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적 축소·은폐 민심 대폭발

▲ ‘수원 살인사건’의 살인범 오원춘씨(42). 10일 오전 오씨가 수원 남부경찰서를 나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경찰의 무능력하고 뻔뻔한 행적이 만천하에 드러나고 있다. 지난 4월 1일 발생한 경기 수원 살인사건은 당초 조선족이 20대 여성을 성폭행 후 잔인하게 살해했다고 알려졌었다. 하지만 경찰이 피해자의 결정적인 위치 제보를 누락시키는 등 사건을 축소·은폐시킨 정황이 드러나면서 국민들로부터 비난 세례를 받고 있다. 이번 사건 흐름으로 본 경찰의 행태와 현재 상황에 대해 짚어본다.

사건 현장 근처 숙면 모자라 위치추적 요청에 “119 가라” 황당 답변
조현오·서천호 줄사퇴에 수사 나선 검찰 ‘역공’까지 수세 몰린 경찰

“112 경찰입니다. 말씀하세요.” “여기 못골놀이터 전의 집인데요. 저 지금 성폭행 당하고 있거든요.” “저기요 지금 성폭행 당하고 계신다고요? 자세한 위치 모르겠어요?” “지동초등학교에서 못골놀이터 가기 전 집이요.” “누가 그러는거예요?” “모르는 아저씨예요. 아저씨 잘못했어요.”

경찰인력 35명 동원, 실상은…

지난 4월 1일 발생한 경기 수원 살인사건은 조선족이 자신의 원룸으로 끌고 온 20대 여성을 성폭행 한 후 살해했다는 사건으로 보도됐다. 하지만 한 언론이 경찰이 오씨를 수색하는 데 13시간을 소요했다는 내용으로 보도되면서 경찰이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정황이 드러났다. 경찰은 당초 “피해자가 정확한 주소를 말해주지 않았다”며 휴대전화 발신음 추적으로 기지국 반경 300~500m를 30여명의 경찰관을 동원해 밤새도록 수색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공개한 녹취록에 따르면 피해자 곽씨는 “지동초등학교에서 못골놀이터 가기 전 집인데 성폭행을 당하고 있다”고 비교적 자세하게 위치를 가르쳐 줬다. 이에 경찰은 “누가 그러느냐. 주소를 다시 말해달라”고 황당한 질문을 했다.

실제 범행 장소 또한 곽씨가 말한 지동초등학교에서 60m 거리에 위치해 있어 신고 내용과 거의 일치한다. 112신고센터에 전화했을 당시 근무자가 20여명이었던 점을 고려해본다면 무능력하게 피해자가 도움을 요청하는 다급한 목소리를 듣고만 있었던 것이다. 경찰은 당시 “오씨가 곽씨의 휴대전화를 강제로 빼앗아 전원을 꺼서 위치추적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밝혔다. 신고 직후 지령에도 큰 문제가 있었다. 경찰은 “성폭행, 못골놀이터 가기 전 지동초등학교”라고만 지령을 내렸을 뿐, “집안에 있다”는 결정적인 내용을 누락시켰다. 이어 순찰차 네비게이션에 뜨는 수사 또한 ‘지동초등학교, 성폭행, 정확한 위치 모름’이라고 뜨면서 정확한 정보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 이에 경찰은 지동초등학교 주택가가 아닌 못골놀이터부터 수색을 시작했다.

아울러 이번 사건에 관련돼 35명의 경찰 인력을 동원했다는 설명은 거짓으로 밝혀졌다. 곽씨가 경찰에 신고 뒤 투입된 경찰 인력은 1명의 강력팀장과 5명의 경찰관 등 총 6명이었으며 사건 현장 인근 주민들의 진술에 따르면 사고 발생일 밤늦게까지 찾아온 경찰은 한명도 없었다. 상황이 긴박한데도 수사지휘를 담당하는 조남권 수원중부경찰서 형사과장은 부재중이었다. 조 과장은 사건이 발생한 지 약 1시간 후인 2일 오전 0시쯤 강력팀장으로부터 ‘통신조회’를 위한 보고를 받고 사건 발생 사실을 알았지만 오전 7시쯤 중부서에 출근했다가 2시간 후인 9시가 넘어 현장에 출동해 탐문을 벌였다. 김평재 수원중부서장도 사건 발생 직후 상황을 보고 받지 못했으며 사건 발생 다음날인 2일 오전 8시40분 회의 때 보고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수원중부서는 이 사건을 강력사건으로 판단했지만 오씨를 검거하기 전까지 경기경찰청에 보고를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곽씨를 오전 5시쯤 살해했다”는 오씨의 진술과 곽씨가 오전 2시쯤 112신고센터에 전화한 것을 감안하면 6시간이나 곽씨를 구출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었던 뜻이다.

아울러 112신고 통화 시간은 경찰이 밝힌 1분 20초가 아닌 7분 36초로 확인됐다. 경찰은 “곽씨의 통화가 1분20초간 이어지다 억지로 문을 여는 소리와 함께 끊어졌다”고 밝혔지만 오씨가 잠긴 문을 열고 들어온 뒤에도 전화는 끊어지지 않았다. 곽씨는 휴대전화로 신고를 하다 오씨에게 발각이 되자 전화를 켜둔 상태로 바닥에 떨어뜨렸다. 이어 곽씨의 살려달라는 애원과 비명소리가 수화기를 통해 전달됐으며 중간에 테이프를 뜯는 소리도 함께 들렸다. 경찰은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없다”며 “이런 내용까지 공개할 수 없다”고 변명을 늘어놓았다. 또 살인사건 현장과 관할 파출소의 거리가 도보 7분 정도의 거리로 밝혀졌다. 한 네티즌이 온라인 상 지도를 통해 검색해 올린 사진에 따르면 사건 현장과 파출소의 거리는 도보 7분 거리이며 이 거리는 자전거로도 1분밖에 안됐을 정도로 가깝다. 결국 피해자와 경찰 간의 통화가 7분 36초로 전해진 가운데 경찰이 좀 더 신속히 수사했더라면 피해자의 살았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사건현장에서도 경찰의 무책임한 행태가 드러났다. 곽씨의 언니(32)는 경찰이 수색에 나섰다는 소식을 듣고 2일 오전 3시 10분쯤 사건 현장 인근을 찾았지만 순찰차 안에서 잠을 자고 있던 대기 형사 2명이 “다른 수색팀이 밖에서 열심히 찾고 있다”고만 말했다. 또 곽씨의 실종소식을 유족들로부터 연락을 받은 곽씨의 한 지인이 오전 8시 2분쯤 통화 시도 당시 누군가가 전화를 받았다는 내용을 문자메시지로 보냈고 언니는 중부서에 전화를 걸어 위치추적 요청을 했다. 하지만 경찰은 “동생을 죽이고 싶지 않으면 소방서에 가서 위치추적을 받으라”는 황당한 답변을 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경찰은 사건 녹취 파일을 찾는데 있어서도 무능함을 보여줬다. 추가지령을 내리기 위해 오후 11시15분쯤 곽씨의 신고 통화 내용이 저장된 파일을 찾았다. 하지만 녹취파일을 저장하는 서버가 다운돼 복구하는 과정에서 폴더를 재정리 하느라 약 1시간 45분이 지난 2일 오전 1시쯤에 녹취 파일을 다시 찾아 추가지령을 내렸다. 또한 경찰은 당초 오씨의 진술을 토대로 곽씨와 몸이 부딪혀 우발적으로 납치해 살해를 했다고 발표했지만 CCTV 판독 결과 전봇대 뒤에 숨어 있던 오씨가 곽씨를 밀쳐 넘어뜨렸으며 자신의 집으로 끌고 들어갔다. CCTV 화면은 오씨의 진술과 달리 계획된 범죄라는 사실을 입증해주고 있다. 하지만 경찰은 이마저도 사건 발생 8일 후인 9일 오전이 돼서야 확인했다.

280 조각낸 게 초범의 행각?

이번일로 경찰은 사면초가인 상황이다. 사건이 터지자 6일 서천호 경기지방경찰청장은 “경찰의 미흡한 현장대응으로 귀중한 생명이 희생되는 것을 막지 못한 데에 피해자와 유족, 국민들께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며 김평재 중부경찰서장과 조남권 형사과장을 경무과로 대기발령 조치를 내리고 9일 오후 사퇴했다. 이에 따라 김성용 경기지방경찰청 보안과장(총경)이 경찰서장으로, 이원희 경찰청 핵안보기획과장(총경)을 경기지방경찰청 보안과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또 조현오 경찰청장도 같은날 오전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에서 “경찰의 무성의함이 이런 참혹한 결과를 초래하고 축소와 거짓말로 국민들께 실망을 끼친데 대해 깊이 자책하면서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며 사퇴 의사를 밝혔다.

국민들로부터 질타를 받고 있는 경찰은 수사를 지휘하는 수장까지 잃은 충격이 큰지 좀처럼 수사의 방향을 잡지 못한 채 무능력함을 보여주고 있다. 중앙일보가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서울지방경찰서는 일선 경찰서 당직자들에게 인터넷에 사과 댓글을 달라는 지시를 내려 인터넷 여론몰이에 나섰다. 조선일보의 보도에 의하면 서중석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법의학부장은 “부엌용 칼을 사용했으나 뼈는 훼손되지 않았다”며 “이번 사건의 용의자는 시신 훼손에 대해 많은 경험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하지만 초범이 어떻게 뼈를 훼손하지 않고 시신을 수많은 조각으로 나눌 생각을 했다는 점이 의문이다. 보통의 경우 시신을 신속하게 처리하기 위해 유기하거나 대강 신체 부위별로 나눠 담는다. 이에 일부 네티즌들은 이번 사건이 지난 2007년 두바이에서 중국인들이 자행한 “‘여아 인육사건’과 상당부분 일치한다”며 “곽씨의 시신을 먹으려고 했을 수도 있다”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 2007년 9월 취업비자로 입국한 뒤 국내에 있는 동안 경남 거제, 부산, 대전, 수원, 용인, 제주 등 오씨가 머물렀던 지역에서 총 135건의 부녀자 실종사건과 살인사건이 발생하자 경찰이 아닌 오씨의 신병과 수사 자료를 송치 받은 검찰이 사건 실종자 및 살인사건 피해자 유전자와 오씨의 유전자를 대조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오씨의 처벌도 초미의 관심사이다. 오씨는 계획적인 살인 혐의로 사형 또는 무기징역, 10년이상의 징역까지 처하게 되고 사체 손괴죄 혐의까지 7년의 형량이 추가됨에 따라 최소 17년 이상의 형을 부과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경찰은 오씨의 여죄 여부를 놓고 오씨가 수원지검으로 송치됨에 따라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이번 사건 축소와 은폐, 무능력함이 국민들 앞에 드러나 체면을 구긴 경찰이 이번에야 말로 명예회복을 다짐하고 있다. 특히 2010년부터 이어졌던 검·경 수사권 갈등이 이번 사건에도 영향을 주고 있어 물러설 수 없다는 입장이다. 경기지방경찰청은 광역수사대 강력팀 6명과 강력계 실종수사팀 4명 등 총 형사 10명을 수원중부경찰서로 보내 추가 범죄 제보, 휴대전화 통화 기록 등을 조사중이다.

하지만 이미 화가 날 대로 화가 난 네티즌들은 비난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 네티즌은 “자존심은 일 잘하면 저절로 생기고 국민들이 세워 줄테니까 일이나 잘해”라고 말하는가 하면 다른 네티즌은 “경찰은 앞으로 개입도 하지 말아라. 너희들한테 불리하면 또 쉬쉬 할거잖아”라고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경찰이 앞으로 오씨의 여죄 여부를 밝혀내는 것과 상관없이 이미 경찰에 대해 무능력한 집단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는 국민들의 비난을 피하지 못할 것으로 전망된다.
장민서 기자 kireida87@naver.com

대전·인천·부산서 납치·실종 경보
귀가 중인 여성 표적

수원 토막살인 사건이 발생한 가운데 전국 곳곳에서 여성을 상대로 한 납치·실종사건이 사회에 불안감이 더욱 커지고 있다. 대전 둔산경찰서에 따르면 3일 오전 5시경 대전 서구 한 골목길에서 차에서 내리려는 A씨(34)를 흉기로 위협, 납치해 7시간 동안 청주와 청원 지역으로 끌고 돈을 요구해 이날 오후 12시경에 풀어줬다. 이어 4일 오후 9시쯤 대전 서구 갈마동 주택가에서 B씨(29)가 20대 괴한에게 같은 방법으로 끌려 다녔으며 다음날 오후 12시경 현금인출기에서 100만원을 인출해 건넨 뒤 풀려났다. 아울러 8일 오전 0시경 대전 중구 유천동 주택가 골목길에서 차에서 내리려고 하는 C씨(25)를 20대 후반의 괴한이 흉기로 위협 후 청주 근교로 납치, 현금 500만원을 요구했다. 하지만 C씨가 돈이 없다고 하자 23시간 만인 이날 오후 11시쯤 C씨를 차에 남겨 둔 채 달아났다.

인천에서는 남동구청 소속 여자 육상선수가 합숙소에서 외출 한 후 19일이 되도록 연락이 닿지 않아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12일 인천 남동구에 따르면 구 소속 단거리 육상선수 D씨(21)가 외출이 가능한 토요일 오후에 합숙소를 나와 지금까지 연락이 두절되고 있는 상황. D씨는 전남 광양에 위치한 집에서도 연락이나 소식이 없어 김 선수의 아버지가 위치 추적을 해본 결과 대전 유성터미널 근처에서 마지막으로 확인된 것으로 파악됐다.

한편 부산에서는 실종된 여대생이 실종 8일 만에 시신으로 발견돼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 부산 해운대경찰서는 지난 4일 오후 외출 뒤 실종된 여대생 E씨(21)가 오후 3시 10분쯤 집 근처인 해운대구 좌동 대천천 공원 내 호수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고 밝혔다. 발견 당시 E씨는 외출할 때 입은 보라색 가디건과 검정색 바지 차림 그대로였으며 귀에는 이어폰이 꽂혀 있었다. 또 E씨의 몸에 특별한 외상은 발견되지 않았다. 앞서 E씨는 외출 한지 30분 후인 오후 11시 50분쯤 어머니와 마지막 통화를 하며 “대천천 주변을 걷고 있으며 곧 집으로 가겠다”고 말한 뒤 연락이 두절됐다.
<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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