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0억 단기차입...자산 2조 이상인 경우 상법상 감사위원회 구성 '효과'

토종 행동주의 펀드 KCGI와 경영권 분쟁에 휩싸인 한진칼이 단기차입금 조달이란 묘수로 역공에 나섰다. 사진=뉴시스

[민주신문=서종열 기자] 묘수는 묘수를 받아친다?

토종 행동주의 펀드 KCGI와 경영권 분쟁에 돌입한 한진그룹 지주사인 한진칼이 단기차입금이란 새로운 '묘수'로 역공에 나섰다. 단기차입금을 늘려 자산규모 2조원을 넘어서게 되면 상법상 감사가 아닌 감사위원회를 구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KCGI는 이에 대해 "이사회와 감사위에 자기 사람을 채우려는 한진그룹의 꼼수"라며 "불필요한 단기차입금 조달을 중단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반면 한진칼은 "통상적인 경영활동의 일환"이라는 입장이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달 15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강성부 대표가 이끄는 토종 행동주의 펀드 KCGI는 한진칼 지분 9%를 보유하고 있다고 공시한 후, "주주로서 견제의 의무를 다하겠다"며 밝혔다. 재계에서는 KCGI가 한진칼의 감사 선임권을 요구한 것으로 분석했다. 

재계에서는 KCGI가 막강한 감독권한을 갖고 있는 감사 직을 노림으로써 한진그룹 총수일가를 놀래켰다고 보고 있다. 상근감사는 언제든 이사진에게 영업에 관한 보고를 요구할 수 있으며 회사의 업무와 재산상태를 조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상법 412조) 여기에 자회사를 조사할 수 있는 권한(상법 412조의 12)과 이사회 소집 권한(상법 412조의 5)도 갖고 있다. 

깜짝 놀란 한진그룹은 곧바로 대책마련에 돌입했다. 그 결과 지난 5일 금융사들로부터 1600억원의 단기차입금을 조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진칼의 자산은 지난 9월말 기준 1조9134억원인데, 1600억원의 차입금이 들어오게 되면 자산이 2조734억원으로 늘게 된다. 상법상 자산 2조원을 넘길 경우 상근감사가 아닌 감사위원회를 설치해야 하는 의무가 발생하게 되는 셈이다. 

현행법에 따르면 상근감사를 선임할 경우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의결권은 모두 합쳐 최대 3%만 반영된다. 상법 542조의 12 제3항에서 규정하고 있는 3%룰이다. 이에 따라 한진칼의 최대주주인 조양호 회장과 특수관계인의 지분은 현재 28.95%에 달하지만, 상근감사 선임시에는 의결권이 3%로 줄어든다. 

물론 다른 일반 주주들의 의결권도 최대 3%로 묶인다. 9% 지분을 확보하고 있는 KCGI의 의결권도 최대 3%까지만 인정되는 상황이다. 이렇게 되면 대주주의 지분이 줄어드는 효과를 볼 수 있기 때문에 KCGI 입장에서는 다소 유리한 부분이 있다. 3%룰이 상근감사 선임에 적용되는 이유 역시 대주주의 전횡을 막기 위한 장치 중 하나다. 

그러나 자산 2조원을 넘겨 감사위원회를 구성하게 되면 상황이 달라진다. 감사위원회는 대부분 사외이사 중에 선임되는데, 사외이사는 주주총회에서 선임되며 3%룰의 적용도 받지 않는다. 사실상 한진칼의 지분 28.95%를 보유한 조양호 회장 측의 의중에 맞는 이가 사외이사로 선임된 후, 다시 감사위원회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이다. 

재계에서는 이와 관련 "KCGI에 허를 찔린 한진칼이 감사위 설치로 역공에 나선 것"이란 관측을 내놓고 있다. 한진칼이 단기차입금의 조달 목적으로 '만기 도래 차입금 상환과 운영자금 확보 목적'이라고 밝혔지만, 3분기 말 기준 유동성 차입금 규모가 700억원 수준에 불과해 나머지 900억원의 용도를 주목하고 있어서다. 

KCGI 측은 "단기 차입을 통해 자산을 늘려 감사 대신 감사위를 설치하는 것이 사실이라면 이는 꼼수"라며 "회사의 장기적인 가치를 높이는 방안을 주주들과 진지하게 상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진칼은 "올해 12월까지 700억원, 내년 2월 400억원, 3월 750억원의 만기 도래 차입이 있어 자금이 필요하다"며 "감사위 설치 여부는 연말 결산 확정 이후 법적 요건에 따라 결정된 사항"이라고 해명했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민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