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옥구
한자한글교육문화콘텐츠협동조합 이사장
전 동덕여대 교수

복날이 되니 올해도 어김없이 삼계탕 집 문전에 늘어선 줄이 보이고 뉴스 또한 이것을 놓치지 않고 보도합니다.

유례 없는 더위가 또 유례가 없을 만큼 길게 지속되다보니 사람들이 지치고 그러다보니 복날을 핑계로 삼계탕집, 보양탕 집에 몰려드는 사람들을 탓할 수도 없습니다. 또 평소에도 얼마든지 원하는대로 먹을 수 있는 식품이므로 닭고기, 개고기 먹는 것을 복날 탓만 할 수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날을 핑계삼아 식용으로 개, 닭을 먹는 것을 합리화하는 분들이 많은데다가 복날이 초복, 중복, 말복으로 3회나 있으니 견공(犬公), 계공(鷄公)의 비애는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과연 복날 개고기, 닭고기 먹는 풍습은 언제부터이며 근거는 있는 것일까요? 복날의 ‘伏’자에 ‘犬(개 견)’이 들어 있으므로 예부터 의례히 그러했을 것으로 짐작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런데 정말 ‘伏’날은 ‘개’와 관련이 있기는 한 것일까요? ‘伏’자를 보기로 하겠습니다.

‘伏’자는 ‘亻’과 ‘犬’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亻(사람 인)’은 ‘닮았다’는 속뜻이 있고 ‘犬(개 견)’은 ‘붙어있다’, ‘따라다니다’라는 속뜻이 있습니다. 따라서 ‘伏(엎드릴 복)’의 ‘엎드리다’라는 말은 마치 개가 사람에게 순종하여 따라다니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개’의 성품을 빗대어 절기를 설명한 것이지 ‘개’를 직접 언급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생각해봅시다. 여름철 삼복(三伏)이 어떤 날입니까? 연중 무더위가 가장 극성을 부리는 때입니다. 그럼 더위는 어디로부터 오는 것일까요? 바로 ‘해’입니다.

우리나라에 춘하추동 4계절이 있는 것은 해가 지구를 비추는 각도와 관계가 있습니다. 해가 접근한 정도와 어떤 각도로 비추는 가에 따라 우리나라에 4계절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즉 춘하추동은 해와 관계있는 것이며, 년중 해가 지구에 가장 가깝게 접근하는 때가 바로 삼복(三伏)인 것으로, 개(犬)가 사람의 곁을 졸졸 따라다니듯(亻) 해가 지구의 곁을 가장 가까이 접근했다고 해서 ‘伏’을 쓰는 것입니다.

‘伏’과 관련해서는 또 ‘복사(伏祀)’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고대 중국의 진(秦)나라 때에는 ‘복사(伏祀)’라 부르는 복날 태양에게 제사를 지내는 사당이 있었습니다. 이 사당에는 복(伏)날 장대 높이 개고기를 메달아 놓는 풍습이 있었는데, 이 때 장대에 높이 메달아 놓는 ‘개’고기가 바로 ‘해(太陽)’의 상징이었습니다.

‘개’와 ‘해’의 관계는 임금은 해, 왕자는 개아지라고 불렀던 고구리 때의 호칭이나 임금을 개구리에 비유한 금와왕(金蛙王)의 설화에서 유추해볼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 자음의 ‘ㄱ’과 ‘ㅎ’의 관계이기도 합니다.

‘ㅎ’은 하늘을 의미하고 하늘이 땅으로 내려오면 ‘ㄱ’으로 나타냅니다. 이 관계는 바닷가에 있는 ‘개펄’에서 다시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바다는 海(해)입니다. 바다(해)에서 육지로 내려온 곳이 갯벌입니다. 갯벌은 바다에만 있다는 것도 ‘ㅎ’과 ‘ㄱ’의 긴밀한 관계를 짐작케합니다.

이처럼 ‘ㅎ’과 ‘ㄱ’은 서로 특별한 관계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개’라는 짐승의 이름도 다시 보아야 합니다. ‘개’는 왜 ‘개’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이며 ‘개’의 뜻은 무엇일까요? 또 ‘개’는 물건을 세는 단위인 ‘몇 개’의 개와는 어떤 관계일까요? 복날 개고기 대신 먹는 삼계탕은 또 어떤 연유일까요?

‘개’를 ‘개’라고 부르는 것은 하늘의 ‘해’같은 존재라는 뜻입니다. ‘돼지’를 나타내는 한자에 ‘亥(돼지 해)’가 있는 것을 보면 이 동물들의 이름을 지어부른 분들은 짐승조차도 하늘의 ‘해’와 같은 존재로 여겼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짐승을 이렇게 불렀던 것처럼 사람도 ‘해’에 비유해서 불렀습니다. ‘아내’는 ‘안 해’ 즉 집에 있는 해라는 뜻이며 ‘아이’는 ‘아해’ 즉 ‘어린 해’라는 뜻의 우리말인 것입니다.

닭을 한자로는 ‘계(鷄)’라 부르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닭이 올라서는 걸침목을 ‘횃대’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햇대’를 의미합니다. 횃대에 오르면 하늘인 것이고 땅으로 내려오면 ‘ㅎ→ㄱ’으로 변해 ‘계(鷄)’라고 불렀던 것이니 닭도 ‘해’를 나타내는 방법 중의 하나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온통 정리된 것은 없고 그저 그러니 그냥 그러하다는 식으로 넘어갈 문제가 아닙니다. 이제라도 실체를 분명하게 알아서 잘못된 폐습은 바로잡아야 합니다.

복(伏)날은 년 중 태양이 지구에 가장 가까이 접근하여 더위가 극에 달하는 것을 나타낼 뿐, 일단 개나 닭으로 보신(補身) 하는 날과는 무관합니다. 더구나 요즈음은 애완견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어 개를 식용으로 먹는 것을 혐오하는 분위기가 팽배하므로 대놓고 개고기를 먹거나 의례히 삼계탕을 먹어야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도 금물입니다.

우리가 문명화가 되어간다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이런 폐단을 하나씩 바로잡아가는 것에서 드러난다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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