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폭행·갑질사례 폭로 잇달아, '직장 내 괴롭힘 금지’ 개정안 통과

13일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한국정보통신산업노동조합은 국회에서 ‘위디스크 양진호 회장 폭행사태’로 본 IT노동자 직장 갑질·폭행 피해 사례 보고 간담회를 열었다. 사진=조성호 기자

[민주신문=조성호 기자] 최근 사회적 공분을 일으킨 위디스크 양진호 회장을 비롯해 업계 전반에 직장 내 갑질과 폭행이 만연했다는 피해자들의 증언이 이어지면서 IT업계의 민낯이 드러났다.

13일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한국정보통신산업노동조합(이하 IT노조)은 국회에서 ‘위디스크 양진호 회장 폭행사태’로 본 IT노동자 직장 갑질·폭행 피해 사례 보고 간담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는 그동안 IT업계 종사자들이 직장 내에서 겪은 각종 폭행과 괴롭힘에 대한 폭로가 터져 나왔다.

채식주의자에게 고기, 주말동안 책 읽기 강요

인터넷 강의 업체로 유명한 ‘에스티유니타스’에서 웹디자이너로 일한 고 장민순씨의 언니 장향미씨는 “동생은 직장상사로부터 최소 4명이 해야 할 분량의 일감을 받으면서도 정확한 업무가이드도 없이 결과물에 대한 반복된 질책으로 인해 모멸감을 받았다”며 “특히 채식주의자인 동생에게 고기를 먹으라고 강요하고 주말 동안 업무와 관련없는 책을 읽어오라고 지시하는 등 비인간적인 근무 환경 속에 괴롭힘이 지속됐다”고 호소했다.

과도한 업무와 괴롭힘을 당해온 고 장민순씨는 탈진과 번아웃으로 힘들어하다 지난 1월3일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언니 장씨는 “과로자살은 회사가 개인에게 가한 극한의 폭력”이라며 “도망칠 수 없었던 피해자를 탓할 것이 아니라 죽음에 이르게 만든 가해자, 즉 회사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2년 반 동안 15만원, 골프채로 맞기도

25살의 디자이너 김현우씨는 한 IT스타트업에 2년 반 동안 근무하면서 총 15만원을 받았다고 고백했다. 또 숙식 생활과 학업 포기를 강요당했으며 개인 사생활과 물건을 전부 금지당한 채 새벽을 지새는 업무를 지속해왔다고 털어놨다.

김씨는 “대표에게 사비로 산 미니 선풍기와 LED라이트에 대해 구매 이유를 추궁당했고 폭행이 이어졌다”며 “피하려고 움찔하자 대표는 ‘너 이거 피하면 회사 내쫓기는 거야’라며 변명하는 입이 문제라며 입술에 피가 터지게 맞았다”고 말했다.

김씨는 또 “대표가 운영 중인 카페에 급하게 지원 나간 친구는 셔츠 색상을 잘못 입고 출근했다는 이유로 골프채로 묵묵히 맞았다”며 “팀원 동료 간에 뺨을 주먹으로 치라고 시키기도 했다”고 폭로했다.

임원이 비서 강제 키스, 회사는 피해자에 퇴사 강요

안종철 한국오라클 노조위원장은 오라클의 일상화된 권고사직, 차별적 위로금, 저성과자 괴롭힘, 조직적인 불법매출 강요, 일상적 욕설 회의, 매출처 분배를 통한 해고압박, 특정제품 매출강요, 시간외 근무수당 미지급 등 한국오라클에서 벌어지고 있는 갑질 행태를 폭로했다.

안 위원장은 “우리나라를 IT강국이라고 말하지만 이는 우리나라 IT노동자들의 먼 나라 이야기도 아닌 사기”라며 “한국오라클 직원들은 자신들이 일하는 회사의 연간 매출액이 얼마인지, 영업이익은 얼마인지, 본인들이 서비스하고 있는 제품원가가 얼마인지 모른다. 회사가 공개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한 임원은 회식 자리에서 비정규직 비서에게 술을 따르라고 강요하고 급기야 부서원들이 있는 자리에서 키스를 하는 등 성폭력을 행사했다”며 “다른 부서에서도 성추행이 발생했지만 제대로 된 조사와 조치 없이 같은 사무실에서 근무하다가 피해자는 퇴사를 강요당하고 가해자는 여전히 재직 중”이라고 밝혔다.

안 위원장은 “세계적인 IT회사가 이러한 불합리한 일을 대한민국에서 지속하는 이유는, 그 만큼 우리나라 IT노동자들의 노동환경이 비상식적이고 불합리함에 노출돼 있다는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13일 국회에서 열린 'IT노동자 직장 갑질·폭행 피해 사례 보고 간담회'에서 피해자들이 증언하고 있다. 사진=조성호 기자

직장 내 괴롭힘 만연…상급자 절대적 우위 점해

장재원 민주노총 법률원 변호사는 이날 “양진호는 회장이라는 지위를 이용해 노동자들에게 가한 행위는 직장 내 괴롭힘을 넘어 근로기준법 위반, 특수상해, 특수폭행 등 다양한 범죄에 해당한다”며 “문제는 직장 내 괴롭힘이 IT업계 내부에 만연해 있다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장 변호사는 “IT업계는 노동자의 이직률을 매우 높은 반면 고용시장의 규모 자체는 크지 않기 때문에 프리랜서나 지분계약, 파견노동 등 불완전 고용이 만연해 있다”며 “이에 사용자 등 상급자와 노동자 사이의 완벽한 불균형으로 인해 상급자는 절대적으로 우월한 지위를 점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즉 고용시장 규모가 크지 않고 이직할 경우 이전 직장에서의 평판이 중요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노동자는 상급자의 행위를 참고 견뎌야 하며, 가혹행위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경우 당장 해고가 될 수 있을뿐만 아니라 이직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예병학 11번가 노조위원장은 “IT업계의 근본적인 문제는 회사가 필요해서 채용하고 필요가 없어지면 해고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이라며 “노동자 본인들이 부족해서 그렇다고 인정하게 만드는 이 업계의 관행을 개선하는 것이 가장 급선무”라고 강조했다.

근로기준법 개정안, 실질적 보호 못할 가능성 커

한편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이러한 문제가 지속되면서 최근 직장 내 괴롭힘을 금지하는 내용의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개정안에 따르면 직장 내 괴롭힘 발생 사실을 알게 되면 사용자에게 신고하고 사용자는 조사를 실시해 괴롭힘 발생 사실이 확인되면 행위자에 대해 징계 및 근무장소 변경 등 조치를 취해야 한다. 또한 발생 사실을 신고한 근로자 및 피해자에게는 해고나 불리한 처우를 해서는 안되며 이를 어기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장 변호사는 “IT노동자의 상당수는 원청업체 또는 발주자 등으로부터 괴롭힘을 당하고 있지만 개정안은 사업장 내부의 괴롭힘만으로 한정하고 있어 원하청 업체 노동자 사이의 괴롭힘에 대해서는 규율할 방법이 없다”며 “IT노동자의 상당수는 근로계약 대신 프리랜서 계약, 지분계약을 체결하도록 강제되고 있어 상당수 IT노동자들은 실질적인 보호를 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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