하는 어느 곳이든 농산물을 공급하기 위해 생산성 향상을 추구하게 됐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유럽을 필두로 광우병, 구제역 등 농산물 대량유통의 폐해가 극단적인 형태로 표출되며, 세계적으로 식품안전성에 대한 요구가 강하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도 1990년대부터 생협, 한살림 등과 같이 유기농산물 유통을 추진하는 소비자운동과 전문유통조직이 발생했다.

정부의 제도가 반영된 것은 1990년대 이후이다. 순차적으로 원산지 표시제도가 정비됐으며, 광우병 발생을 계기로 안전하고 안심할 수 있는 농산물에 대한 소비자의 요구로 이력추적제도의 정비가 진행되고 있다.

지난 2월 경남 남해군 이동면 들녘에서 한 농민이 트렉터를 이용해 논갈이를 하며 한해 농사를 준비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윤 추구의 농업시스템

자본주의 발달과정에서 농업은 인간의 생명에 필수품이라는 윤리적 가치를 벗어나 이윤추구를 위한 상품 생산으로 다뤄진다. 또한 먹을거리의 안정적인 공급이 국가 농업정책의 중심이 되고, 최대 이윤을 추구하기 위한 농업관련 전후방 산업이 활동영역을 넓히고 있다.

1970년대 이후 우리나라 자본주의 발달과정에서 농업은 산업화를 위한 자본·노동·토지를 제공하며, 경제성장을 위한 지렛대 역할을 했다. 그 후 현재까지 농업근대화 정책은 합리화와 효율성을 강조하며, 생산성 향상을 위한 정책이 시행됐다.

먼저 농업경영과 토지이용에 공업과 같은 효율화를 지향해 기계화·화학화·시설화 등의 농업기술과 단작화·전문화·대규모화 등의 토지이용이 장려됐고, 각종 농업정책도 생산성 향상과 규모 확대에 초점이 맞춰졌다. 생산성 증대를 위해 화학합성물질(농약, 화학비료)과 기계 생산력에 의존한 농업기술이 보급됐지만 저곡가정책과 시설화 등 투입농자재 비용증가로 오히려 농가부채가 급속히 증가했고, 농업 구조개선 사업으로 다수 농가가 농촌을 떠났다.

식생활도 변화해 축산·과수·채소류는 확대됐지만, 국제수급에서 미국의 잉여곡물처리에 협력하며 쌀을 제외한 곡물자급률은 10%미만의 기형적인 농업구조를 갖게 됐다.

우리나라 농업근대화 정책의 결과는 농업생산이 자연생산력보다 농약이나 화학비료, 기계 생산력에 의존한 결과 생태계에 적합한 지역성을 상실했다. 즉, 자연의 다양성과 순환성을 상실한 채 자연과 인간 생명의 안전까지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농약과 비료가 지나치게 사용되어 먹을거리로 부적합하거나, 심지어 토양오염을 유발해 농지에 의지해 사는 동식물의 생명까지 빼앗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러한 현상은 농업 본연의 모습이 안전한 먹을거리 생산이라는 것을 일깨워주는 계기가 됐다.

지난해 9월 대구 중구 동인동 대구시청 앞 주차장에서 열린 ‘추석맞이 도농 상생 우수 농특산물 직거래 장터’에서 시민들이 대구·경북 우수 농·수·축산물 등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뉴시스

농민은 농업생산에서 자기결정권, 즉 주체성을 모두 상실하게 됐다. 농업 생산기술은 기계, 화학비료, 농약 등 근대화 기술로 대체되고, 근대화 기술을 사용하기 위해 트랙터가 들어갈 수 있는 포장·농로·관계시설은 정부 보조금과 융자에 의존하게 됐다.

그 결과 농민은 더 이상 자립적인 생산자가 아니라 농산물 판매수익에 초점을 맞춘 단순 수익자로 전락하는 한편, 기계·농약·비료 등 근대화 기술을 포괄하는 농자재의 소비자가 된 것이다.

오늘날 농민은 대량유통을 지향하거나 소비자 중시의 유통을 지향하며, 농산물의 가치를 최대화하는 일에 주력한다. 대부분의 농민은 농산물의 대량유통에 적합한 규격화, 표준화를 비롯하여 부가가치 증진을 위한 브랜드화, 식품가공 등에도 참여한다.

반면 대량생산·대량유통의 폐해를 깨닫고 이를 극복하려는 일부 농민은 생태적·자연 순환적인 친환경농업을 도입하고 소비자를 찾아 생산물을 직거래하며 농업과 환경에 대한 교육도 한다.

농산물의 자유무역 확대로 값싼 수입농산물이 항시 시장에 넘친다. 이에 따라 국내외 주산지간 가격경쟁이 더욱 격화되면서, 농민은 선택의 기로에 놓여있다. 대량유통을 근간으로 하는 기존 농산물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생산성 향상에 몰두하거나, 아니면 소비자가 요구하는 안전한 농산물을 제공하며 새로운 시장을 찾아나서는 것 등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다음 호에 계속>

편저자 김영하

김영하는 철들면서부터 농자(農者)로 살아왔다. 서라벌고를 졸업하고 고려대 농대에 입학한 것이 첫 걸음이었다. 대학 졸업 후 충북 옥천, 충남 공주, 경기 양평에서 7년 가까이 복합영농에 종사하며 실전 농업을 체험했다. 1991년에는 연수생으로 일본에 건너가 일본농업실천 대학을 수료했고, 전국농업기술자협회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1993년 한국농어민신문 기자로 출발해 20년 이상 근무하는 동안 편집국장, 논설위원, 전략기획 본부장을 역임했고, 재임 중에 농림부장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한국농어민신문을 퇴사한 후에는 농축유통신문 편집국장 겸 상무이사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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