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차 남북 대회에서 남북 지도자는 예정에도 없는 백두산 천지를 방문 했다 사진 = 청와대 사진 기자단

[민주신문=김병건 기자] 무술년(戊戌年) 한 해도 거의 지났다. 다사다난(多事多難)한 한 해였다. 격변의 대한민국을 달군 정치권 7대 뉴스를 선정해봤다.

1. 평화의 시대 개막

지난해까지만해도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그리고 미국의 핵 폭격기 전진 배치 등 전쟁이 언제든 시작해도 이상하지 않을만큼 일촉즉발의 위기였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김정은 북한 위원장에게 로켓맨이라고 불렀고, 북한 또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 모욕적인 말들을 던졌다. 지난해 연말 웬만한 정보지에서는 언제 전쟁이 시작될 것이라는 등 전쟁 시나리오가 비약한 근거로 나돌았다. 

반전은 언제나 효과가 배가 된다. 우선 김정은 위원장의 신년 메시지에서 시작됐다.

“새해는 우리 인민이 공화국 창건 일흔 돌을 대경사로 기념하게 되고 남조선에서는 겨울철 올림픽 경기대회가 열리는 것으로 하여 북과 남에 다 같이 의의 있는 해입니다. 우리는 민족적 대사들을 성대히 치르고 민족의 존엄과 기상을 내외에 떨치기 위해서도 동결상태에 있는 북남관계를 개선하여 뜻깊은 올해를 민족사에 특기할 사변적인 해로 빛내여야 합니다.” 

이러한 북한 신년사를 돌파구로 해서 3월 5일, 정의용 국가안보실장과 서훈 국정원장은 대북특사로 평양을 방문한 직후 미국으로 건너가 김정은 위원장이 회담할 의사가 있음을 전달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즉석에서 수용의사를 밝혔다.

북미 정상회담의 첫 출발점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국무장관 내정자 마이크 폼페이오 CIA 국장을 평양으로 보냈다. 20일 후, 김정은 위원장은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대륙간 탄도미사일 시험발사 중단과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를 선언하게 된다. 27일에는 판문전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은 판문점 남측 평화의 집에서 만남을 가졌다. 

세계는 놀랐고 일부 해외 언론은 제2의 베를린 장벽 붕괴까지도 예언했다. 사람들은 점심식사로 한동안 ‘평양냉면’ 집으로 향했고 김정은 위원장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호감은 증가했다.

1차 회담이 ‘의전적 행사’에 가깝다면 2차 회담은 ‘실무적 회담’ 성격이 강했다. ‘형식에 구애됨 없는’ 2차 회담 직후 북·미 회담을 철회했던 미국은 번복하면서 6월 12일 북한과 미국 양 정상은 단독회담과 확대회담, 오찬, 산책에 나섰고, 트럼프 대통령의 기자회견을 마지막으로 세기의 담판이 종료됐다. 

사상 첫 북미 정상회담이 거둔 가장 큰 성과는, ‘선 핵포기, 후 보상’을 주장하던 미국과 ‘단계적・동시적 비핵화’를 주장하던 북한이 문재인 대통령의 ‘포괄적 합의・단계적 이행’ 방안을 긴 여정의 출발점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확실하고 명확한 합의는 오직 미군 유해 송환 말고는 없었다. 하지만 50년 이상 적대 국가였던 미국과 북한이 일단 협상 테이블에 앉았다는 점이었다. 

제3차 남·북 정상 회담은 9월 19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은 평양 백화원 영빈관 회의장에서 70여 분 간 단독회담을 가진 후 ‘9월 평양 공동선언’에 결과물을 낳았다. 하지만 그 내용이 과거 양국 정상 간의 약속을 확인하는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다는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뉴스에서 큰 비중은 아니었지만 송영무 국방장관과 노광철 인민무력상은 ‘군사 분야 합의서’는 군사적 긴장 관계가 존재 상황에서 ‘전쟁의 시대’ 종언으로 가는 합의라는 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군사 합의로 인해서 북한은 서해 5도를 조준하는 해안포 일부 철수했고, 판문점에서의 총기 소유를 금지했고 우발적 충돌이 예상되는 최정방 GP 일부를 양국의 검증하에 불능화 했다.

2. 보수진영의 몰락, 희망은 있나?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후 이어진 대선에서 보수는 자멸했다. 시간은 1년이 흘렀다. 2018년도 지방선거에서 사실상 모든 지역에서 완패했고 텃밭이라고 할 수 있는 경북에서 조차 민주당 당선자가 나왔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하자면 ‘본진이 털린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심각한 것은 자유한국당 내부에서 조차 이 정도라는 민심을 읽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홍준표 당시 대표는 "최근 당 지지율이 폭발적으로 올라가고 있다"라고 자신했다. '엉터리'와 '괴벨스(나치당 선전장관)'라는 단어까지 써가며 다른 여론조사를 비난했다. 자신들이 알고 있고 믿는 여론 조사가 맞고 기존의 대형 여론조사는 조작이라고 단언했지만 사실 대형 여론조사의 결과가 선거 결과와 차이는 없었다. 즉 자유 한국당 내부에 민심을 정확하게 읽고 분석하고 대응하는 기능마저도 상실했다고 보는 편이 정확한 판단이다. 

지방 선거 후 홍준표 대표는 사퇴하고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 체제가 만들어졌지만 당 지지율 상승이 당의 노력이라고 보기보다는 집권 여당의 개혁 피로감에서 상대적으로 득을 본 것이라는 평이 맞다.

대 정부 투쟁을 강화하겠다고 나섰던 김성태 원내대표는 임기 1년간 무려 15번 국회를 파행을 했고 '지난 1년간 국회가 한 일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딱 부러지게 '이것이다'라고 말을 못 할 만큼 일을 하지는 않았다. 최근 당협위원장 교체라는 인적 청산이라고 하지만 그 면면을 본다면 기존에 불출마 선언자들과 재판 중 의원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정말 뼈를 깎는 각오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탈락된 의원들 조차 어차피 내년 2월이면 새로운 당대표가 선임되고 나아가 공천심사위원회는 다음번 당대표가 선정할 것이니 그냥 선당 후사하겠다는 입장만 내비치고 있다. 지금 김병준 체제와 반목할 필요성 조차 느끼지 못한다는 이야기다.

안희정 전 지사의 1심 무죄 판결에 대해서 여성 단체에서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 =민주신문 DB

3. 미투 (#Me_too)

해외에서 미투 운동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했다. 우리 사회가 가지는 강자 일방주의 나아가 여성에 대한 습관적이고 관습적인 차별과 성폭행의 관행이 이제는 끝나야 한다는 생각들만 하고 있었다.

사건은 유력 대선후보이며 충남도지사 노무현 대통령에게 좌희정이라는 이야기를 듣던 ‘안희정’ 전 충남지사로 출발했다. 그는 자신의 비서를 수차례 성폭력을 행사했다는 증언이 나왔고 곧바로 검찰에 의해서 기소되었고 안희정 전 지사는 모든 정치 활동을 중지했다. 

1심에서는 무죄가 선고되어 많은 여성단체에서는 판결 무효를 주장했고 반대로 남성단체들은 여성의 변심으로 애인에서 성폭행범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우리 사회에서 미투에서 여혐과 남혐 간의 젠더의 문제로 발전하고 있다.

정봉주 전 의원은 서울 시장에 출마하려고 했으나 무동의 키스 미수의 건으로 결국 서울 시장에 출마조차 하지 못하고 낙마했다. 추미애 당신 민주당 대표는 "무관용 원칙으로 대응하겠다"고 했지만 지난 지방선거 과정에서 몇몇 후보의 미투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천을 받았고 당선까지 된 사람도 있다.

미투 문제는 올 하반기 양진호 갑질 사태에서 소위 ‘리벤지 포르노’의 건으로 다시금 회자되고 있다. 정치권에서 미투를 반대하는 세력은 없다. 내년에도 미투 관련 증언들은 계속되어질 것으로 보인다.

4. MB, 전직 대통령으로 4번째 구속

올해 초부터 ‘다스는 누구 것입니까’ 운동이 진보 진영에서부터 시작되었고 바로 정치적으로 비화되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소위 국가정보원의 특수 활동비를 받았던 내용이 나왔고 그것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MB도 받았다는 증언이 나왔다. 나아가 다스 미국 소송 비용을 삼성이 지불했다는 증언과 증거가 나왔다. 결국 MB는 전직 대통령으로 4번째 구속되는 운명이 되었다.

드루킹 김모씨는 재판을 받으려 출석하고 있다

5. 민주당 대선 당시 댓글 팀(일명 드루킹) 운영

그동안 보수진영에서는 정보기관을 동원해서 광범위하게 댓글팀을 운영했다는 증언과 증거가 나왔으나, 지난 평창 올림픽 뉴스 일부에 댓글 작업 흔적이 나타나 당시 추미애 당대표가 고소했다. 문제는 문재인 대통령 대선 당시 댓글팀을 운영했고 그 운영팀이 자신들의 요구 사항을 들어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댓글 작업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런데 이 댓글팀 을지 김경수 지사가 연루되었다는 증언이 나왔다. 특검팀은 김경수 지사를 기소하였고 지금은 재판 중이다. 댓글팀들은 김경수 의원뿐만 아니라 전방위적이었던 것으로 드러났고 고 노회찬 의원에게도 정치자금을 지원했다는 증언을 했다. 노회찬 의원은 자살로서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려고 했다. 노회찬 의원의 자살은 2018년 정치권에서 가장 슬픔 사건중 하나로 기록되었다.

사법농단 세력 처벌을 요구 하는 시민들

6. 권력과 거래를 한 사법부

법원 행정처에서 과거 정부와 재판을 가지고 거래를 했다는 의혹이 사실로 드러났다. 사법부 자신들의 조직을 위해서 대통령의 관심 재판에 대해서 유리하도록 재판을 했고 소위 말을 듣지 않는 판사들의 성향을 정기적으로 내사하고 내부적으로 보고 하도록 했다.

사법부는 이 과정에서 재판을 기피하거나 합리적인 판결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고, 심지어 불리한 증거는 처음부터 인정하지 않는 방식으로 철저하게 재판을 거래했다. 하지만 재판 거래를 한 판사들에 대한 징계는 소리만 요란할 뿐 몇 명 사퇴하는 것으로 끝나가고 있다.

7. 성공하지 못한 쿠데타 계획

군 기무사 문건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쿠데타 계획을 세웠던 정황이 문서로 나왔다.

군 기무사들은 이전에도 세월호 유가족 등 민간인 사찰을 했고 탄핵 직후 사회가 혼란되면 군이 나서야 한다는 미명 하에 서울에 특수부대원들과 탱크 등 기갑부대를 주요 지역에 배치할 것이라고 적시하고 있다는 문서를 생산한 사령관은 미국으로 도피 중이고 군 기무사는 자체 개혁 안을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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