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훈 국민정치경제포럼 대표

기부는 대가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닌 자발적이고 능동적인 대가성 없는 행위이다. 오늘날의 정부가 할 수 없는 영역을 개인이나 단체가 참여하는 사회적 투자라고 볼 수 있다.

성숙한 사회로 진입할수록 공동체 차원과 부의 사회적 환원 차원에서 기부가 중요하다. 경제학적으로는 개인의 이타성과 자기만족의 차원에서 기부동기가 설명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예로부터 상부상조의 나눔 정신이 있어 남의 어려움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좋은 것은 나누며 어려움은 함께 했다. 그런데 세대가 바뀔수록 이러한 문화가 사라지고 있다.

최근 모금한 금액들이 목적하는 대상으로 가지 못하고 사조직의 임원들에게 전달되어 사적으로 유용한 일들이 거듭 알려지면서 모금을 통한 기부행위가 대폭 감소했다.

어려운 곳에 도움을 주고자 기부했지만 그 어려운 곳에 전달된 것은 아주 미미한 금액일 뿐 조직의 복지나 이사장의 개인주머니를 불리는 결과물이 발행하니 부정적인 이미지로 사람들의 발길을 떠나게 만들었다.

미국의 경우 비영리기관의 투명성을 보장하기 위하여 비영리 단체가 국세청에 제출하는 양식들을 온라인에 게시하여 누구든 비영리단체의 운영 상황을 알 수 있게 한다. 또한 워런 버빗, 빌게이츠, 테드 터너 등 사회적으로 부를 이룬 개인이나 단체 등은 기부서약(www.givingpledge.org)을 통해 대중들의 신뢰를 찾아내고 자기 자신이나 가족을 위한 것만이 아닌 공동체를 위한 사회 변화를 만들어 가고 있다.

기부는 사회문화적 배경 위에서 형성된다. 특히 비영리부문의 발달 정도는 단순히 기부금의 세제 혜택이 아닌 사회적 필요가 기반이 된다. 미국의 경우 민간이 공동의 목표를 이루어내기 위해 비영리 단체를 조직하고 이의 운영을 위한 기부금 모집을 하는 행위의 역사가 오래 되었다.

이에 따라 자연스레 기부문화가 사회 안에 스며들었다. 반면 우리는 상부상조의 전통과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비영리부분의 발달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조직이 되면 이권의 독점이 이루어지고 이것이 비리로 연결되어 안 좋은 엔딩을 보이고 만다.

기부 행위는 개인에게는 자긍심과 보람을 가지게 하고 사회적으로는 공적 기관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공공의 편익을 제공한다. 금전적 기부 뿐아니라 재능기부, 자원봉사 등 다양한 방법의 기부방법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문화는 아직 자연스러운 기부문화를 만나지 못했다. 유산, 부의 세습 등으로 공공의 부문을 생각하는 것보다 사적인 축적이 우선되고 있다. 남보다 나, 내 가문을 우선시 하니 주변이나 사회의 공동체를 위한 문화가 사라지는 것이다. 

평생을 과일을 팔아 모은 400억 원의 돈을 아낌없이 인근 대학교에 기부한 90대 노부부의 기부 소식은 이러한 우리 사회를 환기시키게 한다. 자녀들에게 물려주기 보다는 더 의미 있는 곳에 쓰여지길 바란다는 기부자의 말은 메말라 가는 사회가 아직은 희망이 있음을 보여주었다.

다만 목적하는 대상을 위해 쓰이길 바랄 뿐이다. 보여주기 생색내기 기부가 아닌 진실한 기부는 꼭 돈이 많아야 하는 것이 아니다. 특정일에 특정 행사가 아닌 언제든 개인과 기업의 자유로운 의사로 진행될 수 있다.

또한 나이가 지긋한 사람들이 만년에 하는 것이 아닌 남녀노소 누구나 할 수 있다. 금전과 재능 등 필요한 곳에 필요한 도움이 연결된다면 아름다운 기부가 된다. 기부가 만연하는 사회가 성숙된 사회라는 것은 이렇게 다양한 요인들이 복합적 작용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기부 행위는 행동을 한 후의 만족을 경험한 정도에 따라 다시 기부를 하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긍정적 영향력을 발산할 수 있다. 그러므로 기부의 투명성이 보장되고 기부 행위의 다양한 정부의 지원 확립이 중요하다. 정부와 사회의 기부체계가 안정적으로 구축되면 기부를 해도 기부를 하지 않아도 욕부터 먹는 사회를 뒤로 하고 보다 성숙한 사회로의 발걸음을 옮길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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