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진구 자양동에서 27년째 살고 있는데 두 가지 점이 특히 좋다. 하나는 뚝섬 유원지가 왼쪽에 있고, 다른 하나는 자양시장과 노룬산시장같은 전통시장이 오른쪽에 있다는 것이다. 사계절의 강바람을 껴안을 수 있고 별의별 사람 사는 풍경에 취할 수도 있다.

어느 토요일 저녁에 노룬산 시장을 찾았다. 그날 따라 시장의 시끌벅적함이 더욱 요란했다. 특히 이러한 소리가 귀에 쏙 들어왔다.

“이런 물건은 10년 후에나 옵니다. 지금 사지 않으면 …”

각설이 복장을 하고 각설이 타령을 부르면서 물건을 파는 리어카 상인의 세일즈 메시지다. 여느 각설이는 1년 마다 오지만 자신은 10년이 돼서야 올까말까 하는 귀한 찬스라는 주장이다. 설득력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물건을 사려는 사람들이 주위를 에워쌌다.

좀처럼 볼 기회가 없는 한바탕의 흥은 우연찮은 일로 깨져 버렸다. 리어카 옆 상점에서 나오는 TV소리 때문이었다. 정치인들의 막말을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어느 정당 대변인이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한 모양이다. 대변인(代辯人)을 대변인(大便人)으로 비유한 것이다. ‘똥 나오는 입’이라는 설명이 덧붙여졌다. 각설이의 설득적인 말과 정치인들의 감정 돋우는 말이 묘하게 비교되어 씁쓸했다.

차제에 정치인 브랜드에 대하여 생각해 본다. 정치인은 말의 직업인이다. 브랜딩에 있어서 말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따라서 파워 브랜드정치인이 되려면 말을 잘 관리해야 한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예전에는 스타 대변인들도 있어 각박한 정치 현실을 부드럽게 해주는 윤활유역할을 하기도 했지만, 요즈음에는 정치 언어의 경박함만 나날이 심해지는 것 같다.

정치인에게 당부한다. 정치인의 말과 글에 촌철살인(寸鐵殺人)이 담겨 있어야 촌철활인(寸鐵活人)이 된다. 앞장서서 막장 드라마를 써대면 국민들은 글자 그대로 열 받아서 죽을 지경에 이른다. 촌철살인의 말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브랜딩 전략의 기본에서 그 대안을 제시해 본다.

첫째, 나는 국회의원이지만 달리 보면 하나의 브랜드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국민은 고객이고 국회의원은 고객이 선택하는 일개의 브랜드에 불과할 수 도 있다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둘째, 나를 브랜드라고 인식한다면 모든 것을 고객 지향적 모드로 전환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나’라는 브랜드는 팔리지 않는다. 팔리지 않는 브랜드는 쇠퇴하여 시장에서 사라진다. 이러한 자연스러운 시장 원리가 우리나라의 정치시장에서 원활하게 작동되지 않는 사실이 일종의 아이러니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21세기 디지털 시대가 가속화 되는 앞으로는 정치 시장에서도 본래의 시장 원리가 더욱 철저히 작동될 것이다.

셋째, 브랜딩의 핵심은 고객에게 좋은 연상 이미지를 만드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만의 차별적인 상징을 만들어내야 한다. 말과 글은 상징의 중요 구성요소 가운데 하나다. 고객 지향적인 즉 국민 지향적인 말과 글이 나와야 함은 상식이다. 이는 인재기준의 요건이라는 신언서판과도 연결된다. 정치인이 이것을 충족할 때 비로소 명품 정치인 브랜드가 되는 것이다. 일부 정치인의 막말 횡행은 자신을 브랜드로 인식하지 않고 있다는 뚜렷한 방증이다. 그들의 눈에는 국민이고객으로 보일 리 없다.

고객도 자질이 필요하다. 정치인 브랜드를 냉정하게 구매하고 엄격하게 관리해야 한다. 정치인 브랜드는 한 번 잘못 구매하면 반품하기도 어렵다. 그렇다고 A/S도 제때 제대로 받을 수도 없다. 권리를 제대로 행사하려면 책임과 의무 역시 진력을 다해야 한다. 그들이 공언(公言)을 공언(空言)하는 지를 깐깐하게 살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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