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보학 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지난 2003년 대법원에서 발생한 소위 제4차 사법파동은 대법관 제청·임명을 둘러싼 법원 내 소장판사들의 반발사태였다. 당시 최종영 대법원장이 법원 내 기수・서열에 따른 대법관 제청·임명 관행을 고수하자 소장판사 160명이 인사시스템의 개혁을 요구하는 건의서를 작성해 제출하였고, 이에 놀란 대법원장은 소장판사들의 비토 대상이었던 광주고등법원장 김용담씨에 대한 제청을 강행하는 대신 법관인사제도 개혁을 약속한 바 있었다. 

그 결과 2004년 대법원에 설치되었던 사법개혁위원회, 그 후신인 2005년 대통령 산하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에서 ‘대법관 구성의 다양화’가 주요 과제로 논의되었다. 그러나 당시 논의되었던 것들은 구체적인 제도로 실현되지 못했고 대법원은 크게 바뀌지 않은 채 현재의 모습을 유지해 오고 있다. 다시 말해 ‘서울법대를 졸업한 엘리트 판사 출신의 50대 남자’ 중심의 대법관 구성이 유지되어 오고 있는 것이다.

대법원은 국민의 기본권과 일상생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게 될 여러 법적 다툼에 대해 법률 해석권한을 가지고 최종 사법적 판단을 내림으로써 개인의 권리구제 기능을 할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정책법원으로서 중차대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대법원이 이런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기 위해서는 대법관 구성의 다양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또한 대법관 자리는 법관들의 승진코스가 아니기 때문에 사법연수원 기수 등 서열의 틀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그런데 현재 대법원은 여전히 「50대, 남성, 서울대 출신의 엘리트 법관」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사법부 내의 관료주의를 조장할 뿐만 아니라 전체 국민의 이해관계를 형평성 있게 대변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대법관들이 지향하는 이념의 색깔도 보수적 색채가 강하고 가치관도 기득권과 안정을 중시하는 성향이 두드러진다. 사회적 약자 보다는 강자, 없는 자 보다는 가진 자, 배려가 필요한 대상 보다는 기득권자의 편을 드는 대법원 판결이 쏟아지는 것도 대법관의 구성과 무관치 않은 것이다.

물론 현재 상고사건이 연 4만 건 이상 폭주하고 있기 때문에 업무처리능력이 중시되어 재판능력 위주의 획일적인 선발기준이 어느 정도 용인되어온 측면이 있다. 그러나 이런 상고사건 폭주에 대한 적절한 대처방안은 상고심 제도의 개선을 통해 마련해야 하고 이를 대법관 구성과 연계 시켜서는 곤란하다. 촛불혁명 이후 새로운 시대에 대법원이 국민들의 다양한 이해관계와 가치관을 판결에 반영함으로써 법질서와 인권을 보호하고 사회적 갈등을 중재하는 최고재판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대법관들의 다양성을 확보해야 한다. 

즉 대법관들은 「나이, 성별, 출신, 학교, 경력, 이념 및 가치관」 등에 있어서 전체 국민들을 대변할 수 있도록 다양성과 대표성을 띠어야 한다. 대법관들의 다양성이 전제되지 않으면 대법원은 획일적 사고와 이해관계에 사로잡혀 내부의 치열한 논쟁이 사라지고 일부계층의 이해관계만을 대변하는 파당적인 기관으로 전락하고 만다. 이런 모습의 대법원은 국민들의 신뢰를 받을 수 없고 결국에는 주권자인 국민들의 버림을 받게 된다. 

최근 양승태 대법원의 ‘재판 거래’ 의혹 때문에 사법부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가 하늘을 찌르고 사법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드높은 가운데서도, 대법관들이 일치된 의견으로 재판 거래 의혹을 부인하고 검찰조사를 거부하는 내용의 공동성명을 발표한 것은 현재 획일화 되어 있는 대법관 구성과 무관치 않다고 생각한다.

대법관 구성의 다양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대법관의 자격 요건을 보다 완화하고 구성에 있어서 다양성을 법으로 규정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법원조직법을 개정하여 대법관의 일정비율을 판사경력이 없는 자로 임명하도록 하고 남성 또는 여성의 비율이 일정 정도를 초과하지 못하도록 법에 명문화하는 것이다. 

또한 현재 제한적인 역할에 머물러 있는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의 구성과 운영방식을 개선해야 한다. 우선 동 위원회를 구성함에 있어서 선임대법관, 법원행정처장, 법무부장관, 대한변협회장,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 이사장, 법학교수회장 등 당연직으로 임명되는 법조인 또는 법률가들의 수를 줄이는 대신 외부 민간인의 참여를 늘려 구성을 다양화하고, 동 위원회의 후보자들에 대한 심사·추천기능을 실질화하여 대법원장이나 청와대의 의사만이 아니라 다양한 계층의 요구가 대법관 선발에 실질적으로 반영될 수 있도록 개선해야 한다.

다양한 배경으로부터 쌓은 풍부한 경험, 인생관, 철학을 바탕으로 우리 사회의 다양한 가치관과 이해관계를 충실하게 판결에 반영해 달라는 것이 국민의 요구이며 이 때문에 대법관 구성의 다양성은 반드시 보장되어야 한다. 이제 곧 8월 초 선임될 3명의 대법관 후보들에 대한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의 심사가 시작될 예정이라고 한다. 이번에는 대법관 구성의 다양성을 이룰 수 있는 대법관 후보들이 추천되고 임명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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