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 날짜도 모성도 잃은 비정한 20대

▲ 지난 4월 5일 PC방에서 게임 중 아이를 낳고 살해·유기한 20대 여성이 검거됐다. 20대 여성이 유기한 영아는 음식물 쓰레기통 안에서 발견됐다.

지난달 성남 정화조 영아 유기 사건에 이어 세간을 떠들썩하게 한 사건이 또 한번 터졌다. 게임 중독 여성이 PC방에서 게임 중 아이를 낳고 살해·유기한 사건이 발생한 것. 영아 유기 사건은 지난 2009년 이후 급증하고 있는 가운데 올해만 벌써 11건이 발생했다. 이번 게임 중독 여성 영아 유기 사건의 전모와 급증하고 있는 영아 유기의 문제점에 대해 알아본다.

동거 남성에 버림 받고 PC방 전전, 게임 빠져 출산 신호도 몰라
경제적 어려움·원치 않는 임신 미혼모 급증 불구 사회적 제도 결여

아기는 컵라면이나 김밥으로 끼니를 떼우는 엄마의 뱃속에서 투정 없이 잘 먹었다. PC방에 울려 퍼지는 시끄러운 소음과 쾌쾌한 담배 냄새도 잘 견뎠다. 엄마 품에 안기기 위해 냉기가 흐르는 화장실 바닥도 참았다. 하지만 엄마는 안아주기는 커녕 봉지에 넣고 가뒀다. 아기는 어두운 봉지안에서 죽어갔다.

“그날 음식물 쓰레기통 안에서는”

지난달 25일 서울시 송파구에 위치한 한 PC방에서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한 여자가 이른 아침부터 게임을 하고 있다. 여자는 가끔씩 인상을 찡그리곤 배에 손을 갖다댄다. 여자의 배는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부풀어 있었다. 하지만 여자의 시선은 계속 모니터를 응시하고 있다. 오전 9시25분쯤 여자의 바지가 점점 붉게 물든다. 게임에 열중하고 있던 여자가 이를 인지했는지 바지를 보더니 배를 움켜진 채 화장실로 달려간다. 좁은 화장실 안에서 여자는 식은땀을 흘리며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밖으로 소리가 새어나지 않도록 이를 꽉 깨물었다. 이윽고 여자의 몸에서 조그마한 남자아이가 빠져나왔다. 여자는 우는 아이를 보는 순간 두려워졌다. 곧장 아이의 입을 틀어막고 화장실 세면대에 있던 비닐봉지에 아기를 넣었다. 어느 순간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여자는 PC방을 빠져 나와 모텔 화단에 자신의 아기가 든 봉지를 버렸다. 이미 싸늘하게 식어버린 아기는 3일 뒤 마트 종업원에게 발견됐다.

서울 송파경찰서는 지난 4월 5일 PC방에서 게임을 하던 중 낳은 아이를 비닐봉지에 넣어 숨지게 한 후 유기한 혐의(영아살해 등)로 A씨(26·여)를 검거했다고 밝혔다. 경찰 조사 결과 초등학교 때 부친이 간암으로 사망하고 그로 인해 모친이 정신이상 상태를 보이자 상습적으로 가출하는 등 떠돌이 신세였던 A씨는 지난해 5월 인터넷 채팅으로 만남 남자와 동거, 임신을 하게 됐다. 그러나 임신 사실을 안 동거남이 이별을 선언하고 지난 1월부터 출산 직전까지 A씨는 PC방을 떠돌아다니며 게임만 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 조사 결과 출산 직전까지 게임을 할 정도로 심각한 게임중독 증세를 보인 A씨는 편의점이나 식당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겨우 생활을 유지해왔으며 인터넷 게임에서 만난 상대에게 약간의 돈을 받아 끼니를 이어간 것으로 드러났다. 이렇듯 아이를 키울 능력이 없었던 A씨는 결국 해서는 안될 선택을 하고 말았다. 아이의 주검이 담긴 봉지는 A씨가 출산한 다음날인 3월 26일 모텔 청소부가 영아의 시체 인 줄 모르고 음식물 쓰레기통에 버렸으며 27일 오후 1시쯤이 지나서야 마트 종업원에게 발견됐다. 경찰은 A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할 계획이다.

아이 낳아도 키울 수 없는 현실 왜?

최근 들어 영아 유기가 늘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 2009년 52건이었던 영아 유기 사건이 2010년에는 69건, 2011년에는 127건으로 2년 사이에 2배로 급증했다. 올해 들어 언론에 보도된 영아 유기 사건은 11건이나 된다. 영아를 유기한 사연도 가지각색이다. 지난 1월 11일 출산한 딸의 사체를 유기한 주부 B씨(39)는 세 번의 결혼을 통해 얻은 다섯 자녀 중 큰 아들을 제외한 네 자녀와 함께 80여만원의 기초생활수급비로 생활할 정도로 양육하기가 힘들었다. 이중에는 외국인 여성도 있다. 지난달 13일 인천에서는 모텔에 투숙해 남자 아이를 출산한 뒤 아이를 버리고 달아난 불법체류 몽골인 C씨가 불구속 입건됐다. 아이의 아버지는 같은 몽골인으로 아이를 부양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이유로 C씨를 홀로 두고 몽골로 출국했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사건은 지난 3월 경기 성남의 맨홀에서 신생아의 사체 일부가 발견되면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범인은 사체가 발견된 근처 빌라에 사는 20대 여성 D씨였다. 직업이 없던 D씨는 원치 않은 임신으로 갓 태어난 자신의 아이를 살해하고 사체를 토막내 정화조 맨홀에 버린 6개월 후 경찰이 수사망을 좁혀오자 압박감에 자수를 했다. 이처럼 영아를 유기한 비정한 어머니들의 연령은 10대 청소년부터 시작해 40대를 바라보는 여성까지 다양하게 분포돼있다. 영아를 유기하는 이유도 경제적인 어려움과 즉석만남으로 인한 원치 않는 임신, 미혼모를 바라보는 사회적 편견 등 다양하다. 특히 요즘에는 미성숙한 성의식을 갖춘 어린 청소년들에게도 나타나고 있어 생명경시 풍조가 우려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영아 유기를 차단하는 일은 쉽지만은 않다. 영아 유기를 예방할 수 있는 인식의 개선과 사회적 제도가 갖춰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국가 차원에서 미혼모를 보호해줄 미혼모 시설과 영아보호 시설을 확충시켜 아기를 마음 놓고 양육할 수 있도록 사회적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아울러 생명 윤리 인식이 부족한 10대들에 대한 현실적인 성교육과 생명윤리교육이 좀 더 체계적으로 갖춰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워줘야 한다는 주장이 일고 있다. 또 일각에서는 입양 절차를 좀 더 간소화해 입양 문화를 활성해야 한다고 말한다.
장민서 기자 kireida87@naver.com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민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