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배구조 개선 의지 보인 듯...시간외대량매매(블록딜)로 해외투자자들에 매각

삼성생명과 삼성화재가 지난 30일 임시이사회를 열어 보유중인 삼성전자 지분 일부를 1조4000억원에 시간외매매로 매각했다. 사진=민주신문DB

[민주신문=서종열 기자] 삼성그룹 지배구조에 미묘한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삼성생명과 삼성화재가 보유 중인 삼성전자 주식 1조4000억원대를 매각했기 때문이다. 

31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삼성생명과 삼성화재는 1조원대 규모의 삼성전자 지분을 블록딜(시간외 대량매매) 로 매각했다. 삼성생명은 보유중인 삼성전자 주식 2298만주(0.35%)를 매각했으며, 삼성화재는 402만주(0.07%)를 팔아치웠다. 매각된 삼성전자 총 주식수는 2700만주로 거래규모는 총 1조3851억원이다. 매수대상자가 알려지지 않았지만 증권가에서는 해외 기관투자자들이 이 물량을 소화한 것으로 보고 있다. 

재계에서는 삼성생명과 삼성화재의 삼성전자 주식매각에 대해 정부의 거듭된 지배구조 개편 요구를 삼성그룹 측이 수용했다고 보고 있다. 이에 따라 삼성그룹의 향후 행보에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생명·화재의 삼성전자 지분 매각, 지배구조 개선 의지 피력

재계에 따르면 금융당국은 최근 순환출자 구조로 이뤄진 삼성그룹의 지배구조에 대한 개편을 지속적으로 요구해왔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직접 나서 지배구조 개편에 대한 대안을 밝히기도 했으며, 최종구 금융위원장 역시 비슷한 행보를 보여왔다. 이에 삼성그룹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해왔지만, 지난 30일 삼성생명과 삼성화재의 임시이사회를 열고 보유 중인 삼성전자 지분 매각을 결정하면서 정부가 요구해왔던 지배구조 개편에 대한 의지를 피력했다. 

정부당국이 삼성그룹에 지배구조 개편을 요구해왔던 것은 금융산업 구조 개선에 대한 법률(금산법)에 근거하고 있다. 금산법에 따르면 대기업 계열 금융사들은 비금융 회사 지분을 10% 넘게 보유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현재 상황만 보면 삼성생명은 지난 3월말 기준 삼성전자 지분 8.27%를 보유 중이며, 삼성화재도 1.45%를 갖고 있기 때문에 별다른 문제는 없어 보인다. 하지만 삼성전자가 지난해 40조원 규모의 자사주를 2회에 걸쳐 소각하겠다고 밝히면서 삼성생명과 삼성화재가 보유한 지분이 말썽이 됐다. 삼성전자가 40조원대의 자사주를 소각할 경우 삼성생명과 삼성화재의 지분은 10.45%까지 늘어나기 때문이다. 

금융권에서는 바로 이점 때문에 삼성생명과 삼성화재가 삼성전자 지분을 전격적으로 매각했다고 보고 있다. 실제 삼성생명과 삼성화재가 매각한 삼성전자 지분은 금산법에서 지정한 10% 초과분에 해당하는 0.45% 정도다. 

그러나 당장 삼성그룹 지배구조에 대대적인 개편이 일어나지는 않을 것으로 재계는 보고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정부당국의 지배구조 개선 요구에 삼성이 의지를 보여준 것일 뿐, 지배구조 개편을 시작하는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금융권도 재계와 비슷한 반응이다. 한 금융사 관계자는 "아직 이재용 부회장의 3심 재판이 남아 있고, 보험업법 개정도 이뤄지지 않은 만큼 지배구조 개편에 전격적으로 착수하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고 전했다. 

삼성그룹 역시 이번 삼성전자 지분 매각에 대한 확대해석을 경계하고 있다. 삼성생명 측은 "금산법에 따라 삼성전자 지분 10% 초과분에 대해 선제적으로 처분한 것"이라며 "추가적인 지분매각은 재무건전성을 고려해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신중한 정부당국 "지켜보고 있다"

삼성그룹에 꾸준하게 지배구조 개편 요구를 이어왔던 금융위와 공정위는 이번 딜에 신중한 모습이다. 정부당국이 요구해왔던데로 삼성생명과 삼성화재가 보유 중인 삼성전자 주식을 팔긴 했지만, 금산법을 피해갈 수준에 그쳤기 때문에 의미를 부여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금융위의 한 관계자는 "금산법에서 요구하는 만큼 딱 매각해 이것을 지배구조 개편으로 봐야할지 의문스럽다"면서 "다만 이번 블록딜이 지배구조 개편의 시작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지켜보고 있다"고 전했다. 

공정위도 차분한 모습이다. 공정위 한 관계자는 "삼성생명이 밝힌 것처럼 금산법을 피해가기 위한 선제적 조치로 보고 있다"며 "뒤이은 후속조치가 있으면 모르겠지만, 현재로서는 삼성그룹이 지배구조 개편을 시작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귀띔했다. 

한편 삼성생명과 삼성화재가 1조4000억원대에 달하는 대규모 삼성전자 주식을 매각한다고 밝히면서 투자자들의 희비가 엇갈렸다. 삼성전자 지분을 매각한 삼성생명과 삼성화재의 주가는 상승했고, 반대로 삼성전자의 주가는 하락했기 때문이다.

증권가에서는 아직 삼성생명과 삼성화재가 보유중인 삼성전자 주식이 20조원에 달하는 만큼 추가적인 매각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증권가 한 관계자는 "20조원에 달하는 막대한 물량이 주식시장에 풀리게 되면 큰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면서 "매각하는 방식에 따라 주가하락의 가능성이 높은 만큼 개인투자자들의 신중한 투자가 요구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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