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도 실종자도 ‘모두 묻혔다’

 

3년 전 세상을 들썩이게 한 강남 재력가 납치 사건이 재조명되고 있다. 그 이유는 지난달 사건의 용의자가 수사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수감 중 자살을 택한 것. 용의자가 죽자 그에게 당한 강남 재력가의 80억을 찾을 길이 사라졌다. 또한 그의 범행으로 추측되는 실종된 말레이시아 한인회 부회장의 행방도 미궁 속으로 빠졌다. 강남 재력가 납치 사건의 전모와 용의자의 죽음으로 인해 가슴만 치는 피해자들의 사연을 파헤쳐본다.

3년 전 세상 떠들썩 대학 동창 공모 100억대 강취-납치 사건 최근 다시 수면 위
지난해 말 도피 용의자 검거 해결 실마리, 최근 수감 중 자살 진실 미궁 속으로

“그 자식은 처음부터 원수였다. 날 감금하고 돈까지 빼앗은 것도 모자라 날 겁주려고 마약까지 강제로 준 파렴치한 놈이었다. 그런 그 자식이 경찰에 잡혀서 다시 내 돈을 찾을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그 자식이 죽었단다. 그 악랄한 놈이 자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단다. 허망하게 말이다.”

경제적 도움 요청한 진짜 이유?

지난 2008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사건이 터져나왔다. 강남 재력가가 대학 동창 등 일당에게 납치·구금 됐으며 108억원을 강취당한 것. 당시 발생한 사건은 부동산 임대사업가인 피해자 A씨(53)는 대학 동창 B씨, B씨가 소개한 C씨 등과 함께 서울 강남 압구정동에 위치한 음식점에서 저녁식사를 한 후 2차를 하러 가기 위해 용산구 이태원동으로 이동중이었다. 목적지에 다다르자 갑자기 B씨는 “음료수를 사오겠다”고 차에서 내렸다. 그 때 대기하고 있던 괴한 2명이 차에 올라타 B씨와 함께 A씨를 납치했다. 두달 여 동안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A씨를 감금한 이들은 A씨의 부동산을 담보로 78억원을 대출하고 30억원을 이체해 모두 108억원을 가로챘다.

특히 B씨는 이혼 후 대인기피증이 있는 A씨에게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도와달라고 부탁하는 등 5개월 동안 함께 생활하면서 치밀하게 범행을 준비해왔다. 또 이들은 A씨를 매일 가족 등에게 통화하게 해 경찰의 수사망에 벗어나려고 했다. 하지만 매일 아침에 전화를 받은 여동생이 이를 수상하게 여겨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이 수사망을 점점 좁혀오자 이들은 경찰에 붙잡히기 3일 전 A씨에게 강제로 마약을 투입하며 “신고하면 너도 마약사범으로 잡힌다”고 협박한 후 A씨를 강남구 도곡동의 한 도로에 풀어줬다.

B씨는 경찰서에 자진 출두해 “A씨를 유인만 했을 뿐 감금에는 가담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가운데 C씨는 경찰이 출국금지를 요청하기 하루 전 필리핀으로 달아났다. C씨는 필리핀으로 도피한 지 일주일 후 현지 경찰들에게 검거됐다. 경찰은 필리핀에서 “납치 사건의 주범인 C씨와 만나기로 했다”는 국제전화로 112 신고를 접수, 인터폴을 통해 현지 경찰에 협조를 구했다. 이에 필리핀 경찰은 마닐라시 한 호텔 로비에 있던 C씨를 검거했다.그러나 순조로울 것 같은 C씨 검거는 뜻밖의 암초에 걸렸다. 경찰이 C씨의 강제송환을 요구했지만 필리핀 당국은 “C씨가 현지법을 위반한 사실이 없다”며 10시간 만에 다시 풀어줬다. 경찰은 다 잡은 C씨를 놓쳐야 했다.

경찰은 사건이 발생한 지 3년 후인 지난해 말 다시 못 잡을 것 같았던 C씨가 위조여권을 사용한 사실을 확인하고 필리핀과 홍콩 등 동남아 11개국 경찰에 이 같은 사실을 통보했다. 결국 C씨는 필리핀,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일대를 돌았던 도피생활을 마카오에서 마감했다. 마카오의 한인식당에서 벽에 부착된 자신의 수배 전단을 보고 갑자기 자리를 뜨는 등 이상한 행동을 보이다 꼬리가 잡힌 것이다. 아울러 C씨는 자신의 아파트에 함께 들어간 후 사라진 말레이시아 한인회 부회장 실종사건에도 연루됐다. C씨가 지난해 12월 30일 검거됨으로써 강남 재력가 납치 사건은 종지부를 찍게 됐다.
 
“내 명의로 대출된 돈 못 갚아”

C씨의 소식은 지난달 다시 한번 언론을 통해 흘러나왔다. 구치소에서 수감생활을 하고 있을 줄 알았던 C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C씨는 지난달 18일 오후 10시40분쯤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 독방에서 속옷으로 만든 끈으로 목을 맨 채 교도관들에게 발견,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졌다. C씨는 ‘나는 살인자가 아니다. 가족을 실망시켜서 미안하다’라는 내용의 유서를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두고 경찰은 구속 중인 C씨가 말레이시아에서 발생한 한인회 부회장 실종사건에 대해 추궁하자 수사에 압박을 느껴 자살한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C씨의 갑작스러운 자살로 인해 피해자들은 피해보상을 받지 못하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동아일보에 따르면 사건의 피해자인 A씨는 C씨의 죽음으로 80억원을 찾지 못할 지경이 됐다. A씨는 자신의 부동산을 담보로 80억원을 C씨에게 대출해준 H저축은행과 대출금을 두고 소송을 벌였다. A씨가 소송을 시작했을 때는 법원은 은행의 편에 섰으나 오랜 시간 투쟁 끝에 절반만 갚는 것으로 판결이 났다. 하지만 A씨는 “나도 모르게 대출된 돈이라 갚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또한 A씨는 대학시절부터 B씨와 함께 친구 사이인 변호사 J씨도 범행에 가담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A씨는 “J씨가 범행에 대해 미리 알고 있었다는 정황을 있으나 확실한 증거가 없어 C씨의 진술이 필요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A씨 뿐만 아니라 실종된 말레이시아 한인회 부회장 D씨의 가족 또한 큰 고통을 받고 있다. C씨는 D씨와 함께 자신의 아파트로 들어간 이후로 사라지자 경찰은 C씨가 D씨를 살해한 후 유기한 것으로 보고 수사를 벌여왔다. D씨의 친척은 “D씨의 장녀가 직장도 그만두고 D씨를 찾는데 노력했으나 C씨가 갑자기 죽어 시신이라도 수습할 수 없게 됐다”며 “사망처리도 하지 못한 채 기다리기만 하는 D씨의 가족이 안타깝다”고 전했다. ‘강남 재력가 납치 사건’과 ‘말레이시아 한인회 부회장 실종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던 C씨가 갑자기 목숨을 끊으면서 사건 해결은 커녕 더욱 더 난항을 겪게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장민서 기자 kireida8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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