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훈 민주신문 편집국장

취임 2년차에 접어든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평화와 안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평화는 남북화해와 비핵화 등 안보에 관한 것이고, 안정은 민생과 개혁 등 정치에 관한 것이다. 평화와 안정은 정치 지도자의 통치에 있어 필요충분조건이다. 

평화와 안정이라는 큰 선물을 챙긴 문 대통령의 향후 행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4‧27 남북정상회담과 엊그제 6‧12 북미정상회담에서 한반도 평화와 화해, 비핵화에 대한 물꼬를 텄다. 아울러 이번 6‧13 지방선거에서 집권여당 더불어민주당 압승으로 안정적인 국정운영에 탄력을 받게 됐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방선거 다음날 6월 14일 김의겸 대변인이 대독한 입장문에서 “지방선거 결과는 국정을 잘했다고 보내준 성원이 아님을 잘 안다. 믿음을 보내주셨다. 그래서 더 고맙고 다시한번 마음을 새롭게 가다듬겠다. 선거 결과에 자만하지 않고 각별히 경계하겠다”고 밝혔다.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 등 혁신없는 야권의 무능은 차치하고 승자의 겸손과 하심(下心)이 묻어있다.       

지난 6월 12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역사적인 첫 싱가포르 정상회담이 마무리됐다. 북미 협상에서 중재자 역할을 해온 문재인 대통령 입장에서 최고 선물이 아닐 수 없다.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은 '완전한 한반도 비핵화'와 ‘대북 안전보장’ 약속이 담긴 공동성명에 서명했다.

북미 정상이 합의한 내용은 크게 4개 항목이다. 1항은 우선 평화와 번영을 위한 양국 국민의 바람에 맞춰 새로운 관계를 수립하기로 약속. 2항은 한반도의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함께 노력. 3항은 북한은 판문점 선언을 재확인하며,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향해 노력할 것을 약속. 4항은 양국은 전쟁포로와 전쟁 실종자들의 유해를 수습하고 즉각 송환 등이다.

그러나 총 4개 항목을 들여다보면 1∼3항인 ‘새로운 북미 관계 수립’ ‘한반도 평화 구축’ ‘완전한 비핵화’가 선후 관계없이 단순 나열돼 있다. 구체적인 시한 설정이 없으며, 검증은 아예 빠져 있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된다. 미국과 영국의 언론에서는 이를 두고 ‘북한의 승리’ ‘트럼프가 김정은에 농락당했다’ 고 평가하고 있다.

김정은-트럼프 싱가포르 정상회담 합의는 역사상 처음으로 북미가 만나 비핵화와 체제 보장을 명문화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하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다. 그동안 양측이 주장해왔던 바를 문서화했다는 점을 빼면 새로운 내용이 많지 않다. 후속으로 열릴 북미 고위급 회담이 주목되는 이유다.

그동안 미국 내 매파를 중심으로 강력하게 주장해왔던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도 합의문에는 없다. 북한의 강력한 반발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비핵화의 개념이 다를 수 있다는 점에서 그 방법에 대해 합의할 만한 결과를 얻었는지에 대해 역시 의문 부호가 붙는다.

이번에 비핵화와 체제 보장 가능성에는 합의했지만 상당 부분을 공란으로 남겨두면서 추후 북미 회담이 한반도 비핵화를 풀어낼 기술적인 만남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합의문은 ‘미국과 북한은 북미정상회담에서 도출된 합의를 이행하기 위해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과 이에 상응하는 북한의 고위 관료가 주도하는 후속협상을 가능한 한 빠른 시일 내에 갖도록 한다’고 정했다. 

민주신문 칼럼니스트인 윤덕민 한국외대 석좌교수(전 국립외교원장)은 북미정상 합의에 대해 “한국전쟁 이후 북·미 정상이 처음 만나 합의문을 만들었다는 점은 의미가 있다”면서도 “합의문 내용 자체는 2005년 9·19 공동성명이나 과거에 있던 비핵화 합의에 비해 오히려 후퇴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가장 중요한 검증에 관한 부분은 아예 빠졌다”고 지적했다.

대다수 전문가들은 그동안 CVID의 명문화와 비핵화 타임라인 설정, 핵무기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조기 반출을 회담 성패를 가를 기준으로 제시해 왔다.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회담 전날까지 “CVID만이 우리가 수용할 수 있는 결과”라고 압박 작전을 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은 이를 수용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결국 싱가포르 합의문에는 ‘V’와 ‘I’가 빠진 채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Complete Dismantlement)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재확인했다’는 수준으로 명시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그동안 북미정상회담의 성공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최우선 과제임을 강조해왔다. 그러기에 북미정상회담 결과는 일단 '큰 산'을 넘어섰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문 대통령은 최근 "북핵 문제와 적대관계 청산을 북미 간 대화에만 기댈 수 없다. 남북대화도 성공적으로 병행해 나가야 한다"며 "남북관계가 좋아지면 북미관계가 함께 좋아지고, 북미관계가 좋아지면 남북관계를 더욱 발전시키는 선순환 관계를 만들어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늘부터 판문점에서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이 열리고 있다. 체육회담(18일)과 적십자회담(22일) 등 분야별 실무회담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다. 남북 긴장완화와 화해 차원에서 이들 회담의 성공적 개최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이와 함께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개설과 철도·도로·산림 협력 등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협력사업에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번에 받은 선물은 남북화해와 비핵화뿐이 아니다. 어제 6‧13 지방선거 및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압승했다. 문 대통령은 안정정인 국정운영의 동력을 확보한 셈이다. 지난해 5월 대선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60% 이상 투표율을 기록한 이번 선거에서 광역단체장 17곳 중 14곳을 휩쓸었다. 재보궐은 11곳 전 지역에서 이겼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사 중 일부를 기억하고 있다. 명문으로 평가받는 ‘기회는 평등하게, 과정은 공정하게, 결과는 정의롭게’ 가 그것이다. 특권과 반칙에 휘둘리지 않고 정의와 진리가 춤추는 사회의 선결조건이다.

‘밉게 보면 잡초가 아닌 풀이 없듯, 곱게 보면 꽃 아닌 사람이 없다. 털려고 들면 먼지 없는 이 없듯, 덮으려 들면 못 덮을 허물이 없다’ 이채 시인의 '마음이 아름다우니 세상이 아름다워라'에 나오는 말이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작은 생선을 삶듯 해야 한다 (治大國若烹小鮮)고 했다.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논란을 빠르게 수습하는 게 통치의 근본이다. 원전폐지부터 최저임금제, 소득주도성장 등 민생과 관련된 논란은 생선을 삶듯 정성껏 보듬어야 옳다. 그것이 민생 안정이다.  

한반도 비핵화 일정이 순리적으로 진행되고 있고, 지방권력까지 집권여당 편이 됐다. 문 대통령의 더 없이 순탄한 국정운영이 기대된다. 다만, 전직 대통령 두 명이 구치소에 있는 현실은 세계 10위권 우리나라의 자부심에 어울리지 않는다. 목민심서에 나오는 잡초와 풀, 꽃, 사람, 먼지, 허물 등 단어들과 노자의 도덕경 구절이 자꾸 어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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