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차로 가는 세계여행1-(23)

<프롤로그> 시동을 걸다

2015년 4월 19일, 아침 6시에 집을 나섰습니다. 혼자 덩그러니 남게 된 둘째 아들 걱정이 앞서지만 떠나는 발길을 재촉합니다. 비가 내리는 새벽길을 달려 동해항으로 오는 동안 메시지와 전화가 운전이 어려울 만치 쉼 없이 이어졌습니다. 그 동안 못나게 살아온 건 아니구나 괜히 마음이 뿌듯합니다. 여비가 떨어지면 꼭 연락하라고 하신 분 수두룩합니다. 그 마음만으로도 넉넉해져 안심이 되었습니다.

빗속을 달려 약속한 10시에 겨우 강원도 동해항에 도착했습니다. 미리 수차례 연락을 주고받은 페리사 담당자의 도움을 받아 일사천리로 통관업무를 진행합니다. 보세 구역으로 차를 옮겨 세관 검사를 받습니다. 이틀 동안 실은 물품을 혼자서 다 내려 X-RAY검사를 받고 다시 싣느라 오랜만에 땀에 흠뻑 젖어보았습니다. 선내 화물칸으로 차를 옮긴 다음 네 바퀴를 야무지게 결박합니다. 세관원의 안내를 받아 다시 보세 구역 밖으로 걸어 나왔습니다.

오후 2시. 퇴색한 유행가 가사처럼 뱃고동 길게 울리며 출항합니다. 항구에 비는 내리는데, 선창가에 서서 눈물 흘리는 이도, 손 흔드는 이도 없습니다. 아무도. 모든 사물은 제 자리에 있을 때가 가장 아름답다고 여기며 살았습니다.

모든 사람은 자기 위치에서 자기 일에 열심히 매진할 때 가장 빛난다고 알고 살았습니다. 모든 것에는 미리 정해진 운명이 있다고, 이 세상에 운명은 분명히 존재한다고 믿고 살아왔습니다. 내가 고생을 한 것도 운명이었고, 열심히 노력하여 그 고생을 벗어난 것도 운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철없던 중학생이 세계 여행을 꿈꾼 것도 운명이고, 이 여행을 떠나는 것도 운명이라고 생각합니다. 바다의 날씨는 험하고 바람까지 드셉니다. 갑판에서의 별 구경은 어림도 없습니다. 떠난다고 연락도, 작별인사도 못한 곳이 많은데 아쉽게도 이 선박은 와이파이가 불통입니다. 거친 풍랑으로 흔들림이 심한 탓에 선내 욕실에서 이리 저리 뒹굴면서 힘들게 목욕을 마치니 쏟아지듯 잠이 몰려옵니다.

힘들겠지만 좋은 여행을 가겠습니다. 어렵겠지만 멋진 여행을 떠나겠습니다. 목숨 걸 만한 가치 있는 훌륭한 여행을 다녀오겠습니다. 믿고 싶습니다. 그리고 믿습니다. 이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 제 운명이라고. 그리고 명심하겠습니다. 이 여행의 최종목적지는 ‘집’이라는 사실을!

역사박물관과 국립 미술관으로 운용되고 있는 부다 왕궁. 사진=저자 제공

문화유산의 도시, 부다페스트

도나우 강은 부다페스트 한 가운데를 가로질러 흐르고 있습니다. 이 강을 중심으로 서쪽은 부다, 다른 쪽은 페스트였습니다. 원래는 각각 다른 도시였는데 1872년에 하나로 합쳐졌다고 합니다. 부다 왕궁은 현재 역사박물관과 국립 미술관으로 운용되고 있습니다.

도나우 강을 사이에 두고 부다 왕궁과 의회 건물이 마주보고 있습니다. 긴 역사와 자긍심을 가진 헝가리답게 의회 건물도 유럽에서 가장 오래됐으며 크기도 런던에 이어 두 번째라고 합니다. 유럽 어느 도시의 어떤 건물과 겨루어도 결코 뒤지지 않는 아름다움과 규모를 가지고 있는 대단한 건물입니다. 낮이나 밤에나 그 위용을 잃지 않아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도나우의 진주로도 불리는 부다페스트는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입니다. 유네스코의 딱지가 붙었으면 당연히 오래되고 아름다운 곳입니다. 우리나라 면적에서 서울의 면적만큼을 뺀 정도의 별로 크지 않은 국토이지만 불과 천만 명 정도의 인구가 살고 있습니다. 인구는 적지만 남는 땅은 매일 관광객이 넘쳐나고 있으니, 어딜 가나 사람은 많습니다.

부다페스트 한 가운데를 가로질러 흐르는 도나우 강. 이 강을 중심으로 서쪽은 부다, 다른 쪽은 페스트였다. 사진=저자 제공

화려한 밤에도, 환한 낮에도 사람 냄새가 나는 곳

부다페스트를 벗어나 헝가리 남부 지방으로 내려가면서 한적한 시골의 지방 도로를 이용했습니다. 잠시 쉬어 가기 위해 들른 시골 카페 안에는 말린 옥수수가 걸려 있습니다. 지난 밤 들썩거렸던 야시장은 그것대로, 이런 소탈한 풍경에서도 사람 냄새가 납니다.

여행을 다니면서 필자가 정말로 보고 싶은 것은 화려한 유물이나 훌륭한 유산보다 지금 사람이 살고 있는 현장입니다. 하지만 다가가 그 속을 보는 것이 좀처럼 쉽지가 않아 늘 아쉬움이 남습니다.

헝가리는 곳곳을 다닐수록 중앙아시아의 카자흐스탄과 너무나 닮은 나라라고 느꼈습니다. 곧게 뻗은 도로, 지평선, 평원, 전신주. 카자흐스탄의 들판은 아무 것도 없는 황량한 들판이었지만 이곳은 옥수수와 밀, 온갖 곡물이나 야채들을 재배하고 있는 모습이 달랐습니다. 목초지도 많고 소나 양, 염소, 돼지 등의 대규모 가축사육 시설도 흔했습니다. 나중에 알아보니 국토의 약 10%가 목초지라고 합니다.

헝가리 평원은 비교적 평지가 많은 유럽에서도 ‘광대한 헝가리 평원’으로 불리고 있다. 사진=저자 제공

온 들판에 철지나 시든 해바라기가 넘쳐나고 있었습니다. 조금 더 일찍 왔더라면 지평선 끝까지 해바라기가 만발한 들판을 볼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웠습니다. 7월의 해바라기 평원이 얼마나 장관이었을까 상상하며 그 아쉬움을 달래보았습니다.

헝가리 평원은 비교적 평지가 많은 유럽에서도 ‘광대한 헝가리 평원’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그 광대한 평원을 달려 루마니아로 갑니다.

아직도 낡은 마차가 짐을 싣고 다니고 나귀를 끌고 다니는 루마니아. 사진=저자 제공

루마니아, 드라큘라의 전설이 쓰인 곳

헝가리 국경에서 한 시간을 달려왔을 뿐인데 국도변의 마을 입구부터 비포장입니다. 비록 동유럽이라고 해도 엄연한 유럽 땅인데 중앙아시아처럼 낡은 마차가 짐을 싣고 다니고 나귀를 끌고 다닙니다. 아직도 도끼로 장작을 패서 난방을 합니다. 운치 있는 벽난로용 장작도 아니고 보일러용 장작입니다. 마을 지역을 벗어나 시골길로 들어서니 며칠 만에 40년 전으로 되돌아 온 기분입니다.

광장을 중심으로 박물관과 교회, 건물, 성벽 등이 시비우 도시를 아늑하게 둘러싸고 있다. 사진=저자 제공

루마니아의 중심, 시비우

시비우(Sibiu)는 루마니아의 정중앙에 자리한 도시입니다. 당연히 교통과 교육, 문화의 중심지입니다. 루마니아를 다녀온 많은 여행자들이 망설임 없이 가장 좋았던 곳으로 손꼽는 곳, 시비우입니다.

광장을 중심으로 박물관과 교회, 건물, 성벽 등이 도시를 아늑하게 둘러싸고 있습니다. 도보로 산보하듯이 하루만 다녀도 충분할 만큼 크지 않은 도시입니다. 언덕 위에 자리한 이 도시는 독일인의 발달된 건축 기술로 만들어진 수많은 아치형의 다리로 경사지가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 다리 아래로 냇물이 흐르는 게 아니고 사람과 차가 다니는 길이 있습니다. 다리 난간에서 내려다보아도, 교각 아래에서 올려다보아도 아주 아름답고 재미있는 도시입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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