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 ▲인물과사상사 ▲2만8000원

[민주신문=장윤숙 기자] 강준만 교수는 ‘언론사’가 가장 재미있고 유익한 과목이 될 수 있으며 돼야 한다고 믿는 언론학자다. 『한국 언론사』는 이런 생각에 기반해 집필한 책이다. 강준만 교수는 ‘사회를 짙은 어둠 속에 놔두지 않고 언론 관련 사건의 맥락을 제시해주는 방식’으로 이 책을 집필했다. 이 책에서는 사회를 짙은 어둠 속에 놔두지 않으면서도 언론 중심으로 압축했다.

강준만 교수가 『한국 언론사』를 집필하면서 가장 신경을 쓴 것은 ‘객관성’이다. 책을 집필하는 내내 어느 정도 ‘주관’을 반영할 것인가 하는 고민을 멈추지 않았던 저자는 ‘객관성’을 위해 책의 구성까지 손봤다.

저자는 각 장을 정권별로 나누지 않고 큰 흐름 중심으로 시대적 특성에 맞게 분류하고 그 특성을 표현하는 제목을 붙이는 시도를 하기도 했지만, 이러한 분류에 왜곡의 소지가 있을 수도 있다고 판단하고 정권별 분류를 유지했다. ‘객관’과 ‘공정’을 중시하는 기록에 충실하기로 한 것이다. 이는 영원히 도달할 수 없는 이상이지만, 저자는 이 책을 통해 가능한 한 그 이상에 근접하고자 했다.

개화기에서부터 2019년 문재인 정권에 이르기까지 한국 언론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카타르시스 제공이었다. 대중문화도 마찬가지였다. 표현·접근·유통 방식의 차이만 있었을 뿐 체제를 선전하거나 체제에 저항하는 건 다를 게 없었으며, 수용자의 호응을 얻어야만 생존할 수 있다는 것도 같았다. 언론과 대중문화는 각자 다른 방식으로 같은 기능을 수행해온 것이다.

한국 언론과 대중문화를 포괄하는 한국 대중매체의 역사를 꿰뚫는 하나의 키워드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카타르시스다. 대중의 한을 달래주고 스트레스를 해소시켜주는 카타르시스 기능에 관한 한 한국 대중매체는 박수를 받을 만하다.

하지만 그늘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도 저자는 ‘카타르시스의 상례화’가 가장 큰 문제라고 주장한다. 주제와 상황에 따라 카타르시스를 제공하는 건 필요하거니와 바람직한 일이긴 하지만, 모든 일에 대해 늘 그렇게 해야 한다는 강박에 빠지거나 그게 관행으로 정착되면 정상적인 공론장 형성이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즉 대화와 타협의 문화를 위축시킨다는 뜻이다. 그 어느 일방의 속을 후련하게 해주는 대화와 타협은 원초적으로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카타르시스의 상례화’를 넘어서긴 위해선 한국이 ‘대중매체 사회’라는 걸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이제는 ‘1인 미디어’가 번성한 ‘미디어 사회’라는 것이다. 다른 나라들은 ‘미디어 사회’가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한국만큼 미디어가 사회 진로와 대중의 일상적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나라도 드물다는 뜻이다.

미디어는 늘 한국인 삶의 한복판을 차지해왔다. ‘미디어 사회’는 그 자체로선 좋거나 나쁘다고 말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다. 다만 저자는 한국이 ‘미디어 사회’라는 걸 깨닫고 그 명암(明暗)을 이해하면서 삶의 실제 문제와 연결시키려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또 언론은 대중의 불신과 혐오를 넘어서기 위해 신뢰를 회복하는 데에 모든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에 따르면 한국의 언론 신뢰도는 영국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가 실시한 37개 조사 대상국 중 2년 연속 꼴찌를 기록했을 정도로 매우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저자는 신뢰는 언론의 존재 근거인바, 언론이 이런 사태를 더는 방관해선 안 된다고 말한다.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언론 본연의 경쟁력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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