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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보학의 법률칼럼] 심신미약 둘러싼 논쟁을 보는 두 가지 시각
  • 서보학
  • 승인 2018.10.29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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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보학 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최근 법률용어인 심신미약(心神微弱)이 언론의 핫이슈로 떠올랐다. 심신미약이란 정신기능이 쇠약한 상태를 의미한다. 법적으로는 범죄인이 범죄를 저지를 시점에 사리를 분별한 능력이나 혹은 그 분별에 따라 행동할 능력이 미약한 상태에 있었음을 의미하는 용어이다.

헌법상의 근거를 갖고 있는 책임주의 원칙에 따르면 범죄인이 정상적인 정신기능 상태에서 죄를 범한 경우에만 형벌을 부과할 수 있기 때문에 심신이 미약한 상태에서 범죄를 저지른 경우 형벌을 감경해 주거나 혹은 아예 심신상실 상태에서 범죄를 저지른 경우 무죄를 선고하도록 하는 것은 적어도 법률전문가들에게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런데 이점이 일반 국민들에게는 불안을 야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번 강서구 PC방 살인사건에서 피의자가 평소 우울증 치료를 받았다는 병력을 경찰에 제출하였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혹 엽기적인 살인사건을 저지른 범죄인이 심신미약을 이유로 가벼운 처벌을 받지는 않을까 하는 국민들의 불안이 불만으로 터져 나왔다.

해당 피의자에게 심신미약을 인정해서는 안 되고 중한 형벌로 다스려야 한다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100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동의하였으니 가히 국민들이 느끼는 불안의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범국민적 불안현상에 전혀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니다. 최근 몇 건의 사건을 통해 국민들의 불안이 누적되어 있던 것이다.

대표적으로 지난 2008년 어린 여아를 성폭행해 국민들의 공분을 샀던 조두순은 만취상태에서 범행을 저질렀다는 이유로 심신미약이 인정되어 검찰이 무기징역을 구형했음에도 불구하고 현저히 낮은 형인 12년 형을 선고 받았다. 2016년 서울 강남역 인근 화장실에서 20대 여성을 흉기로 살해하여 여성들의 공분을 자아냈던 김모 씨 역시 조현병을 인정받아 형이 감경되었다. 지난 2014년에는 발달장애 1급인 18세 이 모군이 만 1세 영아를 건물 밖으로 떨어뜨려 사망케 한 사건이 벌어졌는데 법원은 이 사건에서 피고인의 심신상실을 인정해 무죄를 선고하였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많은 국민들은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중범죄인들이 심신미약 또는 심신상실을 핑계로 중벌을 피해 나가고 있고 이것이 다시 제2, 제3의 중범죄를 야기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고 믿고 있다. 국민들이 느끼는 불안과 형사사법체계에 대한 불신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경악할만한 사건들이 벌어졌다고 해서 헌법 및 형사규범이 오랜 기간 논의하여 구축해 놓은 책임주의 원칙을 허물 수는 없다. 가장 강력한 제재수단인 형벌은 사리를 분별하고 그에 맞춰 행동할 수 있는 정상적인 정신기능을 가진 범죄인에게 부과될 때 비로소 그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심신미약 제도와 관련하여 일부 오해를 풀 필요도 있고 또한 제도개선이 필요한 부분도 있다.

첫째, 정신병력을 이유로 한 심신미약이나 심신상실은 국민들이 염려하는 것과는 다르게 쉽게 잘 인정되지 않는다. 우선 범죄인의 심신상태를 전문적으로 감정하는 의료인들이 심신미약·심신상실 의견을 내야하고, 설혹 이들이 심신장애 의견을 내더라도 이를 최종 판정하는 것은 법관의 몫으로 미뤄져있다.

실제 법관들은 의학적인 관점 외에 범행 전후의 상황을 면밀하게 판단하여 의료인 보다 더 엄격하고 신중하게 심신장애 여부를 판단하고 있다. 때문에 우리나라 법원에서 실제 심신미약이 인정받는 비율은 20%에 불과하다는 통계가 나와 있다.

게다가 다수 의료전문가들이 지적하듯이 우울증으로 인해 심신장애 판정을 받을 가능성은 없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나아가 심신미약 또는 심신상실이 인정되어 형을 감경하거나 무죄를 선고하는 경우에도 범죄인에게 사회일반에 대한 공격성·위험성이 인정되는 경우에는 별도로 치료감호법에 따른 치료감호를 선고하여 구금치료를 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위험성을 지닌 범죄인으로부터 사회를 보호하기 위하여 보안처분이 형벌의 보완수단으로 도입되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범죄를 저지른 심신장애인이 쉽게 심신미약을 이유로 감형을 받거나 아무 대책 없이 사회에 방치될 것이라는 불안감은 가질 필요가 없다. 또한 정신병력을 가진 사람들의 범죄율이 일반인들의 범죄율보다 오히려 낮다는 것이 통계상 입증되어 있기 때문에 이들에 대해 사회적 편견을 갖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둘째, 재판실무에서 주취로 인한 감형관행은 확실히 개선될 필요가 있다. 물론 범죄인에게 스스로가 쉽게 극복할 수 없는 알코올의존증이 있고 이것이 범죄의 원인이 되었다면 당연히 심신장애가 인정되어 형감경이 허용될 수 있고 대신 그에게는 치료감호라는 다른 치료 및 제재수단이 부과될 수 있다. 

그런데 종래 재판실무에서는 알코올의존증에 미치지 못하는 주취상태에서의 범죄에 대해 쉽게 심신미약을 인정해 형감경의 혜택을 부여한 사례들이 적지 않았다. 

그 원인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는데, 하나는 우리사회가 음주문화 및 음주로 인한 실수에 대해 매우 관대한 점이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법원이 변호사(특히 전관변호사)에게 혜택을 주기위해 음주로 인한 심신미약과 형감경을 쉽게 인정해 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주위를 둘러보면 우리사회에서 수많은 범죄가 주취상태에서 벌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성폭력과 음주운전뿐만 아니라 각종 폭행사고, 신체상해 및 살인사건, 재물손괴사고, 업소의 업무방해, 가정내 폭력 등등이 주취상태에서 벌어지고 있다. 더 이상 음주로 인한 실수에 관대해서는 국민들의 안전과 재산을 제대로 보호할 수 없는 지경에 와 있음을 알 수 있다. 때문에 국민여론도 주취범죄에 대해서는 보다 강경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입장이 우세하다. 

이제는 우리사회에서도 주취가 범죄에 대한 만능변명이 되도록 해서는 안 된다. 국회는 지난 2013년 성폭력범죄처벌법을 개정해 성범죄에 대해서는 음주 또는 약물로 인한 심신미약시 형감경을 적용하지 않을 수 있도록 하였다. 이제 법원도 음주로 인한 심신장애는 보다 엄격하게 판정하고 또한 주취상태를 양형의 유리한 요소에서 제외하는 단호한 조치가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독일이나 스위스 형법과 같이 음주로 인한 명정상태(酩酊狀態, 만취상태)에서의 범죄는 심신상실임에도 불구하고 만취자를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입법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음주로 인한 범죄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우리사회 구성원 전체의 인식변화가 필요함은 물론 국회 및 법집행 기관의 보다 단호한 대처가 요청된다.

서보학  suhbh@kh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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