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옥구 
한자한글교육문화콘텐츠협동조합 이사장
전 동덕여대 교수

사람들의 지혜는 천차만별이며 지혜가 더 높은 사람일수록 본질을 최적화하는 방법으로 작명(作名)을 한다. 지혜로운 이가 작명을 할 때는 한없이 깊은 본질로부터 인연의 고리를 찾아내 현상을 적절히 표현하기 때문에 역으로 그 이름을 통하여 본질 즉 개념을 찾아내는 일이 가능하다.

이런 생각으로 사람이 일생동안 늘 염두에 두고 살 수 밖에 없는 ‘죄’와 ‘벌’에 대해서 돌아보려한다.

사람은 일생을 죄의식 속에서 살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대부분 사람들이 크고 작은 많은 죄의식을 가지고 있다. 작게는 자신에 대해서, 가족에 대해서, 이웃에 대해서, 친척에 대해서 크게는 국가와 민족에 대해서, 인류에 대해서 그리고 마침내 하늘에 대해서 숱한 죄의식을 가지고 괴로워하며 회개하고 반성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이 상황은 양심이 작용하는 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죄의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또 ‘벌’을 감수해야 한다. 그 벌이 외부로부터이든 자기내면으로부터이든 적어도 양심이 살아 있는 한 감수하며 살 수 밖에 없다. 어쩌면 ‘죄와 벌’은 우리가 평생 짊어지고 살아가야할 짐과 같은 것이어서 우리의 운명을 좌우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인생에서 중차대한 이 ‘죄’와 ‘벌’은 어떻게 그런 이름을 갖게 되었으며 맨 처음 ‘죄’라고 불렀던 그것은 무엇이었으며 오늘 우리가 느끼는 죄의식과는 차이가 없는 것일까? 맨처음 ‘벌’이라고 불렀던 그것은 무엇이었으며 오늘 우리가 인식하는 ‘벌’과는 어떤 차이가 없는 것일까? 罪(허물 죄)와 ‘罰(죄 벌)의 옛 글자들을 통해서 답을 찾는 것이 가능하다.

‘罪’는 ‘罒(그물 망)’과 ‘非(아닐 비)’로 되어 있으며 ‘罒’은 ‘덧씌워짐’을 의미하고 ‘非’는 ‘두 손이 서로 등을 진 모양’으로, 직역하면 ‘하나되지 못하고 나뉘어져 있다’는 의미를 나타낸다. 여기서 ‘하나 되지 못함’이란 긍극적으로 ‘하늘과 하나되지 못함’의 의미다. 하늘은 온통 하나의 개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罪’가 말하는 ‘죄’는 ‘하늘과 하나되지 못함’을 의미한다.

오늘날 우리가 갖는 온갖 죄의식의 원천에는 ‘하늘’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며 그 하늘과 일치하지 않거나 조화롭지 못하면 그것을 곧 죄라고 불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죄’의 우리말 의미는 ‘옥죄다’의 의미다. ‘죄’는 우리 자유를, 생명을 옥죄는 것이어서 ‘죄’라고 한다. 이처럼 ‘죄’에는 자체로 ‘벌’이 따른다. 죄를 범하는 순간 우리가 알아채든 그렇지못하든 이미 우리의 생명은 ‘조이는’ 고통에 놓이게 된다. 즉 벌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벌’은 죄로 인해 ‘벌이들인 것’이다. 그래서 ‘벌’이다. ‘罰’은 벌의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그 내용 가운데 ‘刂’는 ‘칼 도’인데 칼은 자르고 나누고 벌린다. 칼로 자르고 나누고 벌리는 데에는 육체적인 고통이 따른다. 이런 내용을 전제로 ‘벌’은 ‘벌리는 것’이다. 하나에서 나누어 벌리는 것이다. 뼈와 살은 한 몸처럼 서로 붙어 있어야 하는데 사이를 벌려 갈라놓는 것이 ‘벌’이다. 정상을 비정상으로 만드는 것이 ‘벌’이다.

이것이 ‘罪’와 ‘罰’이 말해주는 왜 ‘죄’라 부르고 왜 ‘벌’이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이다.

지금이야 죄의 정의가 법으로 정해져 있어 이 법에 따르면 되는 것으로 여겨지지만 그러나 우리에겐 자기만의 기준인 ‘양심(良心)’이 있어 이 거울에 비추기만 하면 금방 죄의 여부를 인지하도록 되어 있다. 양심은 하늘의 마음이기 때문이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민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