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바다에서의 도전과 성공(27)

<‘황금가스전’을 시작하며>

황금의 나라 미얀마에서 미얀마어로 ‘황금’이라는 뜻을 가진 ‘쉐(Shwe)’가스전은 국내 석유개발업계가 지난 수십 년간 해외에서 발견한 유전·가스전 중 최대 규모다. 또한 쉐 가스전은 프로젝트 선정에서부터 개발·생산까지의 모든 과정을 한국 자체의 기술력과 인력으로 주도해 온 프로젝트다.

미얀마 전역의 자료를 검토하여 광구를 선정하는 작업에서부터 탐사작업과 시추작업은 물론이고 파트너 영입, 가스전 발견 후의 평가작업, 그 이후에 진행된 가스판매를 위한 협상과 계약, 가스전 개발계획과 시공사 선정, 개발작업 감독, 생산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외국 회사의 도움 없이 자체적으로 실시하였다는 점에서 국내 석유개발업계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할 수 있다.

대우인터내셔널이 가스를 발견한 미얀마 서부 해상 지역은 1970년대 미국과 프랑스, 일본 회사들이 탐사를 하여 유전이나 가스전 발견에 실패하고 철수한 후 20년 이상 어느 외국 회사도 관심을 두지 않던 버려진 지역이었다. 외국의 유수한 회사들이 탐사에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지역의 자료를 분석한 끝에 가스 발견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판단하였다. 과거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탐사개념을 도입하고 이를 근거로 인공지진파 탐사와 시추를 실시하여 세계적 규모의 대규모 가스전을 발견하게 되었다.

탐사작업을 하는 동안 여러 가지 난관에도 부닥쳤다. 사업에 공동으로 참여하던 인도 파트너들이 더 이상 가능성이 없다고 철수한 상황에서도 단독위험부담으로 측면시추를 강행하여 가스전 발견에 성공하였던 일도 그 중의 하나다. 탐사가 진행되는 동안의 일련의 긴장된 순간들 뿐만아니라, 그 이후 진행된 가스판매를 둘러싼 치열한 협상과정, 막대한 투자비가 들어간 가스전 개발을 위한 준비작업과 개발공사 중 일어난 여러 가지 어려움 등 실로 긴박한 과정을 거쳐 왔다.

이러한 소중한 경험들을 독자들과 나누어, 석유자원에 대한 중요성과 개발의 필요성에 공감하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미얀마 가스전에 대한 글을 쓰게 되었다. 석유개발에 대한 일반인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석유개발에 관한 지식도 간간히 소개하였다. 그 동안 미얀마 가스전 사업을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 온 모든 동료들과 아낌없이 지원해 주신 여러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또한 자료와 사진을 제공하고 원고를 검토해 주고 그래픽을 도와주는 등 여러 가지 방법으로 도움을 주신 많은 분들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원고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 특별하고 마움을 주신 분들은 실명과 당시의 직급을 언급하였는데, 사전에 양해를 구하지 않았더라도 너그러이 이해해 주시리라 믿는다.

대우인터내셔널의 미얀마 해상 플랫폼. 사진=뉴시스

CNPC와의 치열한 가스판매 협상

미얀마 정부의 주선으로 중국을 대표해 가스를 구입하게 될 중국 국영석유회사 CNPC와의 가스판매 협상이 시작됐다. 중국에 가스를 판매하기로 결정했다는 미얀마 정부의 통보를 받고 나서 얼마 후였다.

우리는 이 협상이 미얀마 가스전의 성공을 좌우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갈림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협상에 모든 역량을 집중했다. 영어와 중국어로 진행된 협상에서 공식적인 통역이 있었지만, 우리는 중국어에 능통한 직원을 협상팀에 합류시켜 통역에 오류가 있는지 철저히 확인했으며 중국 측에서 나누는 비공식적인 대화까지 내용을 파악했다.

협상은 시작부터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CNPC는 우리에게 만족할 만한 가격을 제시할 생각은 하지 않고, 이 프로젝트가 미얀마와 중국 양국 정부 간의 합의에 의해 진행되는 프로젝트라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하지만 우리의 입장은 “양국 정부의 합의 자체는 인정하겠지만 가격이 만족스럽지 못할 경우, 가스를 CNPC에 결코 팔 수 없습니다”라고 단호했다.

가스 가격뿐만 아니라 또 다른 중요한 이슈가 있었다. 일반적으로 가스를 수출할 경우 인도(引渡)지점이 국경이므로, 미얀마 내에서의 가스관은 가스전 운영권자인 대우가 건설하는 것이 당연했다. 그러나 이번의 경우 중국 측이 람리섬에서 중국 국경까지 송유관을 건설하게 돼 있었으므로 가스관 건설은 송유관 건설과 함께 당연히 CNPC가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우리 입장에서는 가스관 건설을 통해 발생하는 가스 운송료 수입도 만만치 않기 때문에 육상가스관에 대한 우리의 권리를 강하게 주장했다.

“원래는 우리 컨소시엄이 중국 국경까지 가스관을 건설해야 하는데, CNPC가 송유관과 가스관을 같이 건설하기로 했으니 그것은 우리가 양보하겠습니다. 그렇지만 우리에게 가스 운송료에 해당하는 수익을 보장해줘야 합니다.”

“가스관은 CNPC가 건설하고 운영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가스관 운송료 수익은 투자비를 회수하는 선에서 그쳐야지 이익을 기대해서는 안됩니다.”

“우리 컨소시엄이 CNPC가 건설할 육상가스관의 일부 지분을 가져야 하며 적정한 수익도 보장돼야 합니다.”

우리는 중국 정부가 미얀마 정부와 합의해 가스관을 건설하고 우리 가스를 구매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에 국영 기업인 CNPC가 그 합의를 깰 수 없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때문에 우리 컨소시엄은 강경한 입장을 고수했다. 하지만 CNPC도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양측의 입장 차가 크다 보니 협상을 하다가 서로 흥분해 얼굴을 붉히는 일이 수없이 발생했다. 협상 도중 회의장을 박차고 나가 협상이 결렬된 적도 몇 차례 있었다.

우선 서로 예상하는 가스가격에 큰 차이가 있었고, 기본적으로 중국은 정부 대 정부 프로젝트로 보는 데 반해, 우리는 민간 기업이 추진하는 상업적 프로젝트로 확실한 수익이 보장돼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협상이 순조롭지 못했다.

구매하는 쪽인 중국과 판매하는 쪽인 우리 컨소시엄의 한국, 인도, 미얀마 등 모두 4개국이 관여한 협상이다 보니 국가 간의 문화적 차이는 물론 서로 다른 업무 추진 방식이나 협상 태도도 보이지 않는 장벽이었다. 컨소시엄의 각 구성원들이 각자의 시각으로 가스판매에 대한 의견을 펼치고, 미얀마 정부도 수시로 의견을 개진하다 보니 컨소시엄 내의 의견을 조율하기도 쉽지 않았다.

2008년 12월 실시한 가스판매계약 서명식. 미얀마 에너지부 장관과 가스 공그자 대표인 대우인터내셔널CEO, 구매자인 CUNOC(CNPC 자회사)의 CEO 및 참여사 대표들이 자리하고 있다. 사진=저자 제공

중국과의 가스 판매계약서에 서명하다

양쪽의 입장이 평행선을 달려 도저히 합의를 볼 수 있을 것 같지 않았으나, 1년이 지나도록 협상에 협상을 거듭하다 보니 조금씩 합의점을 찾아 나갈 수 있었다. 협상은 우선 생산지점에서의 가스가격을 결정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밀고 당기는 협상 끝에 생산지점에서의 가스가격(wellhead price)이 합의됐으며, 생산지점에서 가스 인도지점인 람리섬까지의 해상가스관 운송료에 합의하게 되면서 결국 인도지점에서 CNPC가 구입하는 가스가격이 결정됐다.

가스가격은 고정가격이 아니고 유가와 물가지수에 연동됐다. 가스가격이 결정된 후에는 람리섬에서 중국 국경까지의 육상가스관 운송료 수입을 어떻게 보상받을 것인지가 다음 과제였다. 육상가스관 운송료 수입은 육상가스관 건설과 운영을 위해 설립할 합작회사에 어떠한 수준의 수익률을 보장하는가에 달려 있었다.

우선 우리 컨소시엄은 육상가스관을 위한 합작회사에 49.1%의 지분을 가지고 참여하기로 했다. CNPC는 대주주로서 지분 50.9%를 가지게 됐다. 합작회사의 적정 수익률에 대해 실로 오랫동안 난항을 겪으며 협상을 계속하다가 결국 수익률에도 합의를 하게 됐다. 가스가격과 육상가스관 합작회사 수익률에 합의하면서, 오랜 협상 끝에 드디어 중국과의 가스판매에 대한 최종합의를 보게 된 것이다.

우리 쪽의 양보도 있었고 중국 쪽도 과감한 결단을 내려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이에 따라 2008년 6월 양해각서를 체결했고 그해 12월 미얀마 정부와 중국 정부, 그리고 4개사 컨소시엄 대표들이 모두 모여 가스 판매계약서에 서명하게 됐다. 협상이 시작된 지 1년 반을 훨씬 넘긴 후였다.

LNG방식에 의한 개발이 가스관을 통해 수출하는 것보다 기간이 1년 정도 더 걸린다는 이유로 미얀마 정부에 의해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나, 중국과의 가스관을 통한 가스판매 협상에 장시간이 소요돼 결과적으로 LNG 방식에 의한 개발 기간보다 오히려 더 길어지고 말았다.

미얀마 쉐 가스전 산출시험 장면. 사진=저자 제공

에너지 확보를 위한 중국의 과감한 투자

협상과정에서 무엇보다도 인상적으로 느낀 점이 있었다. 중국 정부가 에너지 확보를 위해서라면 그야말로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그런 점이 우리 정부와 비교가 되는 부분이기도했다.

중국 남서부 지역으로 원유 공급을 하기 위해서는 우선 중동으로부터 인도양과 인도차이나반도 남쪽 해상 말라카해협을 거쳐 중국 동부까지 장거리 운송을 한 다음, 다시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내륙으로 수송을 해야 한다.

하지만 미얀마 서부 해상에서 송유관을 통해 중국 남서부 지역으로 수송할 경우, 현재의 이동 거리를 3000킬로미터 가량 줄일 수 있어 운송료를 대폭 절감할 수 있는 효과가 있다.

또한 안보 차원에서도 말라카 해협은 안전상의 위협이 항상 도사리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만일의 경우 말라카 해협이 봉쇄될 때는 중국의 에너지 도입에 큰 차질이 생겨 국가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는 위기 상황도 발생할 수 있었다.

이에 중국 정부로서는 미얀마 송유관 건설이 꼭 필요한 과업이었다. 쉽지 않을 것으로 보였던 우리와의 가스판매 협상에 중국이 합의를 하게 된 이유로, 송유관과 가스관을 동시에 건설해 투자비를 절감하려는 셈법이 있었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에너지 확보를 위해 국가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중국 정부로서는 미얀마에서 생산되는 가스를 25년 이상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 큰 비중을 두고 과감한 결정을 내렸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중국 정부와 중국 국영 기업체들의 에너지와 자원에 대한 공격적인 투자는 상상을 초월한다. 십수년 전 남미의 어느 유전 입찰에서는 2위와 3위의 차이는 불과 수백만 달러인데 반해, 1위였던 중국 국영석유회사는 2위 회사보다 수천만 달러나 더 높은 가격을 제시해 낙찰을 받은 적이 있었다.

입찰에서 무조건 이겨야겠다는 적극적인 태도의 결과였다. 그 당시 석유업계에서는 중국회사의 무모한 결정을 비웃었다. 그러나 20달러대였던 입찰 당시의 유가가 상당 기간 100달러대에 머물렀으니 중국이 그 유전으로부터 얼마나 엄청난 수익을 올렸을지 짐작할 수 있다.

비록 최근에는 급격한 유가 하락으로 석유개발업계가 심각한 타격을 받고 있지만, 석유자원에 대한 투자는 결코 한눈을 팔 수 없는 일이다. 에너지 자원의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석유자원이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고갈되고 있다. 과감한 투자를 마다하지 않는 중국 정부와 기업의 결정이 미래를 예측한 올바른 판단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그 때문이다.

<다음호에 계속>

양수영 한국석유공사 사장

부산중·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지구과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이학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미국 Texas A&M 대학교에서 지구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선임연구원과 한국석유공사 기술실 지구물리팀장을 거쳐 1996년 대우인터내셔널로 옮겼고, 에너지개발팀장, 미얀마E&P사무소장, 에너지자원실장, 자원개발본부장(부사장)으로 근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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