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관가야 멸망 후 신라와의 정치적 이해관계 및 생활상 알 수 있어

경남 김해시 대성동박물관은 가야시대 유적지인 양동산성에서 고대 상인들이 곡물을 운송하면서 부착한 길이 26.8㎝, 너비 2.5㎝, 두께 0.7㎝의 짐꼬리표 목간과 생활 목기 등을 다량 발굴했다고 3일 발표했다.

[민주신문=양희중 기자] 경남 김해시 주촌면 양동리에 소재해 있는 가야시대 유적지인 양동산성 집수지(集水池)에서 곡물을 운송한 고대 상인들이 부착한 짐꼬리표 목간(木簡) 3점과 생활 목기, 화살촉 등 신라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유물이 다량 발굴됐다.

대성동고분박물관은 지난 4월 12일부터 7월 2일까지 자체 발굴조사를 통해 경남도 기념물 제91호 양동산성의 축조시기에 대한 규명과 물을 확보하기 위해 만든 집수지 구조에 대한 조사를 마치고 결과를 자문회의를 거쳐 3일 발표했다.

발굴조사 결과 집수지는 영남지역 최대 규모로 길이 15.5m, 너비 22.8 m, 최대 깊이 3.4m인 평면 직사각형 집수지로 확인됐으며 6~7세기 가야에서 신라로 넘어가는 시기에 축조한 것으로 판명됐다.

또한 집수지에서는 상인들이 곡물 등을 옮기면서 꾸러미에 부착한 짐꼬리표 목간 3점과 바가지, 국자, 소쿠리 등 일상생활용 토기편들이 다량으로 조사발굴됐고 보존상태가 매우 좋은 철화살촉 2점과 철도끼 1점 등이 발굴됐다.

특히 글씨가 남아 있는 목간이 출토돼 큰 관심을 끌었는데 길이 26.8㎝, 너비 2.5㎝, 두께 0.7㎝로 곡물 운송 꾸러미에 부착된 짐꼬리표로 확인됐다. 목간에 적혀 있는 글자의 기재방식이 ‘마을이름+(사람이름)+곡물이름’의 순으로 적은 함안 성산산성 부엽층에서 출토된 목간의 기재방식과 매우 흡사했다.

가야시대 유적지인 양동산성 집수지 발굴현장 전경.

또한 성산산성 목간에 적혀 있는 ‘율촌(栗村)’이란 마을이름이 양동산성 목간에도 적혀 있었는데 율촌이라 이름의 지역은 아직 특정되지 않고 있다. 이에 김해시는 두 지역 목간을 비교 연구하면 당시 신라와 김해와의 관계 등을 도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목간의 정밀한 판독을 위해 추가로 적외선 촬영 등을 시행해 학계와의 공동연구로 양동산성 목간의 정확한 성격을 규명하기로 결정했다.

한편 양동산성의 집수지는 금관가야가 멸망한 532년 이후에 만들어졌는데 산성의 축조 시기 역시 집수지의 시기와 동일할 것으로 조사단은 판단하고 있다.

김해시 관계자는 “현재로선 양동산성 집수지는 고대금관가야가 신라에 멸망할 당시 조성된 것으로 보이며 금관가야의 10대왕이자 마지막왕인 구형왕과 신라와 정치적 이해관계 및 당시의 생활상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보고 추가 발굴과 국가 사적 승격 신청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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