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동수사에도 국민 분노 증폭…심신미약 감형 사례 다반사 "반대"

청와대 홈페이지 국민청원 및 제안 게시판에 17일 올라온 심신미약자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한 지지 서명이 45만건을 넘어섰다.

[민주신문=양희중 기자] 지난 14일 서울 강서구 PC방에서 발생한 아르바이트생 흉기 살인사건을 두고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심신미약이라는 이유로 감형이 돼선 안 된다는 청원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을 매우 뜨겁게 만들고 있다.

청원자는 “언제까지 우울증, 정신질환, 심신미약 이런 단어들로 처벌이 약해져야 합니까”라고 호소했고 청와대 답변 기준(20만명)을 넘어선 45만명이 참여할 정도로 여론이 들끊고 있다.   

서울 강서구 내발산동 한 PC방에서 아르바이트생 신씨(20)와 ‘테이블 정리가 잘 되지 않았다’ ‘불친절하다’며 지적을 하는 김씨(29)의 사이에서 실랑이가 벌어졌고 신고를 접수한 경찰이 출동해 상황이 일단락되는 듯 했다.

하지만 김씨는 이날 현장을 떠났다가 오전 8시13분경 흉기를 챙겨 돌아와 PC방이 있는 건물 에스컬레이터에서 신씨를 수차례 칼로 찔러 살해했다. 피의자 김씨는 10여년 간 우울증을 앓으며 약을 복용해왔다고 경찰에 진술한 사실이 알려져 여론의 공분을 사고 있다.

청원자는 “심신미약의 이유로 감형될 수 있기 때문에 나쁜 마음을 먹으면 우울증 약을 처방받고 함부로 범죄를 저지를 수도 있다. 지금보다 더 강력하게 처벌하면 안 되겠냐”고 주장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러한 청원자의 주장에 무리한 측면이 있다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피의자 김씨의 현재 상태가 아직 경찰 조사 초기 단계에 불과해 우울증 약을 복용한다 해서 법정에서 심신미약자로 인정할지도 아직은 알 수 없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여론이 이 사건에 대해 이토록 무리할 정도로 급하게 진행하는 이유는 과거 논란이 됐던 판례들과 사법부 불신 등으로 인해 흉악범죄 후 심신미약 주장은 솜방망이 처벌 혹은 감형이라는 전례들이 상당했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 사례로 ‘나영이 사건’의 가해자 조두순을 꼽을 수 있다. 조씨는 2008년 8세 아동을 잔인하고 처참하게 성폭행했으나 만취 상태였다는 이유로 심신미약이 인정돼 15년에서 12년으로 형이 줄었다.  

당시 무거운 죄질에 비하면 솜방망이 수준이라는 비난이 잇따랐고 주취감형을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한 국민청원은 21만명을 돌파하는 국민들의 지지를 얻기도 했다. 

또한 2017년 10월에는 마약을 복용한 환각 상태로 어머니와 이모를 살해한 20세 남성이 2심에서 심신미약 상태를 이유로 감형을 받기도 했다.

당시 대전고법 형사1부는 1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은 이 남성에 대해 존속살해·살인·공무집행방해 혐의를 무죄로 보고 마약류 관리에 대한 법률 위반 혐의만 유죄로 인정해 원심을 파기하고 징역 2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피고인의 주장에 따라 심신미약하고 관련 치료 등의 전력이 있다고 해서 법정에서 모두 받아들여지는 건 아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는 지난 4월 서울 방배초등학교에 몰래 들어가 10세 여자아이를 상대로 인질극을 벌인 혐의(인질강요미수)로 재판에 넘겨진 양씨(25)에 대해 지난달 선고공판에서 징역 4년을 내렸다. 이 재판부는 “범행 당시 환청으로 심신미약 상태였다고 주장하지만 구청에서 나름 직장생활을 했다. 조현병이 범행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이렇듯 심신미약을 주장하면 범인 쪽에 유리하게 반영되는 사례가 많이 알려지다 보니 죄질에 비해 형량이 약하다는 우려가 제기되면서 오히려 이번 PC방 사건은 ‘학습효과’가 작용해 피의자들의 빠져날 구멍을 미리 차단하는 것이 아니냐는 예측하고 있다.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자신의 상태가 안 좋음을 과장해서 책임을 모면하려는 사람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이런 불안이나 걱정은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심신미약자들의 감형 사유는 과학적이고 의학적인, 엄격한 진단을 토대로 해야 한다. (신뢰 회복을 위해서는) 전문가들의 합리적인 기준과 대응 방안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또한 일각에서는 구속된 피의자 김씨의 동생이 공범이라는 주장과 함께 동생을 공범으로 입건하지 않은 경찰의 대응이 잘못됐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경찰은 18일 “전체 폐쇄회로(CC)TV 화면과 목격자 진술 등을 종합적으로 살폈을 때 동생이 범행을 공모했거나 방조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어 알려진 것과는 달리 CCTV 영상에서 동생이 김씨의 범행을 도왔다고 보기 어려운 정황이 다수 발견된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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