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트는 금연, 금주와 더불어 많은 이들의 3대 결심 중 하나임이 틀림없다. 작심 후 실천이 쉽다면 굳이 3대 결심에 꼽지도 않을 것이다. 결심과 실패를 밥 먹듯이 반복하는 3대 결심의 이면엔 달콤함과 쓰라린 추억이 공존한다.

일단 어떤 행위를 끊고 다시는 반복하지 않겠다는 결심은 그 자체가 무리수다. 다이어트에 국한해 생각해 보자. 안될 일을 하겠다고 덤비는 것이니 성공할 턱이 없다. 거기에 절대 입에 대지 않을 음식 목록까지 작성한다면 그것은 스스로 실패를 자초하는 행위다. 설령 운이 좋아 목표치까지 체중을 줄였다 치더라도 그것을 평생 관리하며 살아나갈 확률은 요원한 꿈에 불과하다.

필자는 단언컨대 다이어트는 실체가 없는 뜬구름 같은 것이라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물론 단식원에 입소하거나, 업계에서 뜬다는 피지컬 트레이너를 자석처럼 옆에 붙여 체중을 덜어내는 행위는 아주 쉽다. 하늘 아래 숱하게 많은 어떤 다이어트 전문가라도 자기 고객의 체중을 불려 놓는 실수를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자기 휘하에 두고 관리를 해대는데 어떻게 살이 불겠나? 의뢰인의 살 30kg, 40kg을 빼 자기 이름의 지명도를 높이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즐거운 일일 거다.

자신의 불어난 살을 타인에게 의뢰하여 빼내는 이들의 허황된 각오와 그 일을 맡은 자들의 포장된 진지함이 난무하는 곳이 다이어트 세계다. 그럴싸한 성분을 내세워 약을 팔거나 근육을 붙여 기초대사량을 키우면 살이 찌지 않는 효율적인 몸이 된다는 이론을 늘어놓기도 한다.

아무리 약이 뛰어나도(물론 있지도 않지만) 식이 조절이 병행되지 않으면 절대 살은 빠질 리 없다. 트레이너를 붙여 몸을 조각처럼 만들어 놓았어도 간밤의 짜장면 한 그릇이면 살의 질은 형편없이 떨어지는 게 현실이다.
영양 및 운동 생리학 전문가로서 판단컨대, 다이어트와 사행을 조장하는 경마는 일종의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승률이 지극히 낮다는 점이다. 푼돈이 당첨되기도 하는 경마처럼 다이어트 또한 일시적 체중 감량의 기쁨을 맛보기도 한다. 

그러나 그뿐이다. 지속적 승률이 희박한 경마처럼 다이어트 역시 감량된 체중의 지속은 요원한 꿈에 불과하다. 스스로 체중을 관리해 나간다는 것은 매주 로또를 맞는 것 이상으로 어려운 일이다. 우리의 체중을 줄여준다는 명분하에 무모하거나 일시적 대안을 제시하는 수많은 상업적 매체 및 그 수단들을 경계해야 한다. 우리의 지방을 태운다는 명분하에 궁극적으로 우리의 속만 태우거나, 우리 몸의 지방을 긁어내 주겠다는 약속을 한 후 우리 주머니의 돈만 긁어낼 뿐이다.

과체중으로 고민하는 자들의 하소연을 묵묵히 자기 일인 양 들어주는 자들의 비즈니스적 계산을 잘 헤아려야 한다. 다이어트 시장의 경제적 규모는 연간 몇조 단위를 육박한다. 다어어트가 필요한 이들의 욕구를 자신의 경제적 수단으로 이용하려는 자들과 카드 긁어 찌운 살을 카드 긁어 빼내는 식으로 살려는 우리의 허무에 가까운 허황을 동시에 경계해야 한다. 장기간 관리 소홀로 망가진 몸을 단기간에 어떻게 해보겠다는 발상 자체가 비양심적 행위임을 알아야 한다.

“자연으로 돌아갈 것”을 부르짖는 자들의 외침도 허황하긴 마찬가지다. 현실과 동떨어져 섬처럼 격리된 삶을 우리가 살아나갈 재간이 없기 때문이다. 일상과 분리된, 즉 비일상적 행위에 우리의 건강을 의지하는 방식으로는 절대로 우리의 건강을 지킬 수 없다. 새벽에 수영장 물살을 가르거나, PT로 관리를 받아 유지를 한다 하더라도 과연 그 비일상적 행위의 지속이 얼마나 가능할지 의문이다.

하루 일을 마친 후 자신이 남은 시간 대부분을 보내는 그곳에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한다. 귀가하여 자신이 가장 많이 머무르는 집안의 그곳, 가장 많이 앉아있는 그곳에 정답이 있다. 비일상적 행위를 통해 건강을 지키려는 행위를 지양하라. 너무 멀리 가지 말라는 얘기다. 곧 돌아올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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