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극장 새 상설극 전통무용극 ‘궁:장녹수전’, 안무가 정혜진의 권력에 대한 몸부림

정동극장에서 상설공연 중인 전통무용극 ‘궁:장녹수전’ 안무가 정혜진이 지난 6일 오후 서울 중구 정동극장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민주신문=양희중 기자] 흔들리는 촛불처럼 위태롭던 조선의 국모가 아닌 ‘여자’ 명성황후의 삶을 재조명했던 ‘잃어버린 얼굴 1895’, 연인 주몽을 도와 고구려를 세웠고 자신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 남하해 아들 온조와 백제를 건국한 소서노가 주인공인 ‘소서노’ , 모두 남성 중심의 서사가 아닌 여성이 중심이 되는 안무가 정혜진(59) 전 서울예술단 예술감독이 안무한 대표적인 작품들이다.

역사 속의 여걸들의 행보를 당당한 안무로 선보였던 정 안무가는 지난 5일부터 정동극장 새 상설공연으로 연산군 시절 ‘희대의 요부’로 통하던 장녹수를 재조명하는 전통무용극 ‘궁:장녹수전’(연출 오경택)의 안무가로 참여했다.

이번 전통무용극 ‘궁:장녹수전’은 우리가 알고 있는 섹슈얼리티에 초점이 맞춰진 장녹수가 아닌 조선 최고의 예인(藝人) 장녹수에 무게 중심이 맞춰져 있다. 아울러 권력이 주는 달콤한 술잔도 당당히 거부하는 당당한 여성으로 그려진다. 

정 안무가는 “여자가 수동적인 자세로 남자에게 기대어 사는 것으로 그려지는 것은 싫다. 명성황후, 소서노 같은 여자 역시 남자와 동등한 관계로 그리려 했고 장녹수 역시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또한 최근 여성의 성적 학대에 저항하는 ‘미투(me too·나도 피해자다)’ 운동이 한창인 작금의 상황에서 ‘궁:장녹수전’은 적절한 울림을 안긴다. 

역사 속에서 왕 연산군과 장녹수의 첫 만남은 예종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왕위계승 1위였으나 즉위하지 못한 비운의 왕자 제안대군 저택에서 이뤄진다. 출중한 기예를 가졌으나 제안대군의 가노였던 장녹수는 제안대군의 저택을 찾은 연산군의 눈에 들어 궁에 입궐한다. 

‘궁:장녹수전’은 장녹수의 기예를 강조하기 위해 연산군이나 장녹수에 비해 조명이 덜 된 제안대군을 수면 위로 등장시켜 장녹수를 미화한다. 하지만 ‘숙용(淑容)’첩지를 받고 궁에 실세가 된 장녹수가 권력을 놓치지 않기 위해 연산군의 콤플렉스, 신하들의 과거 행적, 제안대군의 진심까지 이용하는 악녀의 모습을 불과 75분이라는 러닝타임에 압축했다. 

서울 중구 정동극장에서 열린 '궁:장녹수전'에서 장녹수 역할의 조하늘을 비롯한 배우들이 열연하고 있다.

정 안무가는 극 초반의 발랄한 분위기를 위해 사랑스런 말괄량이 캐릭터의 장녹수로 재탄생시키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변원림의 저서 ‘연산군 그 허상과 실상’ 등 관련 책, 연산군 어머니인 폐비 윤씨를 다룬 논문까지 탐독하며 뼈대를 잡았고 작가 경민선이 살을 붙였다. 

또한 ‘궁:장녹수전’은 중요 무형문화재 제92호 태평무를 이수한 정 안무가의 장점이 녹아 들어간 작품으로 한국 전통 무용극 장르와 한국의 전통놀이, 기방문화가 한데 어우러졌다. 

지금은 거의 사라진 우리 전통놀이문화인 정월 대보름의 ‘답교 놀이’를 비롯해 장구춤과 한량춤, 교방무 등 우리가 쉽게 만날 수 없었던 기방문화가 펼쳐지고 가노 장녹수가 입궐한 뒤 궁궐에 궁녀들이 꽃을 들고 추는 화려한 춤인 ‘가인전목단’과 배를 타고 즐기는 연희 ‘선유락’ 등도 등장한다. 

정 안무가는 지난달 중국과 일본을 비롯해 유럽 등의 외국인 총 20여 명을 상대로 먼저 리허설했고 ‘궁:장녹수전’을 미리 본 외국인들의 반응은 매우 좋아하고 만족해했다.

‘궁:장녹수전’은 한국인에게도 매우 귀중한 경험인데 한국 무용이 현대적으로 재구성되는 것은 드문 일이기 때문이다. 정 안무가는 “우리 전통 무용이 느리고 따분하다는 오해로 안 보는 경향이 있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궁:장녹수전’으로 조금이나마 달라졌으면 해요. 우리 춤의 ‘예쁜 맛’을 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 전통무용극 ‘궁:장녹수전’은 오는 12월29일까지 정동극장에서 상설 공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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