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사회 전문가칼럼
[서보학의 법률칼럼]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폐지 신중해야
  • 서보학
  • 승인 2018.04.09 11:02
  • 댓글 0
서보학 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요즘 권력관계를 이용한 성폭력피해를 고발하는 미투운동이 활발해 지면서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죄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피해자가 피해사실을 고발하더라도 자칫 가해자에 대한 명예훼손죄가 성립할 수 있어서 피해자가 용기를 내는데 걸림돌이 된다는 이유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는 이미 수년전부터 표현과 비판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기 위해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강하게 제기되어 오고 있었다. 표현의 자유가 최대한 보장되어 구성원의 자유로운 의견표명과 비판이 활발하게 이루어질 때 우리사회의 민주적 건강성이 유지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 대부분의 국가도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처벌하지 않고 있고, 유엔도 한국 정부에 대해 동 범죄를 폐지할 것을 권고하고 있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나아길 길은 폐지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재의 시점에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폐지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첫째, 우리 헌법은 제21조에서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지만 동시에 제10조, 제17조, 제34조에서 국민 개개인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가치를 향유하며 행복하게 살 권리를 가지고 있음을 천명하고 있다.

정치적 기본권의 성격이 강한 표현의 자유와 개인적 기본권의 성격이 강한 다른 기본권 사이에서 어느 기본권의 가치가 더 우월한지는 말하기 어렵다. 둘 다 소중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기본권 사이에 충돌이 일어나는 경우에는 적정한 조화점을 찾아 양 자의 가치가 적정한 비례의 범위 내에서 실현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합리적인 해결방안이다.

대법원도 “표현의 자유는 민주정치에 있어 최대한의 보장을 받아야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개인의 명예나 사생활의 자유와 비밀 등 사적 법익도 보호되어야 할 것이므로, 인격권으로서의 개인의 명예의 보호와 표현의 자유의 보장이라는 두 법익이 충돌하였을 때 그 조정을 어떻게 할 것인지는 구체적인 경우에 사회적인 여러 가지 이익을 비교하여 표현의 자유로 얻어지는 이익, 가치와 인격권의 보호에 의하여 달성되는 가치를 형량하여 그 규제의 폭과 방법을 정하여야 한다(대법원 1988.10.11. 85다카29).”라고 하였다.

민주사회에서 표현의 자유가 중요하지만 그 자유가 개인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행복한 삶의 중요 구성요소인 명예를 침해하는 경우에는 일정한 제한이 따르는 것을 용납하여야 한다.

둘째, 명예훼손죄의 폐지 여부를 결정함에 있어서는 타인의 사생활에 대한 관심이 높고 명예와 체면을 중시하는 우리 사회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죄가 문제되는 사례에서 ‘공인의 신분’ 또는 ‘공적인 관심사항’이 문제되는 경우는 사안은 중요해도 실제 건수로는 많지 않다. 오히려 주변의 일상생활에서의 분쟁이나 타인의 사생활에 대한 지나친 관심 등이 명예훼손죄의 고소로 발전하는 경우가 많다.

만약 형법에서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죄가 폐지되면 ‘타인의 과거 까발리기’ ‘망신 주기’는 인터넷 및 모바일통신 환경을 등에 업고 매우 급속한 형태로 증가할 것이라고 예상된다. “옆집에 사는 여자가 결혼생활 중 외도를 저질러 이혼을 당한 사람이다” “저 아가씨는 아직 혼전이지만 두 번이나 낙태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모 교수는 젊잖게 보이지만 가정폭력을 행사하여 여러 번 입건된 경력이 있다” “저 가정에는 정신병원에 입원한 가족이 있다” 등등. 이렇게 공익성도 없고 딱히 남들이 알고 싶어 하지도 않는 사실을 폭로하면서 피해 당사자에게는 큰 고통을 안겨주는 행위를 표현의 자유라는 명목으로 용인해야 할지는 매우 의문스럽다. 

헌법재판소도 “명예와 체면을 중시하는 우리 사회의 전통적 가치관의 영향으로, 인터넷 등 정보통신망에서의 명예훼손, 비방 글들로 인하여 피해를 입고 개인이 자살과 같은 극단적 선택을 하는 등 사회적 피해가 이미 심각한 상황에 이르고 있다.

따라서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경우에도 우리 사회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이러한 명예훼손적인 표현을 규제함으로써 인격권을 보호해야 할 필요성은 매우 크다.”(헌법재판소 2016. 2. 25. 2013헌바105, 2015헌바234(병합))라고 한바 있다.

셋째,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의 경우 형사처벌 이외에 적정한 구제수단이 있는지도 살펴보아야 한다. 아직 우리사회에서는 민사법적 구제수단이 효과적인 구제수단이 되지 못하고 있다. 민사소송은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고 법원의 위자료액수 산정도 많이 낮은 수준이기 때문이다. ‘징벌적배상제도’가 아직 도입되지 않은 것도 민사소송이 적정한 구제수단이 되기 어려운 한 이유이다. 

게다가 언론사가 공적인 관심사항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언론보도를 통해 개인의 명예를 침해하였을 경우에는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법을 통한 구제가 가능하기는 하지만 그 효과가 실효성을 갖고 있다고 평가하기도 어렵고, 결국 민사소송으로 진행되는 경우에는 개인이 언론사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진행하여야 하는데 이는 개인에게 매우 힘겨운 싸움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바로 아직까지는 국가형벌권에 의한 도움을 받아야 할 필요성이 인정되는 이유이다. 가까운 시일 내에 민사제재가 더 보완되어 충분한 억지력을 갖는다면 모를까 현재의 상태에서 국가형벌권을 폐지하는 것은 개인의 명예보호를 사실상 포기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으로 생각된다.

논의의 초점은 진실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죄를 폐지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명예와 표현의 자유를 동시에 보장할 수 있는 조화점을 찾는 데에 맞추어져야 한다. 현재 형법은 제310조에서 개인의 명예와 표현의 자유를 조화롭게 보장하기 위한 장치를 마련해 두고 있다.

즉 개인의 명예를 침해하는 사실을 적시하더라도 그 내용이 진실이고 공익성을 가진 것일 때에는  무죄가 되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충돌하는 기본권 사이에 조화로운 해결을 꾀하고 구체적인 사례에 맞는 정의를 도출하기 위해서는 법원의 합리적 법해석이 요청된다고 할 것이다.

서보학  suhbh@khu.ac.kr

<저작권자 © 민주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포토뉴스
여백
여백
Back to Top