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에서 자살까지’


 

“그녀는 젊었고, 모든 것을 가진 것처럼 보였다.”
얼마 전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막내딸 이윤형씨가 미국에서 자살한 사건이 발생하면서 재계가 충격에 휩싸였다. 지난 6월 신준호 롯데햄·우유 부회장의 장남 신동학씨가 태국 방콕에서 추락한 사건이 일어난 지 5개월여 만에 또다시 재벌 일가의 자녀가 외국서 숨을 거둔 것. 특히 삼성과 롯데를 비롯해 현대, LG, SK, 대우 등 국내 굴지 재벌의 2~3세들이 그동안 안타깝게 사망한 일이 적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번 이윤형씨의 자살 사건은 재벌가의 ‘비운의 자녀들’을 다시 한 번 떠올리게 하고 있다.


교통사고부터 자살에 이르기까지 그동안 재벌가 자녀들의 비운은 끊이지 않고 이어져 왔다.
특히 현대, LG, SK, 대우 등 국내 굴지 재벌그룹들은 모두 장남을 사고로 잃는 슬픔을 겪어야 했다.
또한 일부 재벌가 자녀들은 사고가 아닌 자살로 사망하면서 재벌가의 어두운 단면을 보여주기도 했다.
국내 대표적인 비운의 재벌가는 현대가로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넷째 동생인 정신영 전 동아일보 기자의 사망을 시작으로 모두 4명이 교통사고와 자살 등으로 세상과 이별했다.
정 명예회장이 “형제들 중 가장 명석하다”며 애지중지했던 정신영씨는 동아일보 기자로 재직 중이던 지난 62년 독일 함부르크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당시 잠자는 시간을 빼놓고 잠시도 일에서 손을 놓은 적이 없던 정 명예회장은 동생의 죽음으로 슬픔에 빠져 일주일 동안 일을 하지 않았다는 일화도 있다.
이어 82년에는 정 명예회장의 장남인 정몽필 전 동서산업·인천제철 사장이 50세도 안된 나이에 교통사고로 숨을 거뒀다.
정몽필씨는 적자로 허덕이던 국영기업 인천제철을 인수해 경영정상화에 여념이 없던 어느 날, 울산공장에서 서울로 올라오던 고속도로에서 트레일러를 들이받은 사고로 당해 사망했다.
당시 정 명예회장은 가장을 잃은 정몽필씨의 가족을 배려하기 위해 정몽필씨의 처남인 이영복씨는 동서산업 사장으로 선임하는 파격인사를 단행하기도 했다.
90년에는 정신질환을 앓고 있던 4남 정몽우 전 현대알루미늄 회장이 강남의 모 호텔에서 음독자살했다.
이후 비자금 조성 관련 검찰의 조사를 받던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이 2003년 8월 계동 현대사옥에서 투신자살했다.
결국 정 명예회장의 아들 8명 중 3명이 아까운 나이에 사망했고, 사망한 아들 3명 가운데 2명이 자살로 숨을 거두면서 국내 대표적인 ‘비운의 재벌가’라는 불명예스러운 꼬리표를 달게 됐다.

삼성가, 고 이창희씨 이어 두 번째 비운

X파일, 편법증여 등으로 위기를 맞고 있는 삼성가는 이번 이윤형씨의 자살로 인해 두 번째 비운을 맞고 있다.
지난 91년 고 이병철 회장의 차남인 이창희 전 새한그룹 회장이 58세의 나이로 사망하면서 재계를 안타깝게 했으며, 이번에는 이건희 회장의 막내딸이 미국서 자살했다.
이창희씨는 새한미디어그룹을 통해 홀로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기도 했으나 혈액암으로 숨을 거뒀다.
특히 평범한 사람과의 결혼 문제로 이윤형씨가 아버지 이건희 회장과 갈등을 빚은 것이 자살 이유 중의 하나로 알려지면서 혼맥을 유지하려다 딸을 잃은 삼성가의 어두운 면이 부각되기도 했다.
이윤형씨는 지난해 이화여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올해 미국 뉴욕대에 입학해 미술을 전공하고 있었으며, 재벌가 자녀답지 않게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자신의 미니홈피를 만들어 재벌가의 일상을 공개해 눈길을 끌기도 했었다.

굴지 재벌가 ‘장남’ 잇따라 사고사

재벌가 가운데 외아들이 사고로 사망하면서 동생의 아들을 양자로 받아들여 ‘대’를 잇고 있는 곳도 있다.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90년대 중반 고등학생이던 외아들 구원모씨가 급사하면서 딸만 둘이 남게 돼 바로 아랫동생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의 장남 구광모씨를 양자로 받아들였다.
당시 재계 일각에서는 원모씨의 사망원인에 대해 “선풍기를 틀어놓고 자다가 사망했다”는 추측이 돌기도 했다.
구 회장 일가는 당시 어린 나이의 외아들을 잃은 슬픔이 커다란 상처로 남아 아직도 아들의 위패가 안치된 칠보사를 찾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구본무 회장과 부인 김영식 여사는 외아들을 잃은 이후 50대에 늦둥이로 막내 딸 연수씨를 얻기도 했다.
SK그룹은 재벌가 중에서 폐암으로 사망한 사람이 가장 많은 곳이다.
창업주인 최종건 회장과 2대 회장이 최종현 회장이 폐암으로 사망한데 이어 고 최종건 회장의 장남인 최윤원 전 SK케미칼 회장도 지난 2000년 미국 시애틀병원에서 50세의 나이로 숨을 거뒀다.
특히 최윤원 회장은 90년대부터 “나는 경영에 자질이 없다”며 경영일선에서 한 발짝 물러서면서 SK의 전문경영인 체제 정착에 큰 기여를 한 인물로 평가받았다.
롯데가에서는 ‘악동’이란 별명을 얻기도 했던 신준호 롯데햄·우유 부회장의 장남인 신동학씨가 36세의 젊은 나이로 태국 방콕에서 추락사하면서 비운을 맞았다.
지난 6월 신동학씨는 태국 방콕에 여행차 방문했다가 방콕의 S콘도 6층 베란다에서 떨어져 사망했다.
신동학씨는 운전 중에 프라이드가 건방지게 끼어든다면 프라이드 운전자를 집단 폭행한 ‘프라이드 사건’으로 ‘롯데가의 악동’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오랜 해외도피 생활을 끝내고 자진 귀국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장남 김선재씨도 지난 90년 미국 보스턴대학 유학 중에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당시 선재씨가 어머니 정희자씨를 마중하기 위해 차를 몰고 가다 사고가 난 것으로 알려져 안타까움을 더 했다.
때문에 정희자씨는 아들의 죽음을 위로하기 위해 아들의 이름을 딴 아트선재센터를 설립하기도 했다.
또한 당시 유명 탤런트인 A씨를 아들 선재씨와 닮았다는 이유로 양아들을 삼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김영민 기자
mosteven@naver.com


재벌가 비운의 자녀들 대부분이 "장남"

그동안 국내 재벌가에서 사고로 일찍 세상을 뜬 자녀들 가운데는 유독 장남들이 많다.
현대, LG, SK, 대우, 롯데 등 재벌가에서는 창업주나 2세대의 장남이 교통사고 등으로 숨을 거뒀다.
따라서 재벌그룹의 후계구도에 차질을 빚기도 하고, 차남이나 삼남으로 후계구도가 자연스럽게 정리되는 경우도 있다.
또한 해외에서 유학 중이거나 여행 중에 사망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우선 재벌가 장남이 사망한 경우는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장남 몽필씨, 최종건 SK 창업주의 장남 윤원씨,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외아들 원모씨,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장남 선재씨 등이다.
해외에서 사망한 경우는 이건희 회장의 막내딸 윤형씨, 정주영 명예회장의 넷째 동생 신영씨, 신준호 롯데햄·우유 부회장의 장남 동학씨,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장남 선재씨 등이다.
이번 이건희 회장의 막내딸 윤형씨는 미국 뉴욕대학 대학원에서 예술경영학과를 다니다 뉴욕시 맨해튼 소재의 아파트에서 출입문에 고정된 전깃줄에 못을 매 자살했다.
또 정주영 명예회장의 동생 신영씨는 동아일보 기자로 재직 중에 독일 함부르크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신준호 롯데햄·우유 부회장의 장남 동학씨는 태국 여행 중 방콕의 S콘도 6층에서 추락사했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장남 선재씨는 미국 보스턴에서 어머니 정희자씨를 배웅하라 가다가 교통사고로 숨을 거뒀다.
한편 재벌가 비운의 자녀들이 대부분 사고로 사망한 반면 자살로 세상을 등진 이들도 적지 않다.
이번 이윤형씨의 자살과 같이 현대가에서는 정주영 명예회장의 사남 몽우씨가 정신질환을 앓다가 음독자살을 했고, 비자금 조성과 관련해 검찰의 조사를 받던 몽헌씨가 계동 현대 사옥에서 투신자살을 하기도 했다.
<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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