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평가사 채권을 A등급 20일만에 C등급 변경...불완전판매 의혹에 증권사들 소송 검토

중국국저에너지화공집단이 지난 5월 중순 디폴트 사태에 빠지면서, 해당 기업의 회사채를 기반으로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을 발행해 판매한 한화투자증권과 이베스트증권이 국내 증권사들로부터 손해배상 소송을 당할 위기에 처했다. 사진=민주신문DB

[민주신문=서종열 기자] 여의도 증권가가 패닉에 빠졌다. 국내 증권사들이 5월 초 대거 매입했던 중국 한 에너지기업의 채권에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3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중국국저에너지화공집단(CERCG)의 회사채가 발행 한 달만에 디폴트(원금 불이행)에 상황에 놓였다. 이에 따라 이 회사 채권에 투자한 국내 편입상품들 역시 디폴트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해당 금융상품을 매입한 일반 투자자들을 포함해 증권사들도 손실을 떠안아야 할 상황에 놓인 것이다. 

금융권에서는 문제의 채권을 충분히 헤지(위험회피)할 수 있었음에도 신용평가사들이 신용등급을 안일하게 책정했고, 금융주선사가 별다른 헤지설계를 하지 않으면서 문제가 커졌다고 보고 있다. 이에 따라 피해가 예상되는 국내 증권사들은 해당 금융상품을 판매한 한화투자증권을 상대로 소송을 준비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증권사들간에 소송전이 발생할 상황인 셈이다. 

안일한 신용평가, 20일 만에 A등급이 C등급으로 

금융권에 따르면 한화투자증권은 지난 5월 초 특수목적회사(SPC)인 금정제십이차를 통해 CERCG의 역외자회사인 CERCG오버시즈캐피탈이 발행한 1조5000억달러 규모의 달러화채권을 기초자산으로 한 ABCP(자산유동화기업어음)를 발행했다. 해당 채권은 6개월 만기물과 1년 만기물로 구성됐다. 한화투자증권은 이중 1035억원을 이베스트증권은 611억원 등 총 1646억원을 투자했다. 

이후 두 증권사들은 셀다운(sell-down) 방식으로 발행채권 전량을 기관투자자들에게 매각했다. 현대차투자증권이 500억원 규모의 채권을 사들였으며, BNK투자증권이 200억원, KB증권 200억원, 유안타증권 150억원, 신영증권 100억원 등이었다. 또한 리테일 시장을 통해서는 부산은행 신탁에 200억원어치를 매각했으며, KB증권리테일 200억원, KTB자산운용 200억원, 골든브릿지자산운용에도 60억원의 채권을 팔았다. 

문제는 국내 증권사들과 자산운용사들이 채권을 사들인지 한 달도 안 돼 발생했다. 금정제십이차가 해당 ABCP를 발행할 당시 'A'등급을 부여했던 나이스신용평가가 단 20여일 만에 'C등급'으로 재판정했기 대문이다. 이어 나이스신용평가와 함께 'A2'등급을 부여했던 서울신용평가 역시 문제의 채권에 대해 'C'등급을 내렸다. 

신용평가사들이 단 20일 만에 금정제십이차의 ABCP 채권의 신용등급을 투기등급으로 내린 이유는 무엇일까. 원인은 안일한 평가에 있었다. 당초 신평사들은 CERCG를 중국의 지방 공기업으로 분류했다. 베이징시상무국이 100% 지분을 보유한 부래덕실업이 CERCG 지분 49%를 보유하고, 중국해외공주그룹유한회사가 지분 27%를 갖고 있어 사실상의 베이징시 소유의 지방공기업으로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CERCG는 공기업이라면 당연히 등록됐어야할 중국국유자산관리위원회(SASAC)에 등록되지 않은 민간기업이었다. 여기에 그러나 지난 25일에는 수탁은행인 중국 교통은행이 CERCG가 보증했던 3억5000만달러 규모의 회사채가 만기일 내 원금 상환에 실패했다고 알려왔다. CERCG의 회사채에 디폴트가 발생한 것이다. 당연히 해당 회사채를 기반으로 발행한 금정제십이차 ABCP도 교차부도 상황이 발생했다.

중국 교통은행은 지난달 25일 중국국저에너지화공집단(CERCG.사진)이 3만5000달러에 규모의 회사채 원금상황에 실패하면서 디폴트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CERCG 회사채를 기반으로 발행한 금정제십이차 ABCP(자산유동화기업어음) 역시 동반 채무불이행(교차부도)가 발생했다. 사진=CERCG 누리집 갈무리

결국 신용평가사들은 뒤늦게서야 CERCG의 신용등급을 C등급으로 내렸고, 문제의 채권을 이미 사들였던 국내 증권사들은 투자금을 전부 손실로 떠안아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불완전판매 의혹에 국내 증권사들 대규모 소송 검토

이런 가운데 문제의 채권을 발행한 한화투자증권과 이베스트증권에도 불똥이 튀고 있다. 불완전판매 의혹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문제의 채권을 매입한 국내 증권사들은 한화투자증권이 금정제십이차 ABCP 채권의 디폴트 헤지설계를 하지 않고 채권을 팔았다고 지적하고 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채무조정은 물론 담보설정을 통해 자금을 회수하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하다"면서 "문제있는 채권을 팔아치운 두 회사(한화투자증권·이베스트증권)만 수수료 이익을 거둔 셈"이라고 토로했다. 이에 따라 해당 상품을 사들인 국내 증권사들과 자산운용사들은 두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금융사를 믿고 해당 상품을 사들인 개인투자자들이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금정제십이차가 발행한 ABCP에 투자한 공모펀드는 KTB자산운용의 'KTB전단채'와 골든브릿지투자증권의 '골든브릿지으뜸단가', '골든브릿지스마트단기채' 등 3종으로 알려졌다.

이중 KTB 펀드에만 1444억원이 유입됐고, 다른 두 펀드에도 각각 84억원, 441억원이 설정액으로 잡혀 있다. 해당 펀드에 투자한 일반투자자들 입장에서는 금융사를 믿고 투자했는데, 돈을 날려야 할 상황인 셈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이번 사태는 신용평가사들의 안일한 평가와 무신경한 후속대책, 수수료에만 집중한 나머지 채권발행 회사에 대한 제대로된 조사를 하지 않은 금융사들로 인해 발생한 금융사고"라며 "금융업체들을 믿고 돈을 맡겼던 일반투자자들의 피해가 예상되는 만큼 각 증권사 및 자산운용사는 고객들에게 이 사실을 알려야 하는데 아직까지 제대로된 고지를 하는 것 같지 않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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