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초기 작부터 미공개 작품 등 130여점 공개

한묵 작가의 부인 이충석 여사가 11일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민주신문=양희중 기자] 기하추상화의 거장 한묵은 한국전쟁을 전후해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하고 1961년 프랑스로 건너간 후 유화와 수채화, 판화를 비롯한 다양한 장르를 섭렵했다. 이 후 파리 화단의 여러 경향을 수용해 앵포르멜 경향의 추상회화와 콜라주 기법을 이용한 기하학적 추상회화를 선보여 당시 국내화단뿐만 아니라 파리 화단에도 파란을 일으켰다.

11일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 한국 기하추상의 거장 한묵(1914~2016)의 첫 유고전 ‘한묵: 또 하나의 시(詩) 질서를 위하여’가 개막했다. 

특히 이날은 화려한 색감의 선과 도형이 무한하게 반복하면서 무한한 공간을 만들어내는 1991년 한묵이 그린 대작 ‘상봉’ 앞에는 경건한 표정의 나이 지긋한 여성이 서 있었다. 1977년부터 그의 곁을 지킨 한묵의 아내 이충석씨다.

기자들과 만난 이 씨는 “선생님은 늘 ‘작가는 작품으로 이야기해야 한다’고 말했다”라면서 “한국인으로서 예술을 하며 외국에서 버티려니 늘 ‘에트랑제’(이방인)였다”라고 회고했다.

한묵은 아버지에게 동양화와 서예를 배우고 만주와 일본에서 서양화를 공부했다. 그런 그가 1969년 아폴로 11호의 달착륙을 보고는 너무 충격을 받아 한동안 작업을 못했다고 한다. 이후 1970년대 작가는 시간과 공간을 결합한 4차원 공간을 실험하면서 공간에 속도를 담아내는 새로운 공간개념을 탐구했다. 

홍익대 미대 교수직을 그만두고 1961년 프랑스 파리로 떠난 한묵은 50여년간 프랑스에서 지내면서 끊임없는 변화를 추구하며 한평생 작업에만 매진했다. 그가 한국 추상미술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임에도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것은 탓은 “팔기 위해 그린다는 것은 염두에 두지 않았던” 성향 탓이다. 

한묵의 회화는 화려한 원색과 절제된 기하학적 구성이 어우러진 기하추상이 특장이다. 구상 작업을 한 1950년대부터 역동적 기하추상이 완성되는 1990년대까지 전 시기, 전 장르를 아우르는 이번 전시는 한묵 예술을 보다 충실히 읽어내기 위한 시도다.

화려한 색감의 선과 도형이 무한하게 반복하면서 무한한 공간을 만들어내는 1991년 한묵이 그린 대작 ‘상봉’

특히 아내 이충석씨는 한국과 프랑스에 보관 중인 작품들과 오랫동안 작가를 아낀 개인 소장가들이 내어준 작품들까지 합해 130여점이 전시에 나왔다.

전시는 총 5부로 서울시대와 파리시대로 나눠 10년 주기로 변모해온 작업세계를 조명한다. 

1부 서울시대(1950년대) ‘구상에서 추상으로’는 홍익대 미대 교수가 된 이후 사실주의 화풍이 지배하는 국전에 반대하며 유영국, 박고석, 이규상, 황염수 등과 ‘모던아트협회’를 결성해 현대미술운동을 이끌던 시기의 작품들을 선보인다. 

2~5부는 1961년 프랑스로 건너간 작가의 기하추상작업을 완성해가는 모습을 시대별 작품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1970년대 한묵은 동판화 작업에 매진하며 수평과 수직의 개념을 벗어나 화면에 구심과 원심력을 끌어오기 위해 컴퍼스와 자를 사용하기 시작한다. 이후 동심원, 나선 등 시리즈를 남겼다. 

특히 작가의 큐비즘에 대한 높은 이해를 보여주는 ‘가족’(1957)과 작가가 1991년 이산가족 상봉과 통일을 기원하며 두 마리의 새를 형상화 한 ‘상봉’, 생명의 근원을 탐구한 ‘에덴의 능금’ 등을 만나볼 수 있다.

미술관은 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와 함께 내년 3월 9일 한묵 작품세계를 규명하는 학술 심포지엄도 개최한다. 전시는 내년 3월 24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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