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보학 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그동안 전모가 드러난 양승태 대법원의 민낯은 가히 충격적이다. 사법부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통치권력과 재판거래를 일삼은 다수의 사례들이 드러났다.

국민의 인권보장과 정의수호의 최후 보루라는 대법원이 과거 국가폭력과 잘못된 법원 판결로 고통 받아온 시민들의 절규를 무시하고 판결을 지연하거나 피해자들의 국가배상청구권한을 제한함으로써 이들을 또 다시 절망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는 만행을 저질러 온 것으로 드러났다.

그리고 재판거래를 위해 대법관 및 법원행정처의 고위 법관들이 겉으로는 ‘사법부 독립’을 외치면서도 내부적으로는 일선 재판부의 재판업무에 간섭하고 판결의 독립을 침해해 왔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통치권력이 관심을 가지는 중요 사건들에서 내부 결론을 내려놓고 지침을 일선 재판부에 하달해 온 정황들이 드러난 것이다.

헌법이 사법부의 독립을 보장하고 법관들에게 특별한 신분보장을 하고 있는 이유는 법원과 판사들이 권력의 외풍에 영향 받지 않고 법과 양심에 따라 소신껏 판결을 내리도록 하려는데 있다. 이때 사법부 독립은 당연히 외부적 독립뿐만 아니라 내부적 독립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다

 개개 판사는 사법부의 위계질서에 순응하는 일개 조직원이 아니라 자기가 맡은 사건에 대해서는 독립된 기관으로서 법과 양심에 따라 소신 판결을 내려야 한다. 설혹 상급심의 판결이나 상급기관의 지침이 사실상의 구속력을 갖는다 할지라도 개개 판사는 그 결론이 법리와 자신의 양심에 반한다고 판단할 경우에는 거리낌 없이 반대되는 판결을 내려야 한다.

최근 대법원이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병역법 무죄판결을 내리기 전에 이미 수많은 하급심 판사들이 무죄판결을 쏟아 내었던 것은 그들 스스로 법과 양심에 따라 판단한 결과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사법부의 독립, 국민의 인권, 사회정의는 이런 판사들의 독립된 판결에 의해 지켜지는 것이다.

그런데 사법부의 독립, 재판의 독립은 반드시 지켜져야 할 헌법적 가치이지만 그 자체로 지고지순한 절대적 가치는 아니다. 사법부의 독립은 국민을 나라의 주인으로 인정하는 국민주권주의와 전체 사회의 이익에 봉사하는 공공복리원칙에 충실할 때만이 존중될 수 있는 것이다.

법원조직의 기관이기주의를 위해 그리고 판사들의 사익을 위해 사법부의 독립을 방패로 내 세우는 것은 용납될 수 없다. 사법부의 독립이 주권자인 국민으로부터의 독립을 의미할 수 없고 사법부의 이해관계가 공공의 복리보다 우선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국민의 이익을 저버리고 조직의 이익을 위해 판결을 왜곡하고 통치권력과 거래한 양승태 대법원은 헌법이 부여한 사법부 독립의 가치를 남용했을 뿐만 아니라 재판의 내부적 독립이라는 핵심적 가치를 스스로 허물고 말았다는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이미 퇴임한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장) 출신의 (대)법관들은 검찰의 수사결과에 따라 사법여부가 결정지어질 것이지만, 남은 문제는 아직 현직에 남아 있는 사법농단 관여 판사들에 대한 신병처리의 문제이다. 수 일전 김명수 대법원장은 사법농단에 관여한 것으로 드러난 고위직을 포함 13명의 법관들을 연내 징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법원의 셀프 징계로 이들의 책임을 면해주기에는 사안이 너무 중대하고 국민들의 분노가 매우 크다. 극에 달해 있는 사법부에 대한 국민불신이 그 정도의 조치로 해소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김명수 대법원장의 지나치게 안이한 판단이 아닐 수 없다.

헌법 제65조는 법관이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에는 국회가 탄핵의 소추를 의결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스스로 헌법적 가치를 부정한 중대한 직무상 범죄를 저지른 판사들에 대해서는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가 당연히 탄핵소추에 나서야 한다.

과거 국회에서는 전직 대통령 2명에 대해 탄핵소추가 결의된바 있고, 그 중 한명은 헌법재판소에 의해 탄핵이 결정되어 직에서 쫓겨난 사례도 있다. 판사들이 국민이 선출한 국정통수권자 보다 높은 위치에 있을 수 없고 더욱이 국민들의 감시와 통제를 벗어난 존재가 될 수는 없다.

지난 11월 19일 전국법관대표회가 사법농단에 연루된 현직 판사들에 대해 탄핵소추절차가 진행되어야 한다는 내용의 선언문을 발표한 이후 정치권뿐만 아니라 법원 내부에서도 찬반의견이 갈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참고로 판사들의 탄핵을 법률로 규정하고 있는 일본의 사례를 살펴보면, 1948년부터 2007년까지 판사탄핵소추 청구건수가 최고재판소에 의한 것이 8건, 변호사에 의한 것이 2666건 그리고 일반 국민들에 의한 것이 89만4243건이나 되었다(2018.10.10. 국회입법조사처 자료). 일본에서는 판사들의 직무집행과 언행이 같은 법률가들인 변호사들뿐만 아니라 일반국민들에 의해서도 철저하게 감시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본과 비교해 보면 그동안 우리나라 판사들은 사법부 독립이라는 미명하에 국민들의 감시에서 벗어나 독립공화국을 구축해 놓고 국민 위에 군림하면서 스스로의 이익을 추구하며 살아왔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대한민국의 주인이 국민이 아닌 판사일 수 없다. 국민의 복리에 봉사하지 않는 사법부가 존재할 이유가 없다. 국민의 뜻을 대변하는 국회는 즉시 사법농단 관여 판사들에 대한 탄핵절차에 착수해야 한다. 판사들에 대한 탄핵은 사법절차의 진행과 상관없이 추진될 수 있다.

사법부 구성원 스스로가 현 상황을 엄중하게 인식하고 폐쇄적 사고와 오만에서 벗어나 자기 뼈를 깎아내는 아픔을 감당하지 않는다면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결코 돌아오지 않는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나아가 이번 기회에 사법권력을 국민들의 통제 아래 두기 위한 사법개혁을 시행해야 한다. 일본과 같이 재판관탄핵법을 마련하여 국민들의 감시를 강화하는 것, 법원행정에 외부인의 참여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것, 배심원이 참여해서 결정하는 재판제도를 대폭 확대하는 것 등이 주요한 내용이다. 이제 사법부도 국민 아래, 국민 속에 존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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