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여개 퍼핏과 700여개 조명으로 아프리카 사바나 대초원 펼쳐

[민주신문=양희중 기자] 아프리카 토속색 짙은 음악 ‘서클 오브 라이프’가 무대위에 울려 퍼지고, 선홍빛 붉은 태양이 대지 위로 두등실 떠오르면 기린이 무대 위를 유유히 거닐고 가젤은 떼 지어 뛰어다니기 시작한다. 

치타는 앞발로 귀를 긁으며 등장하고 얼룩말은 줄무늬를 뽐내며 걷기 시작하면 객석 통로로 코끼리가 들어오고 형형색색 조류와 코뿔소까지 공연장에 가득 들어차면 순식간에 생명력이 꿈틀대고 아프리카의 광활함이 요동치는 초원 사바나가 현실로 다가온다.

브로드웨이 뮤지컬 150년 사상 가장 인상적인 오프닝 장면으로 유명한 뮤지컬 ‘라이온 킹’의 주인공 아기 사자 ‘심바’의 탄생을 축하하는 첫 장면은 이렇게 시작된다.

지난 11월7일 대구 계명아트센터에서 개막한 뮤지컬 ‘라이온킹’은 왜 이 작품이 20년 넘게 생명력을 유지하며 ‘뮤지컬 제왕’이라 불리는지 강렬하게 객석의 관객들에게 인지시켰다. 

1997년 11월13일 브로드웨이에서 초연한 ‘라이온킹’은 총 20개국 100개 이상의 도시에서 공연하며 9500만 명을 관객석에 앉힌 디즈니의 대형 히트작이다. 특히 이번 인터내셔널 투어는 20주년을 기념해 월드디즈니 컴퍼니 시어트리컬 프로덕션과 마이클 캐슬 그룹, 에스앤코 등 오리지널 창작진과 세계 각국에서 ‘라이온 킹’에 출연한 배우들을 한자리에 같이 한다.

이번 공연은 배우들이 자기 신체와 200여개에 달하는 다양한 퍼핏(손 등 신체 일부를 결합해 조정할 수 있는 인형)을 결합해 동물들을 표현해내는 방식이 인상적이다. 각 동물의 모습과 특징을 표현한 방법과 아이디어는 상상력을 자극하는데 시적인 은유를 더해 매혹적인 정글을 완성했다.

극의 중심이 되는 ‘심바’와 그의 아버지 ‘무파사’ 등 사자들은 배우 얼굴을 그대로 둔 채 분장과 의상에 신경을 썼다. 배우와 인형이 하나가 돼 유연하게 움직이는 치타의 모습, 가젤이 떼로 몰려다니는 모습, 배우의 얼굴과 팔, 다리가 다 노출된 가운데 긴 목 마스크로 연결한 기린의 모습, 펄쩍펄쩍 뛰는 배우 팔에 매달려 포물선을 그리는 영양, 긴 줄을 빙글빙글 돌리는 동작을 통해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들 등 배우들이 협력해 동화적으로 모습은 압권이다. 

이 작품으로 여성 최초로 토니상 연출상을 받은 줄리 테이머(66)는 디즈니의 원작 애니메이션 속 동물 캐릭터들이 인간적이라는 점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이 같은 방식을 ‘휴매니멀’(휴먼과 애니멀의 합성어) 또는 ‘더블 이벤트’라 부른다. 

그녀는 젊은 시절 인도네시아에 머물며 아시아 가면 무용극과 인형극을 연구한 경험과 아프리카 마스크에서 영감을 받아 마스크와 퍼핏, 배우를 하나로 융화했다. 

‘심바’와 사바나의 왕 ‘무파사’, 왕위를 노리는 ‘스카’ 등 주요 캐릭터는 배우들의 표정과 연기가 생생하게 보일 수 있도록 마스크를 머리 위에 얹었고 물소떼가 심바 일행에게 달려오는 장면은 원근감 등을 활용한 무대 변환 아이디어로 생생함을 불어넣었다. 

이밖에도 동물뿐 아니라 대평원과 별빛 등까지도 배우들의 연기와 춤으로 표현된다. 잔디 모자와 뿌리 모양의 치마를 입은 무용수들의 춤으로 드넓은 잔디밭이 펼쳐졌다. 화려한 색감의 꽃과 열매는 패션쇼에서 볼 수 있을 법한 독창적인 의상들로 구성됐다.

배우들이 이 모든 걸 표현하다 보니 오히려 무대 세트는 단순하고 미니멀하다. 최첨단 장비나 대규모 스펙터클을 의도적으로 지운 듯한 아날로그적 무대를 가득 채우는 건 700여개 조명장치로 만들어낸 빛이다.

붉은 태양부터 푸른 하늘과 초록 정글, 칠흑 같은 밤까지 강렬하면서도 섬세하게 표현된 색감은 사바나의 경이로운 대자연을 그려낸다.

또한 음악 역시 빼놓을 수 없다. ‘팝의 전설’ 엘튼 존(71)과 전설적인 작사가 팀 라이스(74) 콤비, 그리고 작품의 근간이 되는 아프리카의 솔을 담아낸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 레보 엠(54), ‘영화 음악의 대부’ 한스 지머(61) 등이 동명 뮤지컬 애니메이션에 이어 뮤지컬 작업에도 그대로 참여했다. 

오리지널 연출가인 테이머는 이번 인터내셔널 투어 연출까지 맡았는데 그녀는 관객 머리 위에서 60㎞가 넘는 비행 장면을 구현하고자 시도하는 등 혁신적인 연출을 주도하며 크게 주목 받았는데 이번 작품에서 테이머는 원작 애니메이션보다 여성 캐릭터를 도드라지게 연출해 주목받고 있다. 

이번 작품은 개막식과 함께 12월25일까지 대구 계명아트센터에서 공연하고 2019년 1월9일부터 3월28일까지는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2019년 4월에는 부산 드림시어터에서 공연이 예정되어 있다. 대구 공연은 티켓 오픈 당일에만 약 2만8000장이 팔려나가 지방 공연 기준으로 역대 최다 판매기록을 세웠으며 서울 공연 역시 주말 주요 좌석은 거의 매진됐다.

‘라이온 킹’ 인터내셔널 투어 협력사인 에스앤코 신동원 대표 프로듀서는 “세계 뮤지컬 관계자들이 한국 시장을 주목하는 중이다. 몇 년간 국내 시장이 정체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전 세대가 공감하고 감동하는 무대를 선보여 뮤지컬 관객을 확대할 수 있으면 한다. 다양한 뮤지컬이 폭넓은 사랑을 받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마이클 캐슬 인터내셔널 투어 프로듀서는 “인터내셔널 투어로 작품의 질을 타협하지 않았다. 브로드웨이, 웨스트엔드의 작품성을 갖고 있다. 2005년 이후로 한국 뮤지컬 시장이 진화하고 성숙했다. 그래서 이번에 상업적으로 성공할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다. 대구, 서울, 부산에서 공연한다. 예전 같았으면 서울에서만 공연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인터내셔널 투어 총괄 이사를 맡은 펠리페 감바(월트디즈니 컴퍼니 시어트리컬 그룹 국제 협력부 디렉터)는 “결국 이 작품은 인간성과 인류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공연을 보는 모두와 관련 있는 이야기”라고 소개했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민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