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희 사퇴로 화해모드 속 불씨 여전

▲ 지난 23일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4.11총선 출마사퇴 의사를 밝히고 있는 이정희 진보통합당 공동대표.

야권연대가 급격히 흔들리며 무산위기를 맞았으나 통합진보당 이정희 공동대표의 전격사퇴로 벼랑 끝 위기를 모면했다. 여론조사 조작 의혹을 받고 있는 서울 관악을 이정희 진보통합당 공동대표와 경선 불복 논란을 불러온 경기 안산 단원갑 민주통합당 백혜련 후보가 동반사퇴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기 때문이다.

당초 통합진보당의 이정희 대표는 지난 17~18일 서울 관악을 야권단일화 여론조사 경선과정에서 자신의 보좌관 2명이 ‘나이를 속여 조사에 응하라’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당원들에게 대량발송한 것과 관련, 후보 사퇴 압박에 시달렸다. 이 대표는 사퇴를 공식 거부한 가운데 논란이 계속되자 광주지역 정치일정도 접고 급히 상경하기도 했다. 이 일로 야권연대가 급격히 흔들리며 무산되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증폭됐다.

이 대표가 대승적인 판단으로 전격 후보에서 사퇴함에 따라 이제 다시 관심은 파국으로 치닫던 야권 총선 연대가 정상화 될지로 모아지고 있다. 그러나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번 일로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의 지도부간 적잖은 갈등이 야기됐고, 완벽하게 봉합되지 않은 상황이어서 야권연대 무산위기는 여전한 남아 있는 것으로 관측하는 분위기다. 특히 통합진보당으로서는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이 대표의 정치적 중량감을 생각할 때 이 일로 적잖은 명분에 타격을 입게 됐다. 한치 양보 없이 실리추구에 올인하던 통합진보당이 향후 민주당과 보이지 않는 공방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이정희 대표가 경선과정의 의혹으로 후보사퇴라는 결정을 내리기까지 과정과 향후 야권연대의 미래를 전망해본다.

“경선의혹 분열직전까지 갔던 양당 한시름”
경선불복 도미노…野·野 감정싸움 자중지란

◇ 경선불복 파장…자중지란에 야권 흔들리기도
통합진보당 이정희 공동대표는 지난 23일 국회에서 가진 기자회견을 통해 서울 관악을 불출마 선언을 하면서 “부끄럽고 죄송하다”며 “갈등이 털어지기 바란다”고 말했다.
이에앞서 통합진보당 이정희 공동대표는 문자메시지 논란이 도화선이 돼 경선 결과 불복 사태가 확산되는 등 심각한 위기를 맞았다.

더욱이 이른바 통합진보당의 ‘빅4(이정희·심상정·노회찬·천호선)’ 지역의 경선에서 탈락했던 이들이 일제히 불법 경선 의혹을 제기하면서 쌍방 간의 대립은 극도로 격화됐었다. 이 같은 사태로 인해 정치권 전반이 야권연대가 파국으로 치닫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급속히 확산되기도 했다.
이번 사건의 발단이 된 계기는 지난 20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정희 대표 선거캠프의 ‘문자메시지를 통한 여론조사 조작’ 논란은 곧바로 통합진보당 후보들에게 자리를 내준 민주통합당 측 후보들의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민주당 김희철 의원(관악을)·고연호 서울시당 대변인(은평을)·박준 지역위원장(고양 덕양갑)·이동섭 지역위원장(노원병) 등은 21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이 대표의 후보 사퇴를 요구하고 나섰다.
이들은 각각 이 대표를 비롯해 통합진보당 천호선 대변인(은평을)·심상정 공동대표(고양 덕양갑)·노회찬 대변인(노원병) 등에게 지난 주말 경선에서 패배한 후보들이었다.

특히 이 대표가 전날 문자메시지 논란을 시인하고 경선상대인 김 의원 측이 원할 경우 재경선을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히자, 나머지 후보들도 각종 의혹을 제기하면서 통합진보당 후보들의 사퇴를 촉구했다.
박준 지역위원장의 경우 녹취록과 통화 녹음내용 등을 공개하면서 심상정 대표 측이 일당을 주고 선거원을 고용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고연호 서울시당 대변인도 ARS 면접 당시 ‘2번 고연호’를 누르면 끊기는 경우가 수십 건에 달했다는 주장을 들면서 의혹을 제기했다.

이동섭 지역위원장 역시 트위터에 올라온 글 등을 들어 노회찬 대변인 측에서 여론조사 기관 등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었다는 주장을 폈다. 이 같은 공세에 통합진보당 측도 팽팽히 맞섰으며 심 대표 측은 박 위원장의 녹취록을 조작이라고 주장하면서 명예훼손과 허위사실 유포로 고발하겠다는 입장까지 드러냈다. 천 대변인 측 역시 조직적인 흑색선전을 담은 문자메시지를 확보했다는 점을 들면서 유포자에 대한 검찰 고발 등을 검토하고 있음을 밝혔다. 노 대변인도 “무책임한 여론 호도”라며 민주당 측에서 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했다.

후보등록 마감을 불과 이틀 앞두고 벌어진 상황에 민주당과 통합진보당 지도부는 난감함을 숨기지 못했다. 특히 민주당의 경우 가뜩이나 공천 문제를 놓고 당 내부에서 갈등을 빚고 있는 가운데, 힘들게 이뤄놓은 야권연대마저도 위기에 맞닥뜨린 상황이라는 우려까지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경선에서 패한 당 소속 후보들의 상황과 야권연대 유지가 절실한 현 상황 사이에서 확실한 입장을 표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어서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야권연대의 중대한 위기”라며 이번 상황에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다.

그러나 물밑에서는 이 대표의 후보 사퇴 수준의 입장 정리를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 관계자는 “비공식적으로 (입장 정리를) 요구했다”며 “그 쪽에서도 알아들었을 것”이라고 말해 극적인 타협이 이뤄질 것임을 암시하기도 했다. 통합진보당 역시 원내 교섭단체 진출이라는 목표를 염두에 두고 있는 상황에서 벌어진 야권연대의 위기에 난감해 하면서도 이 대표의 희생을 내심 기대하는 분위기가 읽힌 것도 사실이다.

‘국민의 명령’ 구호 무색 …권력본색 드러나
통합당 이정희.민주당 백혜련 동반탈퇴 가닥

▲ 지난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 귀빈식당에서 재야 시민사회 원로들이 '희망2013승리2012원탁회의'를 개최 야권연대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당초 김희철·이정희, 모두 ‘관악을’ 출마강행
당초 22일까지만 해도 통합진보당 이정희 공동대표의 ‘문자메시지 논란’에 반발해 민주통합당을 탈당한 김희철 의원은 22일 “후보 등록은 확실히 할 것”이라며 무소속으로 출마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또 이 대표 역시 출마를 강행한다는 쪽으로 입장을 정리했었다.
김 의원은 언론발표를 통해 “22∼23일 중 후보등록을 할 것”이라며 “등록은 확실히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이미 어제 탈당계를 제출했다”며 “여론조작 사건에 대해 그렇게 사퇴하라고 했는데도 사퇴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출마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번 사퇴와 관련해 이미 ‘사퇴’가 아닌 ‘재경선 수용’ 의사를 밝힌 이 대표도 출마를 강행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음을 분명히 했다. 이 대표 측 관계자는 “별도의 기자회견 계획은 없다”며 사퇴의사를 밝힐 뜻이 없음을 시사하면서 “일단 오늘 등록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23일 갖기로 했던 전남 광주 지역 정치 일정을 급히 접고 상경하는 등 선거출마를 놓고 심하게 고심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그러나 유시민 공동대표는 이 대표의 거취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김 의원이 탈당했기 때문에 저희는 이 대표가 야권 단일후보로 출마해 선거를 할 수밖에 없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며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말해 혼란을 가중시켰다.

◇야권 원로그룹 이정희 사퇴 촉구 결정적 영향
결정적으로 이 대표의 사퇴를 이끈데는 야권 원로모임의 압력과 고위급 물밑 실무접촉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때 이정희 대표가 사퇴를 거부하자 야권 원로들과 민주당 내 일부 중진의원의 사퇴촉구가 이어졌다. 민주통합당의 김성순 민주당 서울시당위원장은 22일 이정희 대표의 사퇴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갖고 “관악을 경선 과정에서 위법 사실이 드러난 만큼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는 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범야권 시민사회단체 인사들의 모임인 ‘희망 2013ㆍ승리2012 원탁회의’도 이정희 대표의 사퇴를 촉구했다. 백낙청 교수, 박재승 변호사, 함세웅 신부 등 20여 명의 회의 참석자들은 “경선에서 규칙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해 책임 있는 조치가 필요하다. 국민들은 통합진보당이 야권연대에 대한 헌신과 희생을 보여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며 사실상 이 대표의 후보 사퇴를 요구했다.

그러나 끝까지 결과는 오리무중이었다. 유시민 통합진보당 공동대표는 “야권연대 파트너이자 상대당 수장에게는 최소한의 예의가 있어야 한다”며 “(이정희 대표의) 실수를 갖고 정치적 매장을 시도하면 민주당이 입을 피해도 클 것”이라면서 야권연대 파기를 시사하기도 했다.

양당 갈등격화 후유증…야권연대 무산 여전
통합당 대표 후보탈락에 민주당에 반격예상

◇민주당, 백해련 재공천 없었던 걸로
이 과정에서 한때 민주통합당이 경기 안산 단원갑 4·11총선 야권단일화 결과에 오류가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돼 패한 백혜련 후보를 재차 공천하는 강수를 둬 양당간 갈등을 부추기기도 했다. 이후 이정희 대표의 사퇴선언과 함께 백 후보의 후보 공천도 백지화 시키는 등 상황을 일단락했다.

민주당 김유정 대변인은 지난 22일 최고위원회의 결과를 전하며 “후보 단일화를 조건으로 안산 단원갑 지역에 백혜련 후보를 공천했다”고 밝혔다. 김 대변인은 “경선관리위원회가 양당간 합의를 이뤄내라고 요구했는데 결국 합의가 안 됐다”며 “그래서 단일화를 조건으로 재공천하게 됐다”고 정황을 설명했다.
앞서 지난 17~18일 안산단원갑 경선에서는 조성찬 후보가 백혜련 후보를 3표차로 누르고 야권단일후보가 됐다. 이에 백 전 검사가 표본설계 오류 의혹을 제기하며 재검을 요구하고 나섰고, 이후 양측 합의로 재검을 실시했지만 역시 3표 차이 결과가 나왔다.

여의도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번 야권의 분열상을 두고 대해 양당간 미숙한 후보단일화 과정이 낳은 당연한 결과로 지적하고 있다. 후보 선정과정에서 ‘국민의 명령’이라는 그럴싸한 구호를 빌었지만 결국 야권승리라는 대의명분 하에 권력투쟁의 본질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양당간 이권싸움을 벌이며 누구 하나 희생하지 않는 상황에서 연대파기는 시간문제라는 지적이다. 4·11총선을 보름여 앞둔 양당이 절체절명의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고 총선에서 어떤 결과를 받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완재 기자 purye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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