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회장단 계열사 이동, 2선 퇴진...순혈주의 깨고 50대 젊은 경영진 세대교체

현대차그룹이 지난 12일 대규모 인사를 단행하며 세대교체에 나섰다. 사진=민주신문 DB

[민주신문=서종열 기자] 세대교체에 따른 친정체제 구축!

현대차그룹이 지난 12일 대대적인 조직개편에 나섰다. 세대교체라는 표현이 딱 들어맞을 정도로 개편 폭이 넓다. 정몽구 회장과 함께 현대차그룹을 이끌어왔던 기존 경영진들이 대거 2선으로 물러나고, 젊은 경영진들이 전면에서 나서면서 정의선 수석부회장의 친정제체를 구축했다는 평가다. 

재계에서는 이번 현대차그룹의 대규모 인사와 관련 예상된 시나리오였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정 부회장이 수석부회장에 승진하면서 자연스럽게 세대교체 가능성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9월 현대차 중국사업의 1세대인 설영흥 고문을 비상근으로 발령 내는 등 해외 사업 부문에 대한 쇄신 인사가 단행됐고, 뒤를 이어 북미, 유럽, 인도, 러시아 등 권역본부장을 신규 선임하고 지역별로 자율경영 시스템을 강화했다.

그런 만큼 이번 인사에서도 대규모 조직개편이 진행될 것으로 재계는 내다봤었다. 그 결과 현대차그룹은 12일 사장단 인사를 통해 부회장단이 대거 경영일선에서 2선으로 물러나고 정 수석부회장 중심 체제를 갖추게 됐다. 재계 관계자는 "현대차그룹이 전문성이 검증된 경영진을 주요 직위에 배치하면서 세대교체와 함께 조직혁신에도 나선 점이 눈에 띈다"고 평가했다. 

MK와 함께한 부회장단 대거 퇴진

현대차그룹의 12일 인사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점은 정몽구 회장과 함께 현대차그룹을 성장시켜왔던 부회장단의 대거 퇴진이었다. 현대차그룹은 정 수석부회장을 포함해 총 7인의 부회장단이 운영돼 왔다. 하지만 이번 인사로 정태영(현대카드), 윤여철(현대차 노무·국내생산) 부회장만 자리를 유지하고 다른 부회장들은 계열사로 이동하거나 고문으로 물러났다. 

재계에서는 김용환·우유철·정진행 부회장이 각각 현대제철·현대로템·현대건설 수장을 맡게 되면서 현대차그룹은 정의선 수석부회장을 중심으로 한 계열사별 책임경영 체제로 재편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중에서도 8년동안 부회장직을 유지해왔던 김용환 부회장이 현대제철로 자리를 옮긴 것이 주목된다. 재계에서는 현대차그룹의 성장에 기여해온 김 부회장에게 정몽구 회장의 애정이 서린 현대제철을 맡김으로써 명예로운 퇴진을 배려한 것이란 해석을 내놓고 있다. 

반면 부회장단에 새롭게 합류한 인사도 있다. 바로 정진행 현대건설 사장이다. 현대차에서 전략기획을 담당하다가 건설로 옮기게 된 정진행 부회장은 1978년 현대건설로 입사하며 현대차그룹에 합류했다. 이후 2010년 매물로 나온 현대건설을 인수하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정 부회장은 수년째 지연되고 있는 삼성동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 신축 프로젝트를 맡게 될 것으로 보인다. 

계열사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현대모비스, 현대케피코, 현대오트론, 현대다이모스·파워텍 합병법인 등 주요 부품 계열사 수장들이 교체된 것. 부품 계열사 맏형 격인 현대모비스는 임영득 사장이 고문으로 물러나고, 박정국 현대케피코 사장이 신임 사장으로 임명됐다. 박 사장은 서울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한 엔지니어 출신이다. 현대자동차 연구개발기획조정실장, 중앙연구소장 등을 역임했다.

여수동 현대·기아차 기획조정2실장(부사장)이 사장으로 승진해 현대다이모스·현대파워텍 합병법인 사장으로 임명된 것도 이번 인사에서 눈에 띄는 대목이다. 현대다이모스와 현대파워텍은 지난 10월 19일 자동차 변속기 전 라인업을 생산하는 파워트레인 전문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해 합병을 결의했다. 합병법인 매출은 지난해 기준으로 약 7조원이지만, 2022년까지 매출을 12조원으로 늘릴 계획이다. 그룹 부품 계열사 중 두 번째로 큰 현대위아와 맞먹는 규모다.

신임 현대오트론 대표이사에는 문대흥 사장이, 신임 현대케피코 대표이사는 현대·기아차 품질본부장 방창섭 부사장이 각각 내정됐다. 산학협력과 R&D 육성 계열사인 현대엔지비 대표이사에는 이기상 현대·기아차 환경기술센터장(전무)이 내정됐다.

반면 김정훈 현대글로비스 사장과 김경배 현대위아 사장은 자리를 지켰다. 두 사람은 올해 초 임명돼 재임 기간이 짧아 유임된 것으로 전해졌다. 

순혈주의 깨고 외부출신 영입

현대차그룹은 지난 9월 정 수석부회장의 승진 이후 '순혈주의 타파' 의지를 지속적으로 피력해 왔다. 외부와 협업을 늘리고 인재를 꾸준히 영입하면서 현대차그룹 외연을 넓히겠다는 의도였다. 경영진의 이런 의지는 이번 인사를 보면 확연하게 알 수 있다. 이번 인사를 통해 외국인·타사 출신이 고위직에 대거 기용됐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이는 알버트 비어만 사장이다. 그는 신임 연구개발본부장에 올랐다. 현대차그룹의 연구개발(R&D) 수장에 외국인 임원이 임명된 것은 사상 처음이다. 비어만 사장은 고문으로 물러나게 된 양웅철·권문식 부회장을 대신해 정의선 수석부회장이 이끄는 현대차그룹의 R&D를 이끌 전망이다.

1957년생인 비어만 사장은 독일 BMW 출신으로 고성능차 분야의 최고 전문가로 꼽힌다. 2015년 현대차그룹에 합류한 후 현대차 시험·고성능차담당 사장을 지냈다. 정 수석부회장이 공들여 영입한 인사로 알려졌다. 현대차그룹 합류 후 고성능 브랜드 'N' 출범과 확장을 주도하고 있다. 

비어만 사장 합류 후 현대차그룹에는 BMW 출신 외국인 임원들이 잇따라 영입됐다. 토마스 쉬미에라 고성능사업부장, 파예즈 라만 제네시스 아키텍처 개발실장, 마틴 붸어레 현대차 미래기술전략실장 등이 BMW 출신이다. 이들 역시 이번 인사에서 승진했다. 

현대차그룹은 고성능사업부장을 맡고 있던 쉬미에라 부사장을 상품전략본부장에 임명했으며, 현대디자인센터장을 맡던 루크 동커볼케 부사장을 현대·기아차 디자인최고책임자(CDO) 자리에 앉혔다. 쉬미에라 부사장은 BMW의 고성능 브랜드 'M' 출신으로 지난 3월 현대차에 합류했다. 이후 고성능차·모터스포츠 사업의 상품·영업·마케팅을 담당하는 고성능사업부장을 맡아왔다. 동커볼케 부사장은 폭스바겐그룹 출신으로 세계적인 스타급 자동차 디자이너다. 2016년 정 수석부회장이 직접 영입에 나서 현대디자인센터장 자리를 맡기며 일찌감치 CDO 자리를 예약했다. 

현대·기아차의 R&D와 디자인이 모두 외국인 임원 손에 맡겨진 것은 현대차그룹 역사상 처음 있는 새로운 도전이다. 정 수석부회장이 지난 3분기 어닝쇼크와 전반적인 자동차산업 침체를 돌파할 카드로 능력 있는 외국인 임원 카드를 꺼내든 것으로 자동차업계는 해석하고 있다. 

외국인 사장뿐만이 아니라 삼성전자 출신 사장도 나왔다. 2016년 삼성전자에서 현대차로 옮긴 전략기술본부장 지영조 부사장은 2년 만에 현대차 사장으로 승진했다. 지 사장은 현대차그룹이 기존 자동차 제조업체에서 모빌리티 서비스업으로 방향을 전환하는 데 키를 쥐고 있는 인물이다. 스마트시티, 모빌리티, 카헤일링, 로봇, 인공지능(AI) 등 각종 신규 사업과 전략 투자를 맡고 있다.

현대차그룹의 12일 인사에서 또 하나 주목할만한 부분은 세대교체가 진행되면서 자연스레 사장단이 젊어졌다는 점이다. 신임 현대로템 대표이사에 내정된 이건용 부사장을 비롯해 현대다이모스-현대파워텍 합병 법인의 여수동 사장, 신임 현대오트론 문대흥 사장, 현대케피코의 방창섭 신임 대표이사 내정자 등은 모두 50대다.

재계 한 관계자는 "이번 현대차 인사에서 주목할 점은 계열사별 책임경영체제 구축과 함께 세대교체에 따른 정의선 친정체제를 만들었다는 점"이라며 "향후 현대차그룹이 정의선 부회장 체제를 공고히 하기 위한 지배구조 개편에 나설 가능성이 한층 더 높아졌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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