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보학 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1999년 전북 완주군에서 발생했던 ‘삼례 나라슈퍼 사건’을 기억하는가. 3인조 강도가 슈퍼에 침입해 범행 도중 70대 주인을 사망케 한 사건이었다. 당시 경찰은 인근에 살던 청년 3명을 범인으로 지목해 체포하였다. 3명 중 2명은 지적장애가 있는 청소년이었다. 당시 경찰의 조사가 어떻게 진행되었을지는 머릿속에 대강 그림이 그려진다. 

그때 당시만 해도 매우 강압적이었던 경찰의 조사관행, 자신을 변명할 지적능력이나 사회경험이 부족했던 청년들, 사설변호사를 선임해 제대로 된 법률조력을 받을 수 있도록 해줄 수 없었던 가난한 가정, 이러한 사정들이 겹쳐 결국 3명의 청년들은 하지도 않은 범죄를 자백했고 검찰로 구속 송치되었다.

평소 인권보장기관임을 자처하는 검찰(전주 지검) 역시 경찰의 수사과정에서 폭언·폭행이 있었고 청년들의 자백에도 허점이 많다는 여러 정황들이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유죄로 인정해 기소하였다. 불쌍한 청년들의 인권과 실체적 진실에 무관심하기는 심판자인 법원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재판 결과는 유죄였다. 대법원에서 최종 징역 3년-5년 반까지의 형이 확정된 청년들은 억울한 옥살이를 해야 했다.

최초 이들의 유죄에 대해 의심을 품었던 사람들은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피해자의 유가족들이었다. 현장검증에 참여했던 유가족들은 범행상황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경찰관의 지시에 맞춰 꼭두각시 마냥 우왕좌왕 억지스러운 몸짓을 보이던 청년들을 지켜보면서 과연 저들이 진범인지 의문을 품게 되었다. 연출자의 지시대로 움직이는 재연배우들에 다름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비전문가인 유가족들이 알아챌 수 있었던 이런 부자연스러운 상황들을 당시 수사를 지휘했던 경찰간부나 검사들이 눈치 채지 못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다. 어리숙한 청년들을 희생양 삼아 강력사건을 빨리 해결한 공을 세우고 여론을 잠재우고자 했던 관련자들의 사악한 공모가 배후에 있었음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더 극적인 일은 최초 사건 발생 후 9개월 뒤에 발생했다. 부산에서 3인조 진범이 잡힌 것이다. 이들은 해당 사건의 범인임을 스스로 자백하였다. 그런데 이들을 넘겨받은 전주지검은 예상치 않게 진범들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전주지검은 애초 자신들이 범인으로 지목했던 청년 3명에 대한 부실한 수사(지휘)와 잘못된 기소에 대한 실책이 드러날까 염려했던 것이다.

또한 당시 부산지검장은 이 사건을 최초 수사할 당시 전주지검장으로 재직했던 사람이었다. 이에 결국 검찰은 자신들의 잘못을 덮고자 억울한 청년들을 희생양 삼고 말았다. 저지르지도 않은 범죄 때문에 억울한 옥살이를 해야했던 청년 3명은 재심변호사로 유명한 박준영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재심을 청구하였고 지난 2016년, 사건이 발생한 지 17년 만에 법원으로부터 무죄를 선고받았다. 재심 재판에는 실제 범인 중 한 사람이 출석해 자신이 진범이었음을 증언하기도 했다. 억울한 옥살이를 한 청년들의 한이 풀리기까지는 16년이란 긴 세월이 걸렸다. 그러나 경찰·검찰의 잘못으로 망가진 이들의 삶은 결코 본래대로 원상회복 되지는 않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2017년 말 검찰에 ‘검찰과거사위원회’가 설치되었다. 그동안 위원회는 예비조사를 거쳐 과거 대표적으로 검찰이 잘못 처리하였다는 의혹을 받는 총 15건의 사건에 대해 진상조사를 권고하였다. ‘삼례 나라슈퍼 사건’도 그 중의 한 건이다. 이 사건과 관련해 과거사위원회는 검찰에게 ‘수사과정에서 피의자들에 대한 폭행 등 수사기관의 가혹행위가 있었는지 여부’, ‘검찰이 경찰의 가혹행위를 인지할 수 있었는지 여부’, ‘수사 당시 피의자들이 진범이 아니라는 합리적 의심을 할 수 있었던 증거들이 있었는지 여부' 등을 조사하라고 권고하였다.

그런데 지난 8월 27일 검찰진상조사단은 과거사위원회에 매우 납득할 수 없는 조사결과를 보고하였다. 조사결과 “검사가 고의로 부실수사를 했거나 사건을 은폐한 것이 아니고 따라서 검사의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당시 부산에서 잡힌 진범들이 스스로 범인임을 자백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무혐의 처분하고 대신 엉뚱한 청년들을 범인으로 몰고 간 경위에 대해 합리적인 설명을 내 놓지 않은 채 당시 수사검사와 지검장에게 면죄부를 주는 조사결과를 내놓은 것이다.

언론의 취재결과 검찰진상조사단이 사건관련자들을 조사하면서 핵심적인 질문은 외면한 채 엉뚱한 질문을 하는 등 전혀 진실을 밝히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는 정황들도 여럿 드러났다. ‘범인 조작’이라는 중대한 범죄에 대해 진상조사단이 눈을 감은 것이다. 전형적인 자기식구 감싸기 행태였다. 이에 과거사위원회는 보강 조사를 지시하였다.

현재 검찰은 과거사위원회에서 진상조사를 권고한 다른 14건에 대해서도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서울시 공무원 유우성씨 간첩조작 사건, 김학의 전 법무차관 별장 성접대·성폭행사건, 고 김근태 의원 고문은폐 사건, 부산 형제복지원 인권유린 사건, 고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 사건, 약촌오거리 사건, MBC PD수첩 사건, 청와대 및 국무총리실 민간인 불법사찰의혹 사건, 신한금융비리 사건 등이다.

국민적 의혹이 제대로 풀리지 않은, 많은 피해자들의 한이 서린 그리고 검찰의 중대한 잘못이 게재된 사건들이다. 벌써부터 이 사건들의 진상조사 결과도 ‘삼례 나라슈퍼 사건’과 같은 것이 될까 염려된다. 이 사건들에서 제대로 된 진상이 밝혀지지 않고서는 국민적 의혹은 그대로 남아 국가에 대한 불신을 키우게 되고 피해자들의 신원(伸冤)도 제대로 이루어 질 수 없다. 또한 재발방지를 위해 고장난 시스템을 개혁하는 것도 어렵게 된다.

남들의 잘못에 대해서는 가혹하고 자신들의 잘못에 대해서는 한 없이 관대한 검찰. 이렇게 교만하고 이중적인 행태를 보이는 한 검찰은 결코 국민들의 신뢰를 받을 수 없다. 그리고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하는 국가기관은 국민이 주인이 나라에서 더 이상 존재하기 어렵다. 자신들 눈의 들보에는 눈감는 검찰이 무슨 자격으로 남의 잘못을 단죄할 수 있단 말인가? 무슨 자격으로 재판거래 의혹을 받는 법원을 조사하고 그들의 행위를 비난할 수 있단 말인가? 이미 검찰은 촛불정국 때 국민들로부터 국정농단 사태의 공범으로 탄핵을 받았고 현재 철저한 개혁을 요구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검찰이 다시금 자신들의 잘못을 덮어 버린다면 그나마 검찰에 주어진 마지막 남은 갱생의 기회마저 사라질 것이다. 문무일 총장과 검사들은 반성 없는 검찰에는 더 이상 미래가 없음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현재 진행 중인 15건의 사건에 대한 철저한 진상조사와 함께 검찰권을 잘못 행사했거나 남용하여 국민들의 인권을 침해했던 책임자에 대해 엄정한 책임을 물을 것을 다시 촉구한다.

한마디 더 첨언한다. 필자는 지난 2017년 10월 23일 자 민주신문 칼럼(제목 : ‘사법분야 적폐청산 시급, 법왜곡죄 도입해야)에서 사법분야의 적폐청산이 시급하며 아울러 판사·검사들의 볍왜곡행위를 처벌하기 위한 법왜곡죄의 도입이 필요함을 역설하였다. 이번 사건이 왜 법왜곡죄의 도입이 필요한지를 웅변하는 사건이라 할 수 있겠다. 국회의 조속한 입법을 촉구한다. 아울러 이번 정기국회에서 검찰을 개혁하기 위한 수사·기소분리법안과 공수처설치법안이 반드시 통과되기를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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