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차로 가는 세계여행1-(24)

<프롤로그> 시동을 걸다

2015년 4월 19일, 아침 6시에 집을 나섰습니다. 혼자 덩그러니 남게 된 둘째 아들 걱정이 앞서지만 떠나는 발길을 재촉합니다. 비가 내리는 새벽길을 달려 동해항으로 오는 동안 메시지와 전화가 운전이 어려울 만치 쉼 없이 이어졌습니다. 그 동안 못나게 살아온 건 아니구나 괜히 마음이 뿌듯합니다. 여비가 떨어지면 꼭 연락하라고 하신 분 수두룩합니다. 그 마음만으로도 넉넉해져 안심이 되었습니다.

빗속을 달려 약속한 10시에 겨우 강원도 동해항에 도착했습니다. 미리 수차례 연락을 주고받은 페리사 담당자의 도움을 받아 일사천리로 통관업무를 진행합니다. 보세 구역으로 차를 옮겨 세관 검사를 받습니다. 이틀 동안 실은 물품을 혼자서 다 내려 X-RAY검사를 받고 다시 싣느라 오랜만에 땀에 흠뻑 젖어보았습니다. 선내 화물칸으로 차를 옮긴 다음 네 바퀴를 야무지게 결박합니다. 세관원의 안내를 받아 다시 보세 구역 밖으로 걸어 나왔습니다.

오후 2시. 퇴색한 유행가 가사처럼 뱃고동 길게 울리며 출항합니다. 항구에 비는 내리는데, 선창가에 서서 눈물 흘리는 이도, 손 흔드는 이도 없습니다. 아무도. 모든 사물은 제 자리에 있을 때가 가장 아름답다고 여기며 살았습니다.

모든 사람은 자기 위치에서 자기 일에 열심히 매진할 때 가장 빛난다고 알고 살았습니다. 모든 것에는 미리 정해진 운명이 있다고, 이 세상에 운명은 분명히 존재한다고 믿고 살아왔습니다. 내가 고생을 한 것도 운명이었고, 열심히 노력하여 그 고생을 벗어난 것도 운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철없던 중학생이 세계 여행을 꿈꾼 것도 운명이고, 이 여행을 떠나는 것도 운명이라고 생각합니다. 바다의 날씨는 험하고 바람까지 드셉니다. 갑판에서의 별 구경은 어림도 없습니다. 떠난다고 연락도, 작별인사도 못한 곳이 많은데 아쉽게도 이 선박은 와이파이가 불통입니다. 거친 풍랑으로 흔들림이 심한 탓에 선내 욕실에서 이리 저리 뒹굴면서 힘들게 목욕을 마치니 쏟아지듯 잠이 몰려옵니다.

힘들겠지만 좋은 여행을 가겠습니다. 어렵겠지만 멋진 여행을 떠나겠습니다. 목숨 걸 만한 가치 있는 훌륭한 여행을 다녀오겠습니다. 믿고 싶습니다. 그리고 믿습니다. 이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 제 운명이라고. 그리고 명심하겠습니다. 이 여행의 최종목적지는 ‘집’이라는 사실을!

시비우 동네의 지붕에는 흘겨보는 듯한 눈들이 두 개 혹은 네 개씩 자리하고 있다. 사진=저자 제공

시비우의 ‘감시하는 눈’

이 동네 지붕들의 모양새는 참 특이합니다. 지붕의 기와부분에 흘겨보는 듯한 눈들이 두 개 혹은 네 개씩 자리하고 있습니다. 웃음을 자아내는 모양새지만 슬픈 역사를 가지고 있는 창문입니다.

그 옛날 이 지역을 차지한 작센인들은 이 창문을 통해 주민들을 감시하고, 반대하는 사람들을 색출해 잡아들이는 등 통치를 위한 수단으로 삼기 위해 일부러 이런 모양으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수세기 후 차우세스쿠도 저 창문을 이용해 시민을 감시했다고 합니다. 그 시절 모든 언론과 인쇄물은 검열을 받았고 전화는 도청됐으며 심지의 개인의 편지도 개봉한 채 배달되기 일쑤였다고 합니다. 이웃 중 누가 밀고자인지 알 수 없어 불신풍조가 팽배했고 친인척간에도 교류를 할 수 없었다고 숙소의 호스트가 말했습니다.

루마니아의 명물 드라큘라 성. 사진=저자 제공

드라큘라의 전설이 태어난 브란 성

루마니아의 명물, 그 유명한 드라큘라 성입니다. 명성에 어울리게 가파른 언덕 위에 높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드라큘라가 뾰족한 첨탑 위에서 숨어서 필자가 다가오는 것을 지켜보고 있을 것 같은 기분입니다.

가장 신빙성이 있다고 여겨지는 드라큘라 이야기는 이것입니다. 사람의 피를 먹는 드라큘라는 실제 없었는데 아일랜드 소설가 브램 스토커가 블라드 체페쉬라는 이름의 고대 루마니아 군주에게서 영감을 얻어 1897년 ‘드라큘라’라는 소설을 쓰게 됐다고 합니다.

해가 저물고 땅거미가 지면 정상인에서 흡혈귀로 변하는 드라큘라. 죽도록 사랑한 남자가 피를 마셔야 사는 드라큘라. 늑대와 달. 동이 트기 전에 성으로 돌아와야만 하는 백작. 세간의 관심을 모을 수 있는 신비롭고 멋진 설정이 가득합니다.

드라큘라 성은 외관의 색상이나 모양, 위치, 내부의 좁고 비밀스런 방과 통로 등이 드라큘라의 음침하고 으스스한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 사진=저자 제공

이 성에서 영화가 촬영됐는지는 모르겠으나 외관의 색상이나 모양, 위치 또 성 내부의 좁고 비밀스런 방과 통로등이 드라큘라의 음침하고 으스스한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건 사실입니다.

성에서 나와 수도 부쿠레슈티(Bucharest)의 시내로 진입하지 않고 외곽으로 벗어났습니다. 지우르지우에서부터 유럽의 많은 나라를 거치며 유유히 흘러온 도나우 강이 국경선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 도나우 강을 건너면 불가리아입니다.

이탈리아에 도착했지만 순식간에 먹구름이 몰려오더니 천둥, 번개를 동반한 돌풍과 함께 폭우가 쏟아졌다. 사진=저자 제공

이탈리아, '예술'로 가는 멀고 험한 길

이탈리아 바리 항에 도착했습니다. 바다 건너 다른 나라에 들어왔는데 서울 지하철에서 내리는 것보다 더 심심합니다. 짐 검사, 여권 검사도 없이 배에서 내리고 항구를 빠져 나갑니다.

아벨리노(Avellino) 지방의 산악 지대를 지나는데 순식간에 먹구름이 몰려오더니 천둥, 번개를 동반한 돌풍과 함께 폭우가 쏟아집니다. 갑자기 귀를 찢는 요란한 굉음이 들려오자 모두들 비명을 지르며 귀를 막고 좁은 차 바닥에 엎드립니다. 우박이 쏟아집니다. 돌풍에 아름드리 나무도 쓰러져 버렸습니다. 쓰러지는 나무가 달리는 차를 덮쳤더라면….

밤톨만 한 우박이 부딪히니 그대로 흠집이 생겨 버립니다. 바로 옆 승용차 몇 대는 앞 유리창이 깨져버렸습니다. 대자연의 무서운 위력을 또 한 번 경험했습니다.

사람이 저 우박을 직격으로 맞았다면 어찌될까 생각하면 끔찍합니다. 곰보투성이가 된 차를 볼 때마다 마음이 아픕니다. 하지만 생각을 고쳐 이제부터는 훈장이라고 여기고 자랑스럽게 다니겠습니다. 너무 쉽게 이탈리아로 들어왔다 싶었는데 호되게 입국 신고식을 치렀습니다. 떨리는 필자의 손을 식구들이 못 보게 핸들을 꽉 부여잡고 나폴리로 향합니다.

언덕에서 내려다본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항구도시 나폴리 전경. 멀리 베수비오 화산이 보인다. 사진=저자 제공

설명이 필요없는 미항, 나폴리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항구도시. 우리는 ‘나폴리’라고 하지만 영어로는 네이플스(Naples)라고 합니다. 지금부터 2500년 전 BC 5세기경, 그러니까 고조선 시절에 만들어진 도시입니다. 흔히 세계 3대 미항의 하나라고 불리고 로마와 밀라노에 이어 이 나라의 세 번째 도시입니다. 그러나 시가지의 도로는 무척 혼잡합니다. 노폭은 좁고, 굽은 비탈길, 일방통행길 투성이인데도 조그마한 차들이 다들 정말 잘 달립니다.

<다음 호에 계속>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민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