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 싸움에 등 터진 여학생들

▲ 숙명여대 재단은 교육과학기술부로부터 이사진 승인 취소 통보를 받았다.

지난 2월 9일 숙명여자대학교의 재단법인 숙명학원이 동문이나 기업 등으로부터 받은 기부금 685억원을 법인 계좌로 이체 시킨 후 다시 학교로 보내 편법 운용을 해온 것으로 드러나 교육계에 큰 파문이 일어났다. 이에 숙명학원은 학교가 받은 기부금을 다시 학교로 이체하는 과정에서 단 1원도 유용하지 않았으며 중간에 가로채거나 돈세탁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으나 조사를 착수한 교육과학기술부로부터 이사장과 이사, 감사 4명 등 6명 승인을 취소처분을 받았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재단 측은 한영실 총장을 해임하는 결정을 내렸다. 재단과 학교의 싸움이 극적으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이번 숙명여대 사태의 진행과정과 학교측과 재단 측의 쟁점, 숙명여대의 현재 상황과 앞날에 대해 짚어본다.

전현 총장 주도권 싸움, 알고 보니 친이-친박 정치적 대립(?)
이사장 “승인 취소 최종 결정 나는 순간 회복 위해 소송 불사”

지난 3월 30일 숙명여자대학교의 운명을 결정짓는 날이었다. 이사회로부터 해임됐던 한영실 총장이 다시 복귀해 회생한 반면 승인 취소를 받은 이용태 이사장 및 이사진은 교과부의 최종 결정을 앞두고 있다. 이들의 운명을 이렇게까지 몰아넣은 것은 ‘법정 전입금’으로부터 시작됐다.

그들이 아침 일찍 공항에 모인 이유

재단법인 숙명학원과 숙명여대의 갈등은 ‘법정 전입금’ 문제가 학교 외부로 알려지면서부터이다. 지난 2월 9일 숙명학원은 1995년부터 2009년까지 동문이나 기업 등으로부터 받은 기부금 685억원을 법인 계좌로 이체 시킨 후 다시 학교로 보내 편법 운용을 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그 부담은 학생들이 고스란히 짊어져야 했다. 숙명여대의 1인당 연간 등록금은 2000년 476만원에서 2010년 864만원으로 올랐으며 등록금 의존율은 2000년 52.1%에서 2010년 65.8%로 크게 상승했다. 이에 숙명여대와 총동문회, 총학생회는 “책임을 지고 이사장 및 이사진들은 사퇴하라”고 밝혔다. 하지만 숙명학원은 학교가 받은 기부금을 다시 학교로 이체하는 과정에서 단 1원도 유용하지 않았으며 중간에 가로채거나 돈세탁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재단은 한 총장의 임기가 오는 8월에 끝남에 따라 한 총장이 연임할 속셈으로 현재 이사장 및 이경숙 전 총장의 인사인 이사진을 내쫓기 위해 이를 이슈화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교육과학기술부는 숙명여대 기부금 편법 운영과 관련 자체 조사에 들어갔으며 재단이 2004년 이후 학교 기부금 395억원을 편법 운영한 것으로 보고 20일 이 이사장과 이사, 감사 4명 등 6명 승인을 취소했으며 숙명학원과 숙명여대에 기관경고 처분을 내렸다. 교과부는 또 ‘사립학교법 시행령’ 개정안을 추진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제 13조 ‘교비회계와 부속병원회계의 세입세출’ 1항 교비회계의 세입 항목에 학교 교육에 사용할 목적으로 받은 기부금이 추가됐다.

한편 재단과 학교 측이 팽팽하게 맞서는 가운데 이경숙 전 숙명여대 총장과 한영실 현 총장간의 주도권 싸움이 ‘정치적’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 전 총장이 1994년부터 2008년 8월까지 14년간 숙명여대 총장 자리에 있던 당시 사무처장, 교무처장을 지낸 한 총장을 자신의 ‘후계자’라고 생각할 정도로 아꼈다고 숙대 관계자들이 전했다. 하지만 한 총장이 2008년 9월부터 총장 자리에 오르면서 둘의 사이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한 총장은 이 전 총장이 추진하던 적십자간호대 통합, 용인연수원 리모델링 등을 백지화시켰다. 이 전 총장은 소망교회를 같이 다닌 인연으로 2007년 12월 MB정부 초기 대통령직인수위원회위원장을 지내며 ‘아륀지’ 발언으로 화제가 됐었다. 2008년 총장직에서 물러난 뒤에는 한국장학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다.

KBS ‘비타민-위대한 밥상’에 출연해 인기를 끈 한 총장은 현재 새누리당 공직후보자추천위원에 올라있다. 아울러 한국유아교육인협회장으로 있는 류지영 숙명여대 총동문회장이 새누리당 비례대표 17번을 받은 것도 한 총장의 손을 탄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를 두고 이른바 ‘친이(이경숙)-친박(한영실)의 대리전’이라는 뒷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팽팽하던 긴장감은 숙명학원이 긴급이사회를 열고나서 깨졌다. 22일 숙명학원은 오전 7시 김포공항에서 긴급이사회를 열어 ‘학교 명예 실추’를 이유로 들어 한 총장을 해임했다. 이에 한 총장은 위반이라며 서울서부지방법원에 ‘총장 해임 및 이사해임 결의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우리 학교 조사해주세요”

학교와 재단과의 싸움이 절정으로 달리고 있던 26일 본지 기자는 숙명여대를 찾았다. 그 곳에서 학교 측과 재단 측의 입장을 들을 수 있었다. 22일 열린 긴급 이사 회의에서 한 총장의 해임처분 과정에 대해 학교 측 관계자는 “일주일 전에 통보했던 심의할 안건에 구체적으로 명시돼야 하지만 한 총장의 해임 건은 없었다”며 “이사회로부터 (해임을) 통보받지 못했고 내가 해임됐다고 전달하고 나서야 알았다”고 말했다. 이어 “일주일 전이라고 하지만 이사진 2명의 임기가 하루 밖에 남지 않은 시점에서 그것도 오전 7시에 진행했다는 것에 의구심이 든다”고 덧붙였다. 이에 재단 측 관계자는 “이사진 중 한 명이 중국 출장을 가게 돼 이른 시각 공항에서 진행할 수 밖에 없었다”며 “14일에 통지된 서류에는 심의안건의 내용이 함축적으로 처리됐다”고 심의 안건 명시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재단 측은 한 총장의 해임 처분에 대해 2010년 세네갈 국외출장 당시 출장비용 과다지출과 학교회계로 상품권을 구입해 사용 한 것을 이유로 들었다. 이 같은 재단의 처분에 학교 측은 “세네갈 국외출장은 국빈 초대를 받아 방문했기 때문에 그에 격을 맞춰 몇 몇 처장과 함께 가다 보니 지출이 늘어나게 됐다”며 지난해 재단 측으로부터 신고받은 4번의 교과부 집중감사에서 상품권 구입 등에 대해 모두 ‘무혐의’라고 판결을 받았다. 학교 측의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또 학교 측은 “이 전 총장이 퇴임하던 시기 한 총장에게 적십자 간호대학을 인수할 것을 부탁받은 것으로 알고 있으나 학교에 많은 실이 될 것으로 판단해 정중하게 거절했다”고 밝혔다.

이 전 총장이 재임시절 계속 지켜왔던 유네스코 석좌교수 자리에 대해 대학의 정교수가 올라야 하지만 퇴임한 이 전 총장이 다시 교수직에 오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에 무산시켰다는 주장이다. 반면 재단 측은 이 전 총장을 학교 발전에 한 획을 그은 인물로 표현하고 있다. 재단 관계자는 “이 전 총장은 재임 전 27개의 건물 뿐이었던 숙명여대에 21개의 건물을 지어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한 분”이라고 설명했다. 이 전 총장과 함께 했던 이용태 이사장에 대해서도 “이사장으로 선임될 당시 IT계의 선구자로 알려져 있어 안 오시겠다는 분을 모셔왔다”며 “현금 8억과 2억원을 들여 컴퓨터를 학교에 기증하는 등 모두 10억원을 기부했다”고 언급했다.

한 총장과 이 전 총장의 대립이 친박-친이 싸움이라는 언론 보도에 대해 학교와 재단 모두 아니라고 부인했다. 학교 관계자는 “이 전 총장이 MB 정부 초기에 잠깐 대통령직인수위원회위원장을 맡고 현재 정치계에서 물러난 상황인데 정치 싸움이라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전했다. 재단 관계자도 “대립이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류지영 총동문회 회장의 새누리당 비례대표 선임’ 의혹에 대해 학교 관계자는 “유아 교육계에 일가견이 있는 분인데 학교 폭력이 사회 문제로 떠오른 이 시기에 마침 새누리당 내 각 분야의 비례대표 선임 중 공석이었던 유아 부문에 들어가게 된 것”이라며 한 총장과 관련이 없다고 해명했다.

총장 서리 건 관련 문제를 놓고 학교 측과 재단 측은 상당히 상반된 견해를 보였다. 학교 정관에 따르면 총장의 유고 시 부총장이 총장대행을 맡지만 숙명여대에는 부총장이 없다. 이에 3순위인 대학원장이 총장 대행을 맡는 것이 맞다는 학교 측의 주장이다. 하지만 재단 측은 “총장 서리를 임명할 수 있다”며 모 변호사와의 의견서를 제시했다. 의견서에 따르면 법인 이사회 입장은 단체법인 정관에 구속되나 총장이 단독으로 만든 정관 하위규범인 직제규정에는 구속되지 않는다. 이에 총장 직무대행은 단지 보직을 정하는 것이 아니라, 대학 행정을 대표할 자를 정한다는 점에서 총장의 권한이 아닌 전적으로 법인 이사회의 권한이기 때문에 총장 서리를 임명이 가능하게 된다. 끝으로 학교 측은 총장 서리로 선임된 구명숙 한국어문학부 교수에 대해 “원래 이사진들과 친분이 있었으며 박물관장을 지냈을 뿐 학교 전반의 행정 업무 부분에 있어서 전무한 적합치 않은 인물”이라고 한 반면 재단 측은 “이사진회의에서 적합한 절차에 따라 선임된 인물”이라고 말했다.

막장싸움에 숙대는 쑥대밭

학교와 재단과의 싸움이 막장으로 치닫고 있을 무렵 30일 재단인 학교법인 숙명학원으로부터 해임 처분된 한 총장이 다시 총장직에 복귀했다. 전날인 29일 서울서부지방법원 제21민사부(수석부장판사 박희승)은 숙명학원 이사회가 해임 결정과 관련 한 총장이 제기한 ‘총장 해임 및 이사해임 결의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에서 결의 효력을 임시 정지하기로 밝혔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사립학교법에 따라 이사회 소집 시 최소 회의 일주일 전에 회의의 목적을 명시해 각 이사회에게 통지하도록 하지만 숙명학원 이사회의 심의 안건에는 한 총장의 해임의결과 총장 서리 지명이 명시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사회의 결정은 무효”라고 밝혔다. 아울러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에게서 임원 취임 승인 최소를 받은 이용태 숙명학원 이사장의 청문회가 30일에 있고 3명의 이사가 임기 만료일 하루 전에 해임 결의가 이뤄졌다는 점, 총장업무 공백에 학생들의 수업권이 침해될 수 있을 우려가 있어 보전의 필요성이 인정된다는 판단이다.
 
하지만 재단 측은 이에 반발하고 있다. 이용태 이사장은 국내 한 언론매체와의 통화에서 “법원은 한 총장 해임 절차 문제를 판결했으나 (한 총장의) 총장 자질이 없다는 것은 사실”이라며 “이사 2명에 대한 승인 취소가 최종 결정된다면 법원에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을 내고 이사직 회복을 위해 소송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30일 현재 교과부에서 승인 취소 통보를 받은 이 이사장 및 이사진 6명에 대한 청문회가 오전 9시30분부터 비공개로 진행되는 가운데 교과부의 승인 취소 최종 결정에 따라 이들의 운명이 바뀌게 된다. 또한 교과부는 숙명학원으로부터 재선임 신청 받은 이사 3명에 대한 승인 여부 건을 진행한다. 교과부가 이사진에게 승인 취소 결정을 내린다면 이들은 앞으로 5년간 숙명여대 뿐만 아니라 다른 대학의 재단으로도 활동할 수 없게 된다.

총학생회도 이날 대학 내 순헌관 광장에서 전체학생총회를 개최해 이번 사태에 대한 문제 해결을 비롯 불법 미납 법정 전입금 796억원 환원과 이사회와 총장 선출 과정을 학생에게 공개하고 참여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5개항을 요구할 계획이다. 이로써 숙명여대의 한 총장 해임사태는 일단락 된 가운데, 이들의 싸움은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하지만 현재 학교와 재단 측의 싸움으로 숙명여대 학내는 ‘쑥대밭’이 됐다. 이번 싸움이 완전히 끝났다고 하더라도 학교의 명예회복과 복구 및 새로운 학교 내 시스템 마련을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장민서 기자 kireida8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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