췌장암 진단 수술 20일만에 사망, 남편 병원 잎서 1인 시위
아내는 신도환 전 의원 딸이자 최원석 동아 회장 첫 부인

미스코리아 출신 아내 신정현 씨를 잃은 남편 지영진씨는 아내의 사망 이후인 8월부터 서울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앞에서 1인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사진=서종열 기자

[민주신문=서종열 기자] "아직도 아내가 그립습니다."

지난 8월 초 폭염이 내려쬐던 한여름날 서울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중환자실에서 환자 한 명이 결국 숨을 거뒀다. 망자는 지난 1964년 제8회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에서 진에 선발됐던 고 신정현씨. 신씨는 췌장암 초기 진단을 받은 후 삼성서울병원에 7월 초 입원한 후 수술을 받았지만, 이후 단 한차례도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채 싸늘한 시신이 되어 병원을 나섰다. 

아내를 잃은 지영진 회장(기업인)은 이후 삼성서울병원 앞에서 아내의 사인을 규명해달라며 1인시위를 벌이고 있다. 팔순에 나이에 어엿한 기업까지 운영하고 있는 그가 생업을 팽개치고 거리로 나선 까닭은 무엇일까. 

췌장암 수술 직후 20일만에 사망

"아내는 언제나 건강했다. 고혈압 같은 흔한 노인질환조차 없었다. 그런데 국내 최고의 병원이라는 삼성서울병원에서 수술을 받은 후 20일만에 사망했다. 대체 아내가 왜 죽었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알려주지 않는다. 내가 생업을 버려두고 시위를 하는 것은 바로 아내의 죽음에 대한 진상규명이 원하기 때문이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 6월부터다. 건강했던 고 신정현씨는 지난 6월 대구 동산병원에서 췌장암 초기 진단을 받았다. 지 회장은 "당시 의사들이 암이 초기인 만큼 간단한 수술을 받으면 된다고 해서 삼성서울병원으로 왔다"고 말했다. 그렇게 신씨는 지난 7월초 삼성서울병원에 입원했다. 

문제는 수술 이후였다. 의사들이 말했던 그 간단한 수슬을 받은 후 신씨가 20일 동안 중환자실에서 의식불명인 채 지내다가 결국 숨을 거뒀기 때문이다. 지 회장은 "삼성서울병원 측은 수술과정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해주지 않았다"면서 "중환자실에 있는 동안에도 보호자에게 알리지 않고 현장에서 수술을 진행하다 내가 크게 성을 내기도 했다"고 말했다. 

삼성서울병원이 발부한 사망진단서에 따르면 신씨는 복강 내 출혈, 다발성 장기손상, 저혈량 쇼크 등으로 기재돼 있다. 간단한 수술이라고 들었던 것과 달리, 수술 직후 환자의 건강상태가 악화되면서 결국 사망에 이른 셈이다. 지 회장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다"며 눈물을 감췄다. 

지 회장은 신씨의 사망 이후 삼성서울병원의 묘한 태도도 지적했다. 그는 "죽은 아내를 다시 살려낼 수 없지만, 최소한 왜 죽었는지, 사망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고 싶은데, 삼성서울병원 측에서는 별다른 설명을 해주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그는 거리로 나섰다. 1톤 탑차에 아내의 아픈 모습을 인쇄해 삼성서울병원 입구에서 1인시위를 벌이고 있다. 지 회장은 "내가 시위에 나서자 병원측 관계자들이 보건복지부 민원을 제기하라며 대수롭지 않게 대하는 걸 보면 분통이 터진다"면서 "내가 원하는 건 진상규명이고 책임자가 이에 대한 설명을 해달라는 건데, 자꾸 원하는게 뭐냐고 묻기만 한다"고 한탄했다. 

이에 민주신문은 삼성서울병원에 정확한 입장과 설명을 요청했지만, 담당자와 연락이 닿지 않았다. 

1964년 미스코리아 진에 당선된 신정현씨 당시 모습(왼쪽). 남편인 지영진씨는 "아내는 췌장암 초기 진단을 받은 후 삼성서울병원에 입원해 7월 수술을 받은 후부터 사망때까지 중환자실에서 지내다 결국 사망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사진=민주신문DB

최원석 회장이 첫부인, 재혼으로 만나

"아내와 나는 80년대 미국에서 만났습니다. 둘다 이혼을 겪었고 슬하에 아이도 없어서 정말로 돈독했죠. 정말로 이렇게 어처구니 없이 죽을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지 회장은 아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래서 그는 차후 아내 이름의 장학재단을 고민하고 있기도 하다. 아내가 생전 큰 애착을 보였던 미스코리아협회에 기부를 하거나, 아내인 '신정현'씨의 이름을 딴 장학재단을 만들겠다는 게 지 회장의 소망이다. 

지 회장에 따르면 신씨의 원래 이름은 '신영태'였다. 해방 이후 1950년대 대구 국회의원을 지낸 고 신도환 의원이 바로 신씨의 아버지다. 신도환 의원은 1958년 제4대 민의원 선거를 시작으로 5선을 지냈다. 1988년에는 신한민주당을 창당해 총재를 지내기도 했다. 

신씨의 현재 이름인 '신정현'은 1964년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에 출전하면서 가명으로 사용했다가 2000년대 초반에 아예 개명했다. 

진에 당선된 신씨는 이후 1967년 최준문 동아건설 창업주의 장남 최영택씨와 결혼했다. 최영택씨는 바로 최원석 동아건설 전 회장이다. 최 전 회장의 현재 이름 역시 개명한 것이다. 

유력 정치인의 딸로 태어나 대한민국 최고의 아름다운 여성에 선정됐고, 재벌가의 며느리가 됐지만, 신씨의 결혼생활은 순탄치 못했다. 최 전 회장이 결혼 2년 만에 배우와 바람이 나면서 남편을 간통죄로 고소했기 때문이다. 당시 언론에 따르면 최 전 회장과 같이 고소됐던 배우 김혜정씨는 이 같은 사실을 부인했지만, 이듬해 최 전 회장의 아이를 출산하고 결국 결혼했다. 

지 회장은 "아내 말로는 당시 시아버지인 최준문 회장이 이혼만을 하지 말아달라고 말렸지만 결국 거절했다고 했다"면서 "이런 아픔을 갖은 채 미국에서 홀로 생활하다 나를 만났고 우리는 부부가 됐다"고 말했다. 

가슴에 상처를 가진 채 만나서였을까. 지 회장은 아직도 아내를 보내지 못하고 있다. 한줌 재로 화한 아내의 유골조차 여전히 집에 두고 있을 정도다. 오늘도 그는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앞에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아내의 죽음에 대해 책임자의 사과와 해명을 듣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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