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웅열·서정진 은퇴 선언, 김정주 회사 매각 나서...천문학적 상속세·사정기관의 압박이 배경(?)

코오롱그룹 이웅열(왼쪽) 전 회장이 지난해 말 전격 은퇴를 밝힌 후, 기업인들의 은퇴선언이 잇따르고 있다. 서정진(가운데) 셀트리온그룹 회장이 지난 4일 "2년 후 은퇴" 입장을 밝혔다. 김정주(오른쪽) 넥슨 창업주 역시 최근 회사매각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뉴시스

[민주신문=서종열 기자] "멋진 말들로 연설을 했었지, 기다림을 약속하면서~♬(시나위 6집-은퇴선언 中)"

기해년을 맞아 재계에 은퇴선언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해 말 이웅열 전 코오롱그룹 회장이 60대 초반의 나이에도 전격 은퇴한데 이어, 지난 4일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도 내년 말 경영일선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여기에 벤처신화의 주인공 중 한명이 김정주 넥슨 창업주도 회사 매각을 준비 중으로 알려지면서 재계의 수은주가 얼어붙고 있다. 

재계에서는 오너들의 잇따른 은퇴선언의 배경으로 천문학적인 상속세와 과도한 관심, 그리고 검찰과 정부 등 사정기관의 압박 등을 지목하고 있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오너 자리를 놓지 않았던 과거 대기업 총수들과 달리 홀가분하게 기업을 넘겨주는 모습에서 시대가 변했다는 평가도 내놓고 있다. 

경영에서 물러난 뒤 이사회 체제로

은퇴를 선언한 기업총수들은 "소유와 경영을 분리한다"며 은퇴배경을 밝혔다. 대표적인 예가 지난해 말 갑작스런 퇴진으로 재계를 놀라게 했던 이웅렬 회장이다. 

재계에서는 이 전 회장의 아들인 이규호 코오롱 상무가 올해 전무로 승진하자 "4세 경영시대를 준비하는 것"이란 관측을 내놨다. 하지만 코오롱그룹은 지난 2일 기존 이웅열-유석진 대표 체제에서 유석진 단독 대표로 경영진이 바뀌었다. 사실상 그룹경영의 총괄책임자가 유 대표 혼자인 셈이다. 실제 이 전 회장은 "사업부문을 경영하게 한 것은 기회를 준 것"이라며 "성과를 내면 좋겠지만, 능력이 안되는데 굳이 경영권을 넘길 생각은 없다"고 밝혔다. 사실상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겠다고 밝힌 셈이다. 

지난 4일 전격 은퇴를 예고한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도 상황이 유사하다. 서 회장은 "은퇴 이후 경영은 전문경영인에게 맡기고, 아들에게는 이사회 의장을 맡겨 회사의 미래를 고민케 하겠다"고 밝혔다. 소유와 경영을 분리해, 글로벌 기업들처럼 이사회 중심의 경영체제로 가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이다. 

은퇴 의사를 직접 밝히지 않았지만, 회사 매각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진 김정주 넥슨 대표도 비슷한 반응이다. 김 대표는 "새롭고 도전적인 일에 뛰어들 생각"이라며 "넥슨을 세계에서 더욱 경쟁력있는 회사로 만드는 데 뒷받침할 수 있는 방안을 숙고 중"이라고 밝혔다. 해석에 따라 달리 들릴 수 있지만, 경영권에 집작하지 않겠다는 의사는 분명히 밝혔다는 평가다. 

상속세·외부압박이 원인?

자신의 열정을 다 바쳤던 기업들에서 오너들이 한발 물러서는 이유는 뭘까. 재계에서는 갈수록 악화되는 기업환경을 비롯해 다양한 배경이 작용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상속세 부담'도 그 중 하나다. 자신이 일궈낸 기업을 자녀에게 물려주는 과정에서 납부해야 할 상속세가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하면서 은퇴를 고민하게 만드는 게 재계의 분석이다. 실제 락앤락을 창업해 중견기업으로 성장시켰던 김준일 회장은 "락앤락은 내 삶의 전부"라고 밝히기도 했지만, 막대한 상속세 부담 때문에 결국 회사를 사모펀드에 매각하기도 했다. 

대기업도 상황은 비슷하다. 지난해 급작스런 별세한 구본무 회장의 뒤를 이은 구광모 LG그룹 회장 등 자녀들은 최근 9200억원에 달하는 상속세를 내기로 결정한 바 있다. 교보생명 신창재 회장 역시 지난 2003년 1840억원의 상속세를 낸 바 있다. 정용진-정유경 신세계그룹 오너 일가도 아버지인 정재은 명예회장으로부터 지분을 증여받으면서 2007년 3500억원 상당의 주식을 증여세로 납부한 바 있다. 재계에서는 이처럼 천문학적 규모의 상속세로 인해 수많은 기업가들이 은퇴를 고민하고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세금이 직접적인 원인이라면 기업오너를 둘러싼 외부환경은 간접적인 배경으로 지목된다. 갈수록 강화되는 규제에 사정기관들의 수사 등 사업 외적인 압박이 경영에서 물러나게 만든 배경 중 하나라는 지적이다. 실제 이웅열 전 회장은 은퇴를 발표한 후 검찰로부터 코오롱 주식상속 과정에 대한 수사를 받고 있으며, 서정진 회장 역시 계열사인 셀트리온헬스케어의 분식회계 의혹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김정주 넥슨 대표는 지난해 5월 고교 동창인 진경준 전 검사장에게 넥슨 비상장 주식을 증여한 혐의로 재판을 받기도 했다.  

재계 한 관계자는 "경영세습에 대한 부정적인 사회여론과 갈수록 어려워지는 경영환경, 그리고 천문학적인 상속세 등이 오너들의 빠른 은퇴를 재촉하고 있을 수 있다"면서 "앞으로는 이런 기업인들이 더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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