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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근대건축을 거닐다](4) 순수주의 미학과 현실의 간극: 르코르뷔지에의 사부아 저택 (1928~31)
  • 김현섭
  • 승인 2018.11.02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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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섭 고려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유럽 근대건축운동의 가장 대표적인 아이콘으로 르코르뷔지에(Le Corbusier, 1887~1965)의 사부아 저택(Villa Savoye, 1928~31)을 꼽는 데는 이견이 없다.

동시대 다른 모더니스트들의 작품과 비교해도 연유를 가늠할 만하다. 발터 그로피우스의 바우하우스 신교사(1925~26; 본 연재물 3회분 참조)는 진보적 교육기관으로서의 명성에 힘입어 그 국제주의적 건축의 가치에 시너지를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 건물은 사부아 저택이 내포하는 시적 감수성의 측면에는 꽤 초연했다. 미스 반 데어 로에의 바르셀로나 박람회 독일관(1928~29)은 공간과 재료, 그리고 미니멀리즘의 미학을 통해 근대건축의 가능성을 새로운 차원에서 제시한 걸작이다.

그러나 전시관의 단순한 기능으로 인해 사부아 저택이 평면과 단면에서 가졌던 수많은 아이디어들의 농밀한 응축을 선보이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지금까지 대개의 건축사서가 이 집을 모더니즘의 표상으로 내세우는 데 주저하지 않았음은 바로 이러한 까닭에 기인했을 것이다.

예컨대, H. R. 히치콕과 P. 존슨은 일찌감치 사부아 저택을 『국제주의 양식』(1932)의 핵심 사례로 간주했고, S. 기디온은 『공간, 시간, 건축』(1942)에서 이를 새로운 시공간 개념을 담는 ‘정신적인 구축(construction spirituelle)’의 예로 치켜세웠으며, W. 커티스는 『1900년 이후의 근대건축』(1982)에서 예외적으로 이 주택(과 위니테 다비타시옹 각각)을 독립된 장으로 다룸으로써 그 중요성을 부각시켰다. 따라서 사부아 저택을 잠시라도 방문치 않고서는 서양 근대건축의 숲을 거닐었다고 말하기 힘들 것 같다.

파리 근교 푸아시의 사부아 저택. 사진=김현섭

파리 북서쪽으로 약 30km 떨어진 푸아시(Poissy)에 위치한 이 저택은 사부아 가족을 위한 주말 별장으로 계획됐다. 필로티 위에 세워진 백색의 박스형 볼륨은 평면이 정사각형에 가깝고, 한 변의 길이는 20m에 근접한다. 이러한 건물의 규모를 생각하면 ‘저택’이라는 말 자체가 전혀 무색하지 않다.

1층은 필로티 안쪽으로 후퇴된 벽면으로써 U자형의 평면을 이루며, 중심축을 기준으로 대부분의 기둥이 대칭으로 자리해 규칙적인 리듬을 보인다. 원호 끝 중심축 상에 위치한 출입구에 들어서면 같은 축 위에 놓인 경사로를 대면하게 되는데, 1층의 중앙을 호령하는 이 ‘건축적 산책로(promenade architecturale)’는 2층을 거쳐 옥상 최상위 레벨까지 이어진다.

이와는 별개로 서비스 동선을 담당하는 계단실이 경사로 옆에 배치돼 각 층의 부속 공간을 매개한다. 주층(piano nobile)인 2층에는 커다란 살롱(salon)이 북서쪽에 놓여 전면을 가로지르는 수평창을 통해 푸른 초장을 조망하며, 반대편은 침실 등 여러 사적 공간이 점하고 있다. 그리고 그 사이의 한편이 큼직한 테라스에 할애되어 실내외를 중재하는데, 여기서 곧바로 경사로를 통해 최상층의 옥상 정원에 이를 수 있다.

이 프로젝트 수행 당시의 르코르뷔지에는 이미 다양한 작품과 출판과 활동으로 자신만의 아이디어를 벼려왔던 40대 초반의 야심찬 건축가였다. 그는 도미노 골조(Maison Domino, 1914~15)에서 엿보였던 ‘새로운 건축을 위한 5원칙’을 확립했고, 바이센호프 주택(1926~27)이나 가르셰 주택(1926~28) 등 다수의 주택을 실현해 주목받았으며, 건축과 도시계획을 위한 강력한 어젠다를 공표한 바 있다(Vers une architecture, 1923 & Urbanisme, 1925). 

게다가 1928년 창설된 근대건축국제회의(CIAM)에서 서서히 리더십을 발휘하기 시작했던 상황, 그리고 1918년 오장팡과 천명했던 순수파 회화를 지속했던 일을 생각해보자. 그에게 주어진 너른 대지와 예산은 이 같은 개념과 야심을 더 확장시킬 절호의 기회였고, 그는 이를 놓치지 않았다.

무엇보다 사부아 저택은 그의 다섯 원칙이 가장 잘 구현된 예다. ‘필로티’와 ‘수평창’은 외관에서 단번에 알아볼 수 있는 요소이고, ‘자유로운 평면’ 및 ‘자유로운 입면’은 기둥의 전략적 사용으로 가능했으며, ‘옥상정원’은 2층의 테라스와 최상층에 적용됐다. 이 가운데 필로티와 옥상정원은 그의 전후 대표작인 위니테 다비타시옹(Unite d'Habitation, 1947~53)으로도 명백히 이어졌는데, 두 작품 모두에서 필로티는 한 장소에 고착되지 않고 어디에든 옮겨갈 수 있는 건축의 보편적 면모를, 옥상 구조물은 유람선의 이미지에 빗댄 근대 기계주의 사회의 주거를 상징했다.

하지만 사부아 저택에서 기계시대에 대한 고민이 전폭적으로 드러난 부분은 자동차와 집과의 관계다. 1층 평면은 파리에서 차를 타고 이 별장에 도착하는 사부아 가족이 필로티와 U자형 벽면 사이의 자동차 진입로를 반쯤만 돌아 출입구 바로 앞에서 내리도록 디자인됐다.

그리고 기사는 좌측으로 돌아 곧장 차고로 진입하게 된다. 덕분에 여타의 다른 진입 방식은 진지하게 고려되지 않았고(북서측 입면에서 출입구를 가로막고 있는 정중앙의 필로티를 보라! 그가 사모했던 파르테논도 중심축 상에 기둥을 두지 않았다), 건물과 대지가 철저히 분리됐으며, 이곳에서 자연은 오로지 옥상에서만 향유된다.

‘살기위한 기계(machine à habiter)’로서 사부아 저택이 갖는 이러한 특성은 순수주의 화가이기도 했던 그의 미학적 선호에도 기인했다. 그가 정사각의 기하형태에 모든 공간을 밀도 있게 담아낸 점, 건축적 산책로나 옥상의 조형물 등으로 미학적 가치를 증폭시킨 점, 모든 척도와 시각을 섬세히 조절한 점 등을 높이 평가하자.

그럼에도 그는 기본적으로 주택을 캔버스 위의 오브제와 동일시 한 듯하다. 우리 삶의 현실은 하나의 화폭으로만 고정될 수 있는 게 아니라 수많은 사회적 요인들의 상호작용에 의해 형성되는데도 말이다. 이리 생각할 때, 예산이 배가됐다거나 누수로 인해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는 정도의 불평은 더 커다란 구도의 비판 가운데 상당히 지엽적인 일부만을 차지하는 것일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은 그러한 까닭에, 사부아 저택은 우리에게 이중의 교훈을 제시한다. 근대건축가의 이상적 꿈이 얼마나 아름답게 그려질 수 있는지를 보여줬기 때문이며, 또한 그 꿈이 현실과 이루는 간격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줬기 때문이다. 푸른 풀밭 위의 하얀 집은 사진 속에서 가장 빛난다. (끝)

* 이 글은 필자가 쓴 《건축수업: 서양 근대건축사》(도서출판 집, 2016)의 사부아 저택 챕터를 요약한 것입니다. 더 자세한 사항은 이 책을 참조해주세요.

김현섭  archistory@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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